맵고 짜고 달고 온갖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어느 날 맑고 투명한 콩나물국 한 모금에 마치 온몸이 정화되는 듯한.. 마치 생명수 같은 느낌을 받거나 했던 적이 있지는 않은가요?
온통 [XXX를 해라!] [XXX 하는 법!] [XXX 하기!]라는 자극적인 말투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책들로 즐비해진 현 서점가에도 한 번쯤은 입맛을 깔끔하게 헹구고 과열된 정신을 식혀줄 생명수 한 모금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죠.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서점 귀퉁이에 무심하게 꽂혀있는 이 '톨스토이 단편선' 같은 책이 아마 그런 역할에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연의 재료들로 빚어진 우화들
톨스토이 단편들에는 딱히 근사하게 설정된 인물이나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다들 밭을 갈고, 숲에서 뗄 나무를 구하고, 작은 가게를 하며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물물교환을 하면서 살아가죠.
맛있는 식사를 하는 묘사도 딱히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끼니 때가 되면 보관해뒀던 딱딱한 빵을 꺼내 물에 적셔 먹거나 죽을 끓여 먹는 게 고작입니다.
여의치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마을에 방문한 처음 보는 여행자에게도 쉽게 식사를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눈에 비친 그대로의 풍경 그리고 삶을 나열해 내는 이 이야기들은 마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구성된 무심한 요리 한상을 보는 느낌입니다.
다만 조리 단계를 최소화해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는 주방장의 숨은 욕심 또한 범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죠.
종교적 색채 그리고 사랑
등장인물들은 신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위해 먼 길을 자처하거나 오랜 세월에 걸친 과업에 매진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의 계략에 빠져서 크게 몰락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이야기와 직결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다소 반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결국 인간성 자체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타인에게 손을 건네는 것은 곧 스스로를 돕는 일이 되기도 하고 타인에게 보내는 사랑은 언젠가 구원이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 이야기들이 갖고 있는 일관된 테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제자리에서
단순한 진리 또한 담고 있는데 어떠한 이상에 달하기 위해서는 딱히 어디론가 떠날 필요도,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달하고 싶었던 그곳은 각자가 제자리에서 스스로를 돌보고 주변을 마음으로 살피면 그 자리에 곧 낙원이 들어선다고 말이죠.
한마디로 한눈팔지 말고 주어진 것을 갈고닦으면 영광은 따라온다는 말 같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광장 어딘가에 서있는 위인의 동상처럼 당연한 진리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는 것이 바로 당연한 옛날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당연한 것은 왜 당연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