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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안 적응기

불안은 통제하는 것이 아닌 발산하는 것

by 아포드

불안의 서막


저는 꽤나 긴 불안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불안에 영향을 받아 삶이 크게 흔들렸던 시작했던 게 2017년쯤이니 불안이라는 것을 들여다본 기간이 좀 된다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당시 운영하고 있던 가게에서 오는 중압감과 스트레스가 시작점이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이 불안이라는 것은 임계점을 지나기 시작하면 신체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합니다. 느닷없이 몸에 전해지는 쿵 하는 충격과 함께 가슴이 뛰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어디론가 한없이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말이죠. 나중에는 눈앞에 보이는 5분 거리의 집도 걸어가지 못해서 택시를 타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해와 착오


물론 당시엔 신체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원인은 불명이었죠.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몇 개월 후가 됩니다 선고를 받지는 않았지만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카테고리에 있는 뭔가라는 것을요. 원인을 알았다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질 게 없었고 늘 불안에 짓눌려 먹기도 힘들고 잠들기도 힘들고 움직이는 것도 힘드니 하루하루가 마치 고문을 받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마음을 긍정적으로 이 끌어주는 강의 영상이나 글귀를 찾아다니며 부단히도 노력하며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되지 않는 것을 붙잡고 하루 종일 머리를 굴려가며 이런저런 생각과 궁리를 하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인간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끼자


그렇게 하루하루 삽질을 해가며 체득한 사실은 가만히 앉아 있는 나의 체력을 방전시키는 마법을 시전한 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녀석이었고 그 생각은 불타는 불안에 기름을 부어 팽창시키는 연료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불안을 엄청난 괴물로 증폭 시기 전에는 그저 작은 신호였다는 사실도요.


그 뒤로부터 저는 불안한 느낌이 들면 생각을 멈추고 불안을 온전히 느끼는 연습을 합니다. 생각으로 인한 변이를 거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불안 말입니다. 눈을 감고 느껴보면 그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파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때로는 활활 타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점액질처럼 흐물흐물 거리기도 하는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죠. 이것은 물론 사람마다 각자 다른 느낌이겠으나 그 원초적인 것을 차분하게 지켜본다는 것은 같다고 봅니다.



충분히 불안이 발산되도록 기다려주기


그렇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면 생각은 사라지고 그저 그것이 느껴지는 감각만 있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불안을 발산한다고 부르는데 불안이 발생부터 소진되기까지 어떤 개입도 하지 말고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안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알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보니 확실하게 경청하고 잘 접수했노라고 사인까지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알람이 울릴 테니까요.



주기적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스캔하기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와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것도 중요했죠. 숨은 생명 그 자체라서 원활하지 않고 위축된 호흡을 하다 보면 저절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며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면 몸이 경직되면서 폐근육을 제대로 쓰지 못해 폐활량의 10% 정도만 근근이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힘을 계속 주고 있으니 체력이 방전되는 건 덤이죠.



가두지 말고 통과시키자


아무튼 제가 느낀 포인트는 불안이 내 몸을 통과해서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잘 열어두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느끼는 것이 두려워 자꾸 알람을 모른체하고 이건 불안이 아니라고 억누르면 방출되지 못한 불안에 안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배에 가스가 찼는데 방출하지 않고 나는 방귀를 뀌지 않을 거라고 버티고 있으면 괴로워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그 뒤로는 점점 미세하게 나아지면서 지금은 몇 시간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동 수단이 걷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흉터가 남았지만 세상을 좀 더 깊게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도 감히 불안을 정복했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안은 삶의 일부로 대화하고 조화하며 살아가는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명 검색하지 말기


현대사회는 마음고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거기에 불안장애이니, 공황장애니 하는 선고를 받으면 마음은 더 무거워질 겁니다. 이때 온 인터넷을 뒤지며 자신의 증상을 검색하며 자료를 찾아헤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넷에 게재된 사례들은 그럭저럭 평범한 것들보다는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도 최악의 사례들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많이 찾아보게 되다 보면 최악의 사례들이 평균 화가 되고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병명 코드들은 병원에서 분류하기 쉽도록 카테고리 상품화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각자에게 찾아온 딱히 규명할 수 없는 원인도 해결책도 모두 다른 온리 원이라는 거죠. 그러니 결과나 상황에 너무 짓눌리지 말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하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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