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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비키 in 마트

by 아포드

한층 추워진 저녁 공기를 지나 이마트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자 안경렌즈 위에 김이 사뿐히 앉았다 사라진다.


"꾸벅"


항상 이 시간이면 입구를 지키고 있는 키가 아담한 여자 보안 요원이 인사를 한다.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보안 검색대를 지나친다. 그녀는 가끔 인사를 할 필요가 없는 생필품 코너 진열대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내게 인사를 건네곤 하는데 나도 인사를 받긴 하지만 자주 와서 알아봐 주는 것인지 그냥 반사적으로 나오는 인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한 관계의 어색함을 뒤로하고 나도 모르는 뜻밖의 세일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금요일의 장보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가장 처음에 보이는 것이 라면 진열대이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라면은 주기적으로 신제품이 나오곤 하지만 그중에는 무리수를 던지면서 요행을 바라는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바로 이 '신라면 툼바'라는 신제품 또한 그런 느낌인데 부동의 판매량 1위를 지키고 있는 신라면의 이름을 채용했지만 국물을 따라내고 스프와 치즈를 뿌려 비벼 먹는 타입의 라면에 과연 칼칼한 국물로 오랜 역사 지나온 신라면이라는 이름을 과연 허락할 수 있을까?



라면 봉지를 바라보며 혼자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나의 의식을 옆에 있던 시식대 점원이 제자리에 돌려주며 말을 걸었다.


"새로 나온 신라면 툼바 맛보고 가세요~"


"지금 농심 라면 전품목 세일 중이라 할인해 드리고 추가로 증정도 드립니다~"


그 뒤에 연신 이어지는 시식대 점원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왠지 내 취향에 안 맞을 것 같지만 떠날 타이밍을 놓치고만 나는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뭔가 고민하는 척 라면 봉지를 들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성분표와 조리법을 보는 척하고 있을 무렵 구세주가 나타났다.


"우와~ 오빠 이거 개 맛있겠다!"


팔짱을 낀 어느 20대 커플이 신라면 툼바에 큰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야 집에 라면 개 많은데 뭘 또 사."


남성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듯했으나 시식을 해 본 여성의 표정은 이미 신라면 툼바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자리를 그 비속어 커플에게 물려주고 슬쩍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주류코너에 다다르니 유명 위스키인 '조니워커' 블랙 라벨이 곧 넷플릭스에서 방영될 '오징어 게임 2'와 콜라보레이션을 이룬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었다.


맛이야 뭐 그냥 기존의 조니 워커 12년 산과 같겠지만 커버가 오징어 게임 스타일로 바뀌었다.


"조니 워커 행사 중인데 괜찮으시면 시음해보시겠어요?" 물론 점원은 여기에도 있다.


위스키의 향을 좋아하는 나는 신라면 툼바때와는 다르게 얼른 일회용 잔을 받아 든다.


블랙 라벨은 아주 고급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그래도 아래 등급인 레드 라벨보다는 확실히 부드럽고 다듬어진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쿨럭!"


그러나 알콜이 체질에 잘 맞지 않는 나의 목구멍은 40도 위스키의 열기를 견뎌내지 못했고 잠시 망설이고 있던 나의 구매여부를 결정해 주었다.


"그래 내가 무슨 위스키야~"



허무한 마음으로 코너를 돌자 콘칩 패밀리(대용량)가 2980원에 세일 중이다. 이 콘칩은 체질에는 아주 잘 맞지만 대용량인 데다가 한번 먹기 시작하면 양 조절이 잘 안돼서 속이 더부룩해질 때까지 먹게 되기 십상이다.


누가 이 과자를 기획했는지 모르지만 적당한 옥수수 향과 씹히는 식감은 정말 가히 중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일 중이라 사고 싶지만 오늘은 딱히 당기지도 않는데 괜히 과자를 습관화하지 않고 싶어서 이것도 지나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식자재가 있는 지하로 내려가자 '굿 밀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노 브랜드에서 나오는 이 우유는 초창기 1450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바가 있다.


현재는 조금씩 가격을 올려 1800원대로 오르고 말았지만 여전히 가장 싼 우유이다. 싸기만 한 게 아니고 맛이 상당히 준수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유들이 1000ml에서 900ml로 은근슬쩍 용량을 줄이고 있는데 굿 밀크는 아직까지 1000ml를 고수하고 있고 이 점은 꽤 매리트가 있다. 따라서 이건 사자.


냉동식품 중에서는 '고향만두'가 세일 중이다. 역시 시식대에서 점원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대며 만두를 굽고 있다.


"만두 세일합니다~ 만두 들여가세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데 '들여가세요'는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일까? 철자 또한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드려가세요.'라고 표기하는 것일지도. 만약 그렇다면 '데려가세요.'에서 파생된 말일까? 역시나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서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불쑥 나타났다.


"이거 어제도 사고 오늘 또 사는 건데 증정 하나 더 붙여주면 안 돼요?"


"아이고~ 고객님 이미 증정 하나씩 붙여서 나가고 있는 건데요."


"아니 그러니까~ 붙이는 김에 하나 더 붙여주면 좋잖아."


"아유 참 알뜰하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만두를 만지작 거리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추가 증정을 받아내는 그녀의 퍼포먼스에 혀를 내둘렀고 그녀에게만 추가 증정을 주는 게 눈치가 보였는지 시식대 점원은 내 만두에도 추가 증정을 하나 더 붙여주었다.


만두도 더 받고 어부지리라는 사자성어도 체험학습하고...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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