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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꽃

by 아포드

저작꽃




그렇게 나는 여러해살이를 다짐하고

땅 밑 깊은 곳 아득한 세월 속

혹한을 겪으며 가뭄을 겪으며

비로소 태어나는 꽃이야


고개를 든 나를 보고

지나가던 벌, 나비는

나에게 향기가 있다 말해준다

나에게 색깔이 있다 말해준다


뿌리 깊게 내려 흙을 단단히 움켜쥐고

온몸 바쳐 만개할 무렵

온 세상은 내 이름을 속삭였지


그러나 영광의 빛에 눈이 부실적에

낯선 손은 몰래 나의 몸 꺾고 꺾어

화사한 꽃다발 만들어 쥐고는

'내가 피워 낸 꽃이오' 말한다


이제 벌들은 그 꽃다발의 향기를 맡고

이제 나비들은 그 꽃다발을 색깔을 보고

이제 온 세상은 그 꽃다발을 속삭인다만


그들은 알아야 하지


그 꽃은 여러 해를 살아갈 수 없음을

그 꽃은 혹한과 가뭄을 겪은 적이 없음을

그 꽃은 뿌리가 없음을

그 꽃은 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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