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여러해살이를 다짐하고
땅 밑 깊은 곳 아득한 세월 속
혹한을 겪으며 가뭄을 겪으며
비로소 태어나는 꽃이야
고개를 든 나를 보고
지나가던 벌, 나비는
나에게 향기가 있다 말해준다
나에게 색깔이 있다 말해준다
뿌리 깊게 내려 흙을 단단히 움켜쥐고
온몸 바쳐 만개할 무렵
온 세상은 내 이름을 속삭였지
그러나 영광의 빛에 눈이 부실적에
낯선 손은 몰래 나의 몸 꺾고 꺾어
화사한 꽃다발 만들어 쥐고는
'내가 피워 낸 꽃이오' 말한다
이제 벌들은 그 꽃다발의 향기를 맡고
이제 나비들은 그 꽃다발을 색깔을 보고
이제 온 세상은 그 꽃다발을 속삭인다만
그들은 알아야 하지
그 꽃은 여러 해를 살아갈 수 없음을
그 꽃은 혹한과 가뭄을 겪은 적이 없음을
그 꽃은 뿌리가 없음을
그 꽃은 꽃이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