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실용음악 전공자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클래식 그거 평생 카피만 하는 사람들 아냐?"
듣고 보니 그렇다. 음악가라 함은 분명 창작의 욕구가 있을 것인데 수백 년 전에 쓰인 구닥다리 곡들을 온전히 재현하는 것에 급급하고 있으니 어떤 시각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이는 것도 수긍할만하다.
보다 쉽고 간편하게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실용음악이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지금에도 음악가들은 왜 여전히 클래식에 매진하고 또 대중들은 왜 여전히 클래식을 수요할까?
생각을 좀 해보자면 이렇다. 현대인들은 모두 실용음악의 시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일 정도로 실용음악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지만 그 오래됨이란 것은 인간의 수명이라는 잣대를 적용했을 때뿐이다. 음악사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수백 년 역사를 가진 클래식에 비해 후하게 쳐줘도 백 년 짜게 쳐주면 수십 년 남짓의 실용음악은 이제 간신히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단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실용음악은 여전히 그 원류인 클래식의 성분을 희석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컴퓨터로 작업한 가상의 악기들로도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지만 진짜 건반의 소리나 현의 소리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진국을 들이킨 기분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즉 실음악이라는 세공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클래식이라는 원석의 존재가 필요하다. 애플 수박은 수박에서 비롯되고 스테비아 토마토는 토마토에서 비롯되었듯이 새로움은 단단하게 다져진 원류에서만 파생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무수한 교배종이 창궐하고 있는 세상에서도 원종 재배에 힘쓰고 있는 클래식 음악가라는 농부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매년 재배해 내는 품종의 이름은 같지만 맛은 매번 다르다.
수박은 작년에도 열렸고 올해도 열리고 내년에도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년 열리는 그 뻔한 맛을 탓하기는커녕 올해의 수박의 맛은 어떨지 여전히 기대할 것이다. 수박은 이미 수천 년의 세월을 걸쳐 존재하는 동안 올드를 뛰어넘는 클래식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바흐가 그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