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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의 시간

by 아포드

멧비둘기 한 마리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스팔트 바닥 위를 거닐고 있다. 자동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비둘기를 스치면서 지나는 중에도 비둘기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뒷짐을 진채 태평하다. 경계심이 많은 멧비둘기가

이런 폭우를 맞으면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의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로 한다.


다친 걸까? 혹은 뭘 잘 못 먹었나? 하는 염려와 호기심에 비둘기를 계속 주시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발을 굴러 비둘기를 쫓아보기도 하고 따라다니면서 어딘가 문제가 있는지 재차 확인도 한다. 그러나 비둘기는 내 참견에 따라 때로는 빨리 걷거나 느리게 걸을 뿐 날아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절대 날지 못할 것 같던 멧비둘기는 그간의 염려와 참견을 비웃듯 아무렇지 않게 날개를 펴고 멀리 사라졌다.


아마도 비둘기는 때마침 샤워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더듬은 기억 속에 깃털을 세웠다 누였다 하는 모습이 얼핏 지나가는 걸 보니 더 확실해진다. 모처럼 비가 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있는데 불청객이 나타나 자꾸 따라다니고 참견을 하며 방해하니 미처 마무리도 못하고 날아갔을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버려뒀을 때 순리대로 잘 맞게 마무리되는 일들이 있다. 혹은 오히려 그렇게 내버려둬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걱정과 조바심이 나비의 우화를 앞당길 수 없고 섣부른 개입은 일을 그르치곤 한다.


누군가는 아픔을 씻어내기 위해 안쓰럽게 비를 맞아야 할 때도 있고 누군가는 왜 남들처럼 그렇게 날아갈 수 없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그들이 내밀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보기에는 걱정스럽고 답답해 보이는 그 순간들이 사실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마치 비둘기의 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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