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Hope, II
1907-08
110.5 x 110.5 cm
위 작품은 그리자마자 1908년 비엔나 쿤츠 쇼 Vienna Kunstschau에 첫 전시되었고, 1914년 12월까지 프리마베시 Eugenie Primavesi 소유이었다가, 1930년대 후반 뉴욕의 노이에 갤러리 Neue Galerie의 오토 칼리아 Otto Kallir에게 팔린다. 1978년 개인 소유의 이 작품을 한스 바나스 Hans Barnas로 부터 모마가 구매하여 현재 모마 미술관 5층 전시실 The Alfred H. Barr, Jr. Galleries에서 만나 볼 수 있다.
Gustav Klimt 1862-1918
‘황금의 화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의 수식어처럼 화려한 황금색의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며,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지 못했다면 아직 비엔나를 떠나지 말라'라는 문구가 비엔나 공항에 있다고 할 만큼,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키스 The Kiss’를 보기 위해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 Belvedere Palace을 찾고 있다.
Hope, II
작품명이 ‘Hope, II’ 이면 ‘Hope, I’ 도 있다는 얘기일까? 캐나다 국립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Canada, Ottawa)에 이 작품보다 먼저인 1903년에 그린 ‘Hope, I’ 작품이 있다. 임신한 여성을 모델로 그린 것으로, Hope, I, II 모두 클림트가 가장 좋아했던 모델 중 하나인 헤르마 Herma를 표현하였다.
모델을 하기로 한 헤르마가 갑자기 아프다며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된 클림트가 사람을 보내 확인하였는데,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이를 안 클림트는 임신하였어도 좋으니 모델을 오라고 하여 그려낸 그림이라고 한다. 작품 속의 여성과 거의 모두 관계를 맺은 걸로 유명한 클림트이었기에, 이 임신한 아이 또한 클림트의 아이였을 거라 짐작하곤 한다. ‘Hope, I’ 은 임신한 여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모습에서 선정성 논란도 있었지만, 여인 뒤에 보이는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헤르마 머리 위 뒤에 바로 보이는 해골, 또한 그 해골 뒤로 놓여있는 세명의 얼굴, 질병, 노년, 광기 (disease, old age, and madness)로 대표되는 메시지로 우리를 흠칫 놀라게 쳐다보고 있다. 여기서 더 나가, 모델의 전신 앞에 검은색의 바다 괴물의 두 눈과 손발톱이 섬뜩하게 만든다. 작품명이 희망 Hope 이라, 곧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새로운 희망과 새 생명을 연출한 작품으로 예상하였는데, 여기에 죽음이라는 대단히 절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표현한 걸 보곤 클림트, 보통 화가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07-08,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구스타브 클림트는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와 비엔나 응용 예술 대학(Vienna Kunstgewerbeschule)에서 공부한 영향으로 금을 작품에 활용한 다양한 기법들을 선보이게 되면서, ‘황금의 화가’로 불리게 된다. 초창기에는 벽화와 천장 작업들을 많이 하였는데, 이는 그의 이후 작품 속의 패턴과 이미지들이 벽화에서 보여지는 특징들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도 너무나 파격적인 선정성과 메시지 때문에 보수적인 분위기였던 오스트리아 미술 시장과 협회에서는 그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자, 클림트는 이에 반발해 기존 미술과 분리한다는 의미로, 1897년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를 결성하고 자신이 초대 회장이 되면서, 기존의 순수미술에 여러 응용 미술이 접목된 새로운 예술(New Art)이라는 의미의 아르 누보 Art Nouveau의 거장이 된다.
이후, 빈 분리파가 순수 미술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응용 미술을 옹호하는 사람들로 나눠지면서 마찰이 생기고,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 클림트는, 1905년 분리파를 탈퇴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게 된다. 이 시기가, 클림트 입장에서는 모든 것에서 자신을 분리한, 진정한 분리파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이후 그의 여러 대작들, ‘키스 The Kiss 1907-08년’,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I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년’ 등의 작품을 그리게 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Hope, II’ 작품이 이 시기에 그려진 1907-08년이다.
Hope, II
그전에 그렸던 작품 ‘Hope, I’에서 한 번 놀란 가슴 쓸어 담으며, 이번 작품도 조심스럽게 다가가 본다. 이 작품에서도 희망적인 부분만 있지는 않겠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와, 화려한 황금빛 배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진짜 금의 금박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재료비만 해도 상당할 듯 싶다. 금을 어떻게 이렇게 작품에 녹여낼 수 있을까? 그가 어떻게 금을 가지고 작업했는지는 그가 비밀리에 작업을 했기에 정확히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더 신비스럽게 다가오는 걸까? 클림트는 스스로 자신을 알리기보다는 자신을 감추고 작품으로만 얘기하길 원했다. 그 흔한 자화상 하나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를 알려면 내 그림을 보라’ 자존감이 대단한 화가이다.
한 줄기의 빛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뱃속의 아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아이에 대한 기도를 하고 있는 임신한 여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가슴을 드러내고 있지만,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보여졌던 선정적인 느낌 보다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성애적인 표현으로 다가온다. 임신한 여인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화려한 패턴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패턴의 문양이며 컬러의 화려함이 이 작품을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패턴들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여행했던 이태리의 라벤나와 베네치아에서 영감을 받은, 화려한 금과 모자이크로 대표되는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은 패턴으로 읽혀진다.
탄생 & 죽음,
반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여인의 배,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여인의 배 옆으로 빼꼼히 내밀고 있는 하얀 두개골을 보자마자 다시 한 번 섬뜩해진다. 또한 드레스 아래에는 곧 태어날 아이의 운명을 위해 기도하거나 애도하는 듯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새로운 탄생과 죽음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새로운 탄생은 곧 죽음으로 가기 위한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탄생과 죽음이 하나라는 클림트 자신의 생각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으로 읽힌다. 클림트가 처음 이 작품에 붙인 작품명은, 비전 Vision이었다. Vision 1. 비전 2. 전망 3. 미래, 곧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얘기해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초기 작품을 함께 했던 관계자에 의해, Hope II 로 알려지게 되었다.
클림트 & 죽음,
1892년, 클림트의 나이 30세일 때, 함께 작업을 했던 동생 에른스트 Ernst Klimt와 아버지가 갑자기 뇌출혈의 일종인 뇌일혈로 죽게 된다. 이때 의지했던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큰 상실감을 얻게 된 이후 작품 속에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많이 보이게 된다. 또한 자신도 아버지처럼 뇌일혈로 60살을 못 넘기고 죽게 될 거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두려움과 걱정이 작품 속에 죽음의 의미를 더 많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보인다. 슬프게도 결국은 1918년, 60을 넘지 않은 그의 나이 56세 때 클림트는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뇌졸중과 폐렴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죽을 때 마지막까지 ‘에밀레를 데려와!’ 라며 찾았던 여인이 클림트의 키스 The Kiss 작품 속 여인인 에밀레 플레게 Emilie Flöge 였다.
키스 The Kiss & 에밀레 플레게 Emilie Flöge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키스 The Kiss,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너무나 화려한 황금색 바탕에 황금색 옷을 입고 있는 두 연인이 한 몸이 되어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다. 아니, 화려한 입맞춤을 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 우리까지 설레게 만드는 듯싶다. 살포시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얼굴은 우리에게 잘 보이는 반면, 남성의 얼굴은 머리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고 대신 화려한 의상의 패턴으로 그의 이미지를 대신한다. 두 손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화려한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은 역시나 너무나 화려한 꽃밭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작품을 보는 당신이 곧 작품 속의 남자요, 작품 속의 여인으로 한 순간 빠져들게 만든다. 이 작품 앞에서는 누구나 나 자신이 키스하는 사람으로 한 순간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마력이 있다. 최고의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클림트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사랑, 서로의 친밀감, 섹슈얼리티의 메시지를 모두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이다.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에서 보이는 화려함과 아르누보 스타일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품 속의 여인이 누구일까는 아직까지 확실하진 않지만, 클림트가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죽은 동생 에른스트의 와이프의 동생이었던 처제 에밀레 플레게로 보는 게 지배적이다. 클림트가 죽는 마지막까지 찾았던 ‘에밀레를 데려와~ Emilie must come!’ 그 여인, 에밀레 플레게이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I,
이 그림 속 여인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로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탕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유대인 사업가이자 은행가이면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컬렉터이기도 한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의 부인으로, 페르디난트가 클림트에게 자신의 와이프를 그려달라고 요청하여 그린 그림이다. 아델레는 빈에서 사교계 스타였지만 장략 결혼을 하고 세 아이가 모두 낳자마자 또는 어릴때 죽고 본인도 43세의 젊은 나이에 뇌수막염으로 죽은 슬픈 삶의 여인이다. 클림트는 유난히 이 그림에 금과 은을 많이 사용하여 공을 들였다. 이처럼 화려한 무늬의 패턴과 장식을 본 적이 있는가? 이 화려한 패턴은 아직도 많은 원단과 스카프 등에서 ‘클림트 패턴’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림 속에서 왼손이 감싸고 있는 오른손은 아델레가 어렸을 때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다쳐 장애가 있었는데 그것을 감추고 있는 모습으로 클림트의 따뜻한 배려로 보기도 한다.
이 작품은 1938년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점령하에 오스트리아 정부에 강탈당하게 되는데 이후 페르디난트의 조카딸인 마리아 알트만이 숙모의 초상화를 되찾고자 국가를 상대로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데 오랜 소송 끝에 결국 돌려 받아 미국으로 가져와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기를 원하며 대중에게 공개할 조건으로 판매한다. 이 이야기의 영화가 바로 ‘우먼 인 골드 Woman in Gold (2015)’ 이다. 영화명인 ‘우먼 인 골드’는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이 작품의 모델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은 또 다른 작품명이다. 이 그림은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 로더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로널드 로더가 1억 3,500만 달러(약 1,520억원) 구매하여 당시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다. 로널드 로더는 뉴욕 맨하튼에 오스트리아와 독일 출신 화가들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미술관인 ‘노이에 갤러리’를 지어 이 미술관에 대표작으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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