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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Feb 14. 2021

모마 MoMA,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Piet Mondrian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Broadway Boogie Woogie

1942-43

127 x 127 cm 


1940년,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넘어온 몬드리안은 뉴욕의 활기찬 분위기와 부기 우기의 재즈에 매료되어 1943년에 이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를 완성한다. 1943년 브라질 조각가 마리아 마틴스 Maria Martins 와 몬드리안 작품이 함께 뉴욕 발렌타인 갤러리 Valentine Gallery 에 전시된 후, 마틴스가 그 당시 $800로 이 작품을 구매한다. 마틴스는 후에 이 작품을 모마에 기증한다.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하얀 바탕의 검정색 수직과 수평, 빨강, 노랑, 파랑의 3 원색 면으로 구성된 몬드리안 무늬로 많이 알려져 있는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다. 20세기 추상주의 Abstract Art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네덜란드 화가로, 파리와 런던, 그리고 뉴욕으로 넘어와 활동하며 1944년 뉴욕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한다. 패션, 건축, 디자인 소품 등으로 아직까지도 많이 활용되어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



Piet Mondrian 1872 - 1944 photographed by Arnold Newman in New York, 1942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Broadway Boogie Woogie

1940년, 그의 나이 67세에 파리를 거쳐, 런던에서 뉴욕 맨하탄으로 넘어온 몬드리안은 이전의 머물렀던 유럽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다른 활기찬 뉴욕의 모습에 매료당하게 된다. 또한, 뉴욕의 거리 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즈의 매력에 푹 빠진다. 블루스 음악의 한 장르인 부기 우기의 즉흥적이고 빠른 템포의 경쾌한 분위기를 통통 튀는 선과 작은 면으로 이 작품 속에 녹여낸다.  면과 선 만으로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전의 방사형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도로들과 달리, 가로와 세로로 구획되어 나누어져 있는 뉴욕의 거리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듯한 느낌이 들게 끔 구성되어 있다. 뉴욕의 노란 도로 위를 작은 차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큰 면들은 위에서 내려다본 빌딩의 모습처럼 보인다.



Chrysler Building; Stuyvesant Town. Photo: Humza Deas   nymag.com


https://youtu.be/76dJIRh4BU0


1942-43

1943년이면 그의 나이 70세, 우리 곁을 떠나기 1년 전이다. 뉴욕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게 놀랍다. 예술가의 나이는 정말 숫자뿐인 듯하다. 생애 마지막까지 수련 작품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암 수술 후에 기력이 쇠하여 붓을 들기 쉽지 않은 노년에 열정을 꺽지 않고 붓 대신 가위로 작품을 그려낸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요즘도 새로운 도구인 아이패드에 푹 빠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등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열정을 불태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원하며 그린 그의 미완성 마지막 유작 작품인, 빅토리 부기 우기 Victory Boogie-Woogie 가 같은 듯, 다른 듯한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다.


Victory Boogie Woogie, 1942–1944, Piet Mondrian, Kunstmuseum Den Haag



본질 추구 Nature,

이 이미지부터 한 번 보자.

                                                      


이 이미지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딱 봤을 때, 무슨 이미지로 다가오는가?

풀? 야채? 브로콜리?

그럼, 다음 이미지 한 번 보자. 무슨 이미지인가?

                                                                         

                                                                     


나무! 누가 봐도 나무다.

그럼, 다시 처음 봤던 이미지를 한 번 보자.


아~ 나무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

누군가 당신에게 ‘나무를 한 번 그려보시겠어요?’ 했을 때, 바로 첫 번째 이미지처럼 그리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천재다. 보통은 드물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무를 그려보라고 하면, 두 번째 이미지로 나무를 그리게 된다. 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게 바로 ‘나무의 본질’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나무의 본질은 정면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나무의 형태에서 보여지듯이, 나무의 본질의 모습은 생각하는 각각의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왜? 각자가 생각하는 본질은 대단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더 나가, 누구나 공감할 있는 보편적인 본질은 없을까?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궁극의 보편적 본질은 무엇일까??!!

몬드리안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보편적인 본질,

1911년,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넘어온 몬드리안은 자신의 원래 이름 ‘Mondriaan’ 에서 ‘a’를 떼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 당시 처음 나왔던 피카소와 그의 친구들이 보여줬던 큐비즘(Cubism, 입체주의) 작품들에 깜짝 놀라며 영향을 받아, 초기 작품들을 그려보지만 이내 실망하게 된다.



Mill of Heeswijk Sun, 1904, Noordbrabants Museum / The Red Mill, 1910 - 1911 Gemeentemuseum den Haag

   


또한,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추상주의의 또 다른 대가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작품에서는, 곡선과 원, 사각형 등 너무나 다양한 외형적인 겉모습의 형태에 집착한 사물의 본질 모습이라며 폄하한다.



Composition VIII, 1923, Wassily Kandinsky, Guggenheim Museum


몬드리안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의 본질을,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본질로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일단은 형태의 보편적 본질은 뭘까?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형태를 군더더기 다 떼고 추스려 나가 봤더니,

궁극적으로는 딱 두 가지 형태만 남는다.

그게 바로 수직과 수평.




다음은, 컬러의 본질은?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컬러를 군더더기 다 빼고 추스려 봤더니,

딱 세 가지 컬러만 남는다.

우리가 색의 3 원색이라 하는 세 가지 컬러,

그게 바로 빨강, 노랑, 파랑.





이 수직과 수평, 빨강, 노랑, 파랑으로 구성된 작품,

몬드리안이 생각한 보편적인 본질의 모습이다!



Composition No.II, with Red and Blue, 1929, Piet Mondrian, Museum of Modern Art



몬드리안 작품에 없는 곡선과 대각선,




Curves are so emotional.

곡선은 대단히 감정적이다.

- Piet Mondrian -



몬드리안 작품에 곡선이 없는 이유이다.

곡선은 대단히 감정적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본질을 표현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몬드리안 작품은 직선의 형태로만 구성되어 있다.


또 하나 없는 건 대각선,

대각선으로 보이는 작품도 액자를 마름모로 돌려 걸면서 수직과 수평으로 구성된다. 왜 몬드리안 작품 속에는 대각선이 없는 걸까? 몬드리안은 대각선을 본질로 가는 중간 단계라고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대각선도 수직 또는 수평으로 가서 붙는다는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수직과 수평뿐이라는 것이다.


Tableau I; Lozenge with Four Lines and Gray, 1926, Piet Mondrian, Museum of Modern Art

 

이 대각선의 논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초창기 때 함께 저널인 데 스틸 De Stijl (The Style)을 만들었던 테오 반 데스 버그 Theo van Doesburg 와의 분열이다. 아래의 반 데스버그의 작품은 몬드리안과 비슷하지만 대각선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게 차이점이다. 반 데스버그는 대각선이야 말로 자연의 본질에서 나타나는 다이나믹한 활력과 역동성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라 보았다. 몬드리안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몬드리안도 액자를 마름모 형태로 전시하면서 대각선과 타협점을 찾은 걸까? 절묘한 타협의 아이디어이다.


Counter-composition XVI., 1925, Theo van Doesburg, Kunstmuseum Den Haag




이렇게 쉬운 그림, 나도 그리겠는데? 했던 몬드리안의 작품에 이런 철학적인 본질의 개념이 숨어 있다니, 예술은 정말 알면 알수록 놀랍다. 당신은 이 세상 본질의 모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늘은 본질을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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