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The False Mirror (Le faux miroir)
Paris 1929
54 x 80.9 cm
1929년에 그린 위 작품은, 1933 - 1936년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맨 레이 Man Ray 가 소유하였고 이후 모마 MoMA 가 구매하면서 영구 소장하게 된다. 모마 미술관 5층인 The Alfred H. Barr, Jr. Galleries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이후 1935년에 마그리트는 또 다른 버전의 ‘잘못된 거울 The False Mirror’ 작품을 하나 더 그린다. (개인 소장)
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
벨기에 초현실주의 Surrealism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장난기 많은 철학자이자 화가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또한 생각지도 못한 위트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일상의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까? 그의 작품에 숨어 있는 의도와 생각에 정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고, 우리에게 여러 해석을 남겨놓는 부분 또한 대단하다. 말이 필요 없다. 일단 이런 정도의 화가라 생각하고, 그의 작품을 보는 게 그를 이해하는데 더 빠를 듯하다.
한 남자(Edward James, a British poet)가 거울 앞에 서 있다. 혹, 거울이 아닌 창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앞에 있는 책(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 Edgar Allan Poe)이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거울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이상함을 느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마그리트와 어깨를 겨룰 만한 천재다. 한 남자가 거울 앞에 서 있다면 거울에 얼굴이 보여야 정상 아닌가? 허걱! 거울의 비친 모습이 얼굴이 아닌 다시 뒷모습이다. 싸늘하다. 작품 제목이 흥미롭다. 재생산되어지지 않는? 위의 거울이 나의 모습을 비추어 재생산하는 것이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재생산되어지는 것들이 완벽하게 재생산되어지지는 않는다, 라는 뜻일까? 일상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르네 마그리트, 이런 식이다.
이전의 충격은 조금 안정시키고,
이런 화가이구나 생각하고 다른 작품 한 번 보자.
이제는 어느 정도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은 너무나 파란, 뭉게구름이 펼쳐져 있는 맑은 낮인데, 아래 마을의 건물은 가로등이 켜져 있고, 건물에는 불이 밝혀져 있는 칠흑 같은 밤이다. 낮과 밤의 공존, 아- 이게 초현실이구나 싶다. 낮과 밤이 이렇게 공존하는 세계가 있다면? 뭔가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이러한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이다. 이젠 좀 감이 온다.
1967년 마그리트의 이젤에 남아있던 미완성의 마지막 유작
하하하, 이 정도는 이젠 애교로 알겠다.
작품명, ‘투시’이다. 알을 보고 그리는데, 알을 깨고 나온 그 안의 새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다. 이런 작가적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위트가 있다. 이 정도 수위면 딱 좋겠는데. 일상에서 흔하게 만나는 달걀, 알을 약간 비틀어서 낯설게 하기.
아, 이 그림! 이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 작품이구나!
이츠 레이닝 맨, 할렐루야~ It’s raining men, Hallelujah ‘하늘에서 남자가 비처럼 쏟아진다면’ 딱 이 그림이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같은 듯, 다른 듯~ 경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려오는 모습인 듯, 떠 있는 모습인 듯, 마름모 모양의 큰 아저씨들… 작품명의 골콘다 Golconda 는 인도에 있는 낡은 도시로, 14세기-17세기에 전설적인 다이아몬드 광산 도시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부의 광산' 의미로, 남자들이 차고 넘치는 광산, 골콘다이다. 비처럼 쏟아지는 남자들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 주워 담아 보세요, 재미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한번쯤 상상해 봤음직한 이미지를 이렇게 그림으로 그려 낸다. 우리의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하기, 이게 바로 마그리트가 많이 쓰는 기법, 데페이망즈 기법이라고 한다.
데페이즈망[dépaysement]
n.m. 남성 명사
1. [옛] 고향[고국]으로부터의 추방, 유배 (=exil)
2. 낯설음, 낯선 느낌
3. (좋은 의미로) 환경[습관]의 변화, 기분 전환
초현실주의에서 자주 쓰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우리말로 가장 쉽게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정도가 아닐까 쉽다. 위에 봤던 작품들의 느낌이다. 익숙한 그림들인데, 뒤통수 치는? 낯설게 다가오게 만드는 기법, 르네 마그리트가 많이 쓰는 기법 중의 하나이다.
아~ 이 작품! 얼굴에 사과가 놓여 있는 이 그림, 이것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구나!
그런데, 왜 유명한 거지? 정말 유명한 작품으로 이게 딱! 르네 마그리트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마그리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아들’, 작품명이 ‘인간의 아들? 예수님?’ 혹은 우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얼굴을 사과가 가리고 있는 단순한 모습이다. 얼굴 앞에 사과가 놓여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뒤로 눈이 살짝 보인다. 마그리트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눈이다. 확실하진 않다.
마그리트가 얘길 하길,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모든 것과 동시에 그 보이는 것이 숨기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갈등의 연속이라 말한다. 그 철학적인 의미를 이렇게 절묘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금은 어렵다. 이 어려워 보이는 그림 속에서도 마그리트의 위트? 섬뜩함을 또 숨겨 놓았다. 찾았는가? 오른쪽 팔꿈치를 보라. 불룩 튀어나와 있는 팔꿈치, 그럼 팔이 뒤로 되어 있다는 건가? 어디가 앞인가? 갸악!!!!!
The False Mirror 잘못된 거울,
본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으니, 이젠 이 작품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속눈썹 없는 왼쪽 눈 안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있다. 가운데 검은 눈동자 너머로 노란 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그리트 말대로, 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를 볼려고 애쓰고 있구나.) 어찌 됐든, 그림 속의 눈동자는 파란 하늘을 보고 있다. 그럼, 우리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은, 우리 눈동자 안에 들어와 있는 저 하늘은 실제 하늘인가?
실제의 파란 하늘과 실제의 하얀 구름이 있는 그 하늘인가? 그것 보다는 거울처럼 비친 가짜의, 허상의 하늘 아닌가? 실제 하늘은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이 아닌, 저 위에 존재하는 하늘이 실제 하늘이 아닌가? 실제의 파란 하늘과 실제의 하얀 구름의 그 하늘인가? 그것 보다는 우리 눈에 거울처럼 비친 가짜의, 허상의 하늘 아닌가? 실제 하늘은 우리 눈으로 보여지는 하늘이 아닌, 저 위에 존재하는 하늘이 실제 하늘 일텐데, 우리의 눈은 그 실제가 비춰서 보이는 거울 같은, 그래서 허상의 거울 The False Mirror, 우리 눈은 가짜 거울 같은 것 아닌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실제의 세상이 아닌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우리 눈에 비친 가짜의 세상 아닌가? 아, 르네 마그리트, 철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이 작품까지 왔다.
위의 흐름을 타고 왔다면, 이제는 이 작품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작품 제목이 중요한 메시지라는 걸 알았으니, 제목부터 보자. ‘The Treachery of Images 이미지의 배반’ 무슨 얘기지? 그림 속에 있는 문구가 더 궁금하다.
"Ceci n'est pas une pipe"
This is not a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감이 온다.
이제는 마그리트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 조금 알겠다.
이 파이프는 파이프를 그린 이미지일 뿐, 이것을 가지고 실제로 담배를 필 수 있는, 실제의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파이프'라고 생각하는 이미지 일뿐, 단지 ‘파이프’라고 지칭하는 단어일 뿐, 실제의 '파이프'는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철학자 맞구나, 르네 마그리트.
영국의 얼굴없는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 Banksy 가 파이프 벽에 그려넣은, 르네 마그리트 패러디 작품 ‘이것은 파이프이다’
The Lovers, 연인들
처음의 그 당혹감은 조금 없어진 듯하다. 위에서 봐 왔던 것처럼, 르네 마그리트 작품은, 일단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대단히 중요하니 제목을 꼭 확인해 보고, 그 다음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그게 무엇일까를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The Lovers 연인들이니 둘이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보인다. 뒤에 밤하늘이 보이는 빨간벽의 실내에서 두 연인이 사랑의 키스를 나누고 있다. 넥타이를 맨 정장 입은 남자와 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천으로 가려져 있지만, 높은 콧대의 모습으로 보아 잘 생기고 아름다운 남녀로 보인다. (아, 다시 한 번 마그리트의 얘기처럼 천으로 가려진 얼굴을 보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려고 나는 애쓰고 있구나!)
사랑의 표현으로 키스를 하는데….. 이걸 키스라고 보아야 하나?.... 이건 키스인가, 아닌가? 키스인 듯, 아닌 듯… 사랑하는 감정과 답답한 감정이 공존하는… 키스란 사뭇 사랑하는 사람끼리 인간의 가장 연약한 살을 맞닿는 것인데, 이건 그 결정적인 요소를 없애 버렸으니, 이건 키스인가, 아닌가… 답답하다. 안타깝다.
좌절된 욕망,
인간의 가장 뜨거운 욕망 중에 하나인 키스를 천조각 하나로 쉽게 좌절시켜 버리는 그림, 아...
이러한 모습의 천으로 얼굴을 감싼 작품을 르네 마그리트는 많이 그렸는데, 그러한 이유는 마그리트가 13살 때, 그의 어머니가 심한 우울증으로 강에 들어가 자살한 후 17일 후에 찾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의 얼굴이 젖은 잠옷으로 감싸져 있는 모습을 마그리트가 보고 그의 평생의 트라우마로 작용한 게 아닐까, 그게 작품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모두들 의심해 보지만, 마그리트 자신은 강하게 아니라고 부인한다. 자신의 '철학의 사유'에서 표현된 이미지라고 말한다.
천 속의 모습이 가려져 있어, 그게 나 일수도, 당신일 수도 있겠다 싶다.
보면 볼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전해져 온다.
사랑과 좌절을 함께 느끼게 하는 키스…
좌절된 욕망...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여인 옆에 도망가지 않고 너무나 여유롭게 축음기로 음악을 듣고 있는 암살자, 그를 잡기에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몽둥이와 그물을 들고 숨어 있는 양쪽의 수사관들, 우리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창문 너머 발코니에서 우리와 똑 같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어 깜짝 놀라게 만드는 세 남자, 르네 마그리트의 전형적인 초현실적인 작품. (마그리트가 좋아했던 1912-14년 연작 스릴러 소설 ‘Fantômas 팡토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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