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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Oct 09. 2021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의 검은 얼굴의 큰 새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Gros oiseau visage noir / Big bird black face 검은 얼굴의 큰 새

1951

Height 높이 52.5cm

Partially glazed ceramic vase 부분적으로 유약 처리된 도자기 꽃병


1951년에 25점의 한정판 에디션 작품으로 구워진 도자기 꽃병 중 하나이다. 각각의 에디션 작품 안쪽에는 이 작품을 제작한 마두라 도자기 스튜디오 마크인 ‘Madoura Plein Feu’ 와 에디션 피카소 ‘EDITION PICASSO’ 스태프가 공통으로 찍혀 있으며, 각각의 에디션별로 숫자 또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1952년 마두라 갤러리 소유 이후 꾸준히 거래가 되어 왔으며, 최근 거래 기록으로는 2021년 2월 소더비 경매에서 $462,000 (약 5억 5천만 원)에 거래되었다.



이건희 컬렉션의 피카소 작품의 또 다른 'HC' 에디션 작품.  Sotheby's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1881 - 1973,

20세기 최고의 화가, 현대 미술의 거장 등 많은 수식어가 붙는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그의 새로운 실험 정신과 혁신적인 작품으로 높은 명성과 막대한 부를 동시에 얻은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의 한 명이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도자기,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평생 아이의 순수함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는 큐비즘 Cubism -입체주의- 의 대가로 기억되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말라가 Málaga 에서 다양한 성인과 가족의 이름에서 가져온 너무나 긴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Crispín Crispiniano María Remedios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Picasso, also called (before 1901) Pablo Ruiz or Pablo Ruiz Picasso 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이름이 길면 장수한다는 게 맞는 걸까? 1973년 그의 나이 만 92세까지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난다.


Pablo Picasso 1881–1973   wikipidia.org



한국 관련 작품이 있다던데요?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 Pablo Picasso, Musée Picasso

                                                                       

피카소가 한국을 직접 와 본 적은 없지만, 1973년까지 생존해 있던 화가였기에, 1950년 6.25 한국전쟁과 관련한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을 남긴다. 놀랍고 반갑다. 1944년 피카소는 세계 2차 대전 속에서 독일 히틀러의 나치 반대편에 서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고 자기 목소리를 낸다. 그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6.25 전쟁에서 미군의 잔혹함을 표현한 작품을 그려달라고 피카소에게 부탁한다. 피카소는 약 4개월여의 작업 과정을 거쳐, 고야 Francisco Goya 의 ‘1808년 5월 3일’ 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에서의 학살’을 발표한다. 그래서 오른쪽의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이 미군이 아니겠느냐는 이유의 배경이다. 북한 신천리의 양민 대학살을 그린 건지 아닌지는 아직도 논란이다. 피카소는 왼쪽에 전쟁에서 가장 나약하고 피해가 큰 사람들인 여인들, 임신한 여인,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너무나 어린아이들,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서 놀고 있는 아이 등을 표현하면서 ‘미군의 잔혹함’ 보다는 ‘전쟁의 잔혹함’에 무게를 둔 작품을 발표한다. 주제의 확장을 통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듯하여 놀랍다. 그동안 여러 정치적인 해석과 이슈로 인해 한국에서의 전시가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작품을 그린 지 70년 만인 2021년,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에서 한국에서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이 작품보다 먼저 그린 전쟁 관련 작품이 하나 더 있는데, 스페인 내전 중이던 1937년 나치가 스페인 게르니카 일대를 폭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 Guernica’ 작품이다. 파리에서 한 독일 장교가 피카소의 아파트에 걸려 있는 게르니카 사진을 보고, ‘당신이 그렸소? Did you do that?’ 라고 묻자 피카소는 ‘아니오, 당신이 그렸소. No, you did.’ 라고 말해 우리에게 감동을 준 일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게르니카 Guernica, 1937, Pablo Picasso, 349.3x776.6cm, Oil on canvas, Museo Reina Sofía, Madrid, Spain




피카소, 그림 못 그리는 사람 아녜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피카소 작품들이 큐비즘(입체주의), 상징성이 강한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많아서인데, 그가 어렸을 때 그렸던 그림들을 보면, 그 어린 나이에 그린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히 천재적인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2살 때 그린 토르소의 모습, 14살 지금의 중학교 1학년 때 그린 나이 든 어부의 모습, 15살 중학교 2학년 시기에 그린 가톨릭 사제의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 등은 정말 일찌감치 천재의 길에 들어섰던 화가이구나 싶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클래식한 그림을 그리는 데는 단 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피카소, 평생 아이의 순수함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던 피카소, 그림 천재 맞구나.


난 12살 때부터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단 4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렸다.
나는 평생 아이처럼 그리고 싶었다.

-Pablo Picasso 파블로 피카소-


12살 때 그린 토르소, 14살 때 그린 나이 든 어부, 15살 때 그린 사제와 어머니의 모습




피카소의 청색시대, 장미 시대 등 이렇게 말하던데 이건 뭔가요?

일반적으로 몰입과 열정이 대단한 작가는 어느 기간 동안 하나의 주제, 하나의 기법 등에 온전히 빠져 집중적으로 그러한 특징의 그림만 그리는 경향이 있다. 피카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기에 따라 집중적으로 그렸던 작품의 컬러, 특징을 가지고 청색시대, 장미 시대, 아프리카 시대, 그리고 큐비즘 시대와 같이 부른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 Blue Period 는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서 정착하는데 너무나 힘들었던 1901-1904년을 말한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또한 같이 갔던 친한 친구인 카를로스 카사게마스 Carlos Casagemas 의 자살까지 겹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작품 또한 온통 우울하고 어두운 블루 칼라로 그려졌던 시기이다.


피카소의 장미 시대 Rose Period 는 청색 시대 다음으로 피카소가 파리에서 연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 Fernande Olivier 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림이 하나 둘 팔리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던 1904-1906년을 말한다. 그림이 그 전보다 밝고 빨강, 주황, 핑크 등 장미 같은 밝은 계열의 컬러가 주를 이루고 광대, 할리퀸, 카니발 등 유쾌한 주제들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피카소의 아프리카 시대 African Period 는 아프리카 유물이 파리로 많이 들어오던 시기에 앙리 마티스가 나무로 된 아프리카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 깊이 빠지게 되었던 1906-1909년을 말한다. 피카소 작품 속에 아프리카 조각, 아프리카 전통 가면, 고대 이집트 예술, 이베리아 조각 등이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피카소의 큐비즘 시대 Cubism Period 는 피카소가 본질의 그림을 추구하는 폴 세잔에 영향을 받아 큐비즘(입체주의)에 흠뻑 빠졌던 시기로, 초기의 조르주 브라크 Georges Braque 와 함께 단색의 컬러와 도형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었던 분석적 큐비즘 Analytic cubism 이 1909-1912년이고, 조금 더 나아가 종합적인 합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 무슨 그림인지 잘 모르게 보이는 종합적 큐비즘 Synthetic cubism 이 1912-1919년 정도까지이다.


왼쪽: 청색 시대 작품 The Old Guitarist, 1903, Pablo Picasso, Art Institute of Chicago

가운데: 장미 시대 작품 Acrobate et jeune Arlequin (Acrobat and Young Harlequin), 1905, Pablo Picasso, The Barnes Foundation

오른쪽: 아프리카 시대 작품 Les Demoiselles d'Avignon, 1906, Pablo Picasso, Museum of Modern Art


왼쪽: 분석적 큐비즘 Girl with a Mandolin (Fanny Tellier), 1910, Pablo Picasso, Museum of Modern Art

오른쪽: 종합적 큐비즘 L'Homme aux cartes (Card Player), 19013-14, Pablo Picasso, Museum of Modern Art




7명의 연인과 사랑한 피카소,

작품 활동만큼이나 사랑에도 열정적이었던 피카소는 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연인만 총 7명이며, 그중 2명인 올가와 자클린과만 결혼하였다.

첫 번째 연인은 피카소가 23살 때 만난 아티스트 모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 Fernande Olivier,

두 번째는 피카소 나이 31살 때 만나 3년 만에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에바 구엘 Eva Gouel,

세 번째는 피카소 36살 때 만나 아들 파올로 Paulo 를 낳은 발레리나 올가 코클로바 Olga Kokhlova,

네 번째는 피카소 46살 때 17살로 만나 딸 마야 Maya 를 낳고, 피카소가 죽은 뒤 4년 후 자살한 마리 테레즈 발터 Marie-Thérèse Walter,

다섯 번째는 피카소 나이 54세 때 29살 만나 게르니카 제작 과정 등을 사진으로 담은 사진작가 도라 마르 Dora Maar,

여섯 번째는 피카소 64세 때 21살로 만나 아들 클로드 Claud 와 딸 Paloma 를 낳아 피카소 호적에 올려 많은 상속을 받게 하고 유일하게 피카소를 먼저 차고 재혼한 프랑스와즈 질로 Françoise Gilot,

일곱 번째는 피카소 나이 72세 때 22살에 만나 피카소가 92세에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키고 피카소가 죽은 13년 후 자살한 자클린 로크 Jacqueline Roque 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작품으로도 많이 남겨 작품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피카소는 그 연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작품으로 표현했는지 등을 생각하며 작품을 보아도 흥미롭다.


페르낭드 올리비에 Fernande Olivier, 눈물 흘리는 여인 Woman with pears, 1909, Pablo Picasso
에바 구엘 Eva Gouel, 암체어에 앉아 있는 여인 Woman in an armchair, 1913, Pablo Picasso
올가 코클로바 Olga Khokhlova, 여인의 흉상 Bust of a woman, 1929, Pablo Picasso
마리 테르즈 발터 Marie-Thérèse Walter, 누워있는 누드의 여인 Naked Woman Lying Down, 1932, Pablo Picasso
도라 마르 Dora Maar, 고양이와 함께 있는 도라 마르 Dora Maar with cat, 1941, Pablo Picasso
프랑스와즈 질로 Françoise Gilot, 우먼 플라워 Woman-Flower, 1946, Pablo Picasso
자클린 로크 Jacqueline Roque, 꽃과 자클린 Jacqueline with Flowers, 1954, Pablo Picasso




도자기 작업에도 진심이었던 피카소,

1946년, 65세의 나이에 프랑스 남부의 발로히 Vallauris 에서 매년마다 열리는 도예 전시회 Annual pottery exhibition 를 피카소는 방문하였는데 여기에서 마도라 도예 작업장 Madoura ceramic studio 을 소유하고 있는 수잔과 조르주 라미 Suzanne & Georges Ramie 를 만나 도자기 작업에 매료된다. 말년에 뭔가 새로운 도전이 뭐가 있을까 찾고 있던 차에 만난 도자기 작업은 그에게 발로히로 이사를 결정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남은 여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작업하게 된다. 아마도 3차원을 2차원의 회화로 표현하였던 큐비즘의 대가 피카소는 직접 3차원 작업인 도자기를 통해, 그의 예술혼에 날개를 단 게 아니었을까?


Picasso in his studio in Vallauris, France. 1953. © pablo picasso / sotheby’s


© pablo picasso / sotheby’s



피카소는 마도라 세라믹 스튜디오에서 숙련된 도예가들과 함께 협력하여 접시, 꽃병, 주전자와 기타 토기 등을 에나멜과 금속 산화물 등으로 장식하여 완성한다. 피카소는 조르주와 라미 사이에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한 작품당 적게는 25점부터 500점까지 번호가 매겨진 1,000개 이상의 접시, 꽃병 등을 만들어 라이센스된 에디션 licensed edition 으로 제작하여 판매하였다. 각 조각품들은 도자기의 밑면 또는 내부에 인증 표시를 한다.





 

꽃병이란다. 너무나 귀엽다. 꽃병 하나에도 피카소 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는구나. 작품명이 ‘Gros oiseau visage noir / Big bird black face 검은 얼굴의 큰 새’ 란다. 꽃병 주둥이에 눈이 그려져 있다. 양쪽 손잡이는 팔을 오그리고 들고 있는 모양 같다. 새이니깐 날개겠지? 날기에는 너무 짧은 날개지만 그래도 너무 귀엽다. 몸통에 얼굴이 삼각뿔처럼 그려져 있다. 웃는 얼굴에 눈이 살짝 윙크하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큰 귀에 손잡이가 걸려 있다. 이제는 손잡이가 귀걸이 같다. 사람 얼굴이 판다 곰 얼굴 같기도 하다. 재미있다. 꽃병 아래는 새의 발이 버티고 있다. 오렌지 깃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갑자기 뒷모습이 궁금해진다.



아, 진짜 새 뒷모습처럼 그려 놓았구나. 뒷모습은 더 새가 날아갈 것만 같다. 새 뒤의 꼬리 모습이다. 이건 캔버스의 앞 뒤에 모두 그림을 그려놓은 것만 같다. 그동안 피카소는 이렇게 3차원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이러고 보니, 옆모습도 궁금해지는데? 우와, 정말 새가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손잡이 밑에 날개가 숨어 있었구나. 옆모습이 더 새의 모습이다. 꽃병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걸? 아, 피카소지… 누가 꽃병으로 쓰랴?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은 몇 백억 씩 하는 회화보다는 갖고 싶다라는 심리에 더 가깝게 와 있는 듯하다. 그래도 몇 억이긴 하지만, 열심히 살면 하나쯤은 가져 볼 수 있을까?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40만 달러(약 29억 원)에 낙찰된 회색 올빼미 Le hibou gris (The gray owl), 1953, Pablo Picasso




Pablo Picasso     https://youtu.be/22PiEDoLs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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