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추성부도 秋聲賦圖
1805년
종이에 연한 색
56×214cm
보물 제1393호
이건희 컬렉션 작품 중에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더불어 값을 매기지 못할 만큼 귀한 작품이라는 무가지보 無價之寶 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2003년 12월 30일에 대한민국 보물 제1393호로 지정되었고, 이건희 회장이 무척이나 애정을 갖고 아꼈던 작품으로 전해진다.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 1745 - 1806 추정,
조선 시대 최고의 풍속 화가로 알려져 있는 김홍도는, 그가 그렸던 풍속화첩의 ‘씨름’, ‘서당’ 등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어서인데 사실 그는 풍속화뿐만 아니라 산수화, 인물화, 신선도, 화조화 더 나가 불화까지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인 회화를 구축한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적인 화가이다. 그와 자주 언급되고 비교되는 조선의 또 다른 천재화가 신윤복은 풍속화를 주로 그려 김홍도의 스펙트럼을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 다양한 그림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해당 각 분야의 최고의 작품을 남겨 가희 ‘화선 花仙 김홍도’ 라 불릴만하다. 그의 천재성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씨름’ 을 통해 한 번 볼까?
음력 5월 5일 단옷날 벌어지는 씨름판이다. 양반, 서민 할 것 없이 모두들 함께 빙 둘러앉아 씨름판을 즐기는 모습이다. 조선 후기 신분제 구분이 조금은 느슨해진 모습이다. 곧 다가올 여름을 대비하여 단옷날 많이 주고 받았다는 단오부채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모두의 표정, 자세, 옷차림도 하나같이 다 제각각이다. 저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이까지 세심하게 모두 챙겼다. 왁자지껄한 응원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가운데 씨름꾼들은 구경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들배지기로 들어 올린 절정의 순간을 찰칵! 스냅사진처럼 포착하여 박진감 있게 그려냈다. 허리춤에 씨름의 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샅바 없이 왼쪽 어깨를 맞대고 하는 바씨름이다. 들배지기로 들어 올린 사람이 이길까, 아니면 되치기로 막판 뒤집기를 할까? 들어 올린 사람의 표정과 손목 심줄의 근육을 보면 전세는 이미 들배지기 선수로 기울은 듯하다. 그 두 선수의 오른쪽에 벗어놓은 신발이 짚신 한 켤레와 가죽신(발막신) 한 켤레로 보아 양반과 서민의 씨름으로 보인다. 들려 있는 사람의 허리에 행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양반인 것으로 보인다. 서민이 양반을 이기는 모습, 씨름판에서 만큼은 현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이게 김홍도의 해학 아닐까?
왼쪽 위 구경꾼들 사이에 다리를 오므리고 긴장한 듯 무릎을 바짝 세워 끌어 앉고 신발을 벗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지금 벌어지는 씨름에서 이기는 사람과 맞붙을 다음 선수인 듯 긴장한 얼굴이다. 옆에 갓이 놓여진 것으로 보아 그도 양반이구나. 자기편이 지고 있어서 심난한 걸까? 오른쪽 위 구경꾼들 사이에는 이 씨름판이 꽤나 오래된 듯 누워서 팔을 괴고 보는 이도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들배지기 당하는 사람이 그들 쪽으로 꽂힐 것 같아 피하기 위해 몸을 바짝 뒤로 하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의 손이 이상하다. 땅을 짚고 있는 오른손의 엄지가 우리 쪽으로 보일 수 없는데 우리 쪽으로 보이게 그렸다. 아, 왼손처럼 오른손을 그렸다. 무릎을 짚고 있는 왼손은 또 오른손처럼 그렸다. 천재 화가가 이런 실수를?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많다. 손가락을 잘 구별 못하는 장애가 있지 않았을까 보기도 하는데, 다른 사람의 손들을 자세히 보니 모두 맞게 그려 놓았기 때문에 그건 조금 무리인 듯하다. 실수였을까? 천재화가가 이런 실수를? 실수라기보다는 천재 화가의 장난 아닐까? 이것도 그의 해학 아닐까? ‘자네 김홍도 그림을 봤다면, 그 이상한 부분이 있던가? 에이, 그거 못 봤으면 봤단 소리 하지 말게나’ ‘김홍도의 그림이 인기가 좋아 모사본이 많이 돌아다닌다던데, 이 부분을 보면 알지 않겠나?’ 너무 재미있다.
모두들 씨름꾼들에게 시선이 가 있는데, 가운데로 집중되는 시선을 살짝 엿장수가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놓았다. 엿을 팔아야 하기에 반대로 서야만 하는 엿장수를 통해 단조로울 수 있는 시선을 살짝 틀어 놓았다. 씨름꾼의 벗어 놓은 신발들도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 몰려 있는 사람의 수도 그림 위쪽이 훨씬 많다. 보통은 안정감을 주기 위해 아래에 더 무겁게 배치하고 멀어지는 위쪽을 서서히 날리는 모양새인데 씨름은 위에 더 많은 사람들을 배치해 역삼각형의 역동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전체가 4그룹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들의 수가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8명, 5명, 2명, 엿장수 포함 5명, 가운데 2명의 씨름꾼이다. 총 22명인데, 한쪽의 대각선이 8명-2명-2명으로 12명, 다른 쪽의 대각선이 5명-2명-5명으로 12명이다. 동, 서양 모두 완벽한 숫자라고 여겨 1일 12시간, 1년 12달로 만든 12라는 숫자를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합이 똑같아지는 마방진 형태로 사람들을 배치하였다. 김홍도가 설마 이것까지 계산해서 그렸다고? 대단하다. 바라보는 시점 또한 전체적으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부감법 俯瞰法)으로 그린 것에 반해, 가운데 씨름꾼은 앉아 있는 구경꾼들이 보는 시점으로 그려 한 그림 안에 다시점을 활용하여 그렸다. 그런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이런 대단한 그림을 김홍도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스케치하듯이 슥슥- 그렸다고? 김홍도, 천재 맞구나.
세상에서는 김홍도의 뛰어난 재주에 놀라며, 지금 사람들이
미칠 수 없는 경지라고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에 그림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날로 많아져서 비단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재촉하는 사람들이 문을 가득 메워 잠자고 밥 먹을 겨를도 없을 지경이다.
-강세황 ‘단원기’ 중-
김홍도는 조선 후기인 1745년에 양반, 중인, 평민, 노비 중 중인의 신분으로, 고향은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지금의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본다. 그의 스승인 문인화가이자 미술 평론가인 강세황에게 코흘리개 시절부터 학문과 그림을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강세황이 살았던 곳이 안산이다. 안산에 그의 호에서 이름을 딴 '안산시 단원구'와 '단원미술관' 이 있는 이유이다. 김홍도가 쓴 여러 호 중 하나인 단원 檀園 (박달나무 단, 동산 원)은 ‘박달나무가 있는 뜰’ 이라는 뜻으로 그가 존경했던 중국 명나라의 화가 이유방의 호에서 따왔다. 강세황은 김홍도의 그림에 많은 도움과 영향을 주었으며, 김홍도를 가리켜 ‘우리나라 금세의 신필 神筆’ 이라고 할 만큼 극찬하였고, 김홍도를 도화서 화원으로도 소개하였다. 이때가 1761년으로 김홍도의 나이 16살이다. 이것도 대단한데, 그 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의 나이 만 28살 때 영조 어진(왕의 초상화)과 이후 정조가 되는 왕세손 이산의 초상화 제작에 참여하는 어용화사에 뽑히기도 하였다. 정조는 할아버지인 영조의 미움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로, 이전의 인기 MBC 드라마인 ‘이산 李祘’ 에서 이서진이 하였던 역이다.
1776년 왕으로 즉위한 정조는 김홍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예를 들어, 그림 그리는 화원중 우수한 화원은 임금 직속인 규장각 소속의 ‘자비대령화원’으로 뽑아 대접하였는데 자비대령화원은 1년에 4번 평가를 위해 ‘녹취재’라는 시험을 보는데, 정조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 궁중의 그림 관련 일을 모두 김홍도에게 맡길 정도였다. 정조는 규장각 설립 당시 김홍도에게 ‘규장각도’를 그리도록 하였고, 정조가 평소 가보고 싶었던 금강산을 대신 보내 그려오게 할 정도로 신뢰가 대단했는데, 그가 지나는 여러 고을에 특별한 대우까지 당부하였다고 한다. 금강산 및 관동팔경 지역을 유람하며 그린 60폭의 실경 산수화를 모아 김홍도필 금강산화첩 金剛山畵帖 을 완성한다. 한편 한편이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씨름’ 등의 풍속화 그리던 그 김홍도가 맞나 싶다.
정조의 사랑도 잠시, 1800년 정조 4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조 없는 김홍도의 삶도 완전히 추락하였다. 1804년 김홍도의 나이 60세에 자비대령화원으로 발령이 나고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평가 시험인 녹취재에 응하여 젊은 친구들과 녹봉을 다투도록 한 것은 김홍도에게 엄청난 수치요. 모멸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1805년 마지막 녹취재를 치른 후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김홍도는 심한 병까지 앓는다. 외아들의 학비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의 가난한 형편과 출가한 딸에 대한 걱정 등 온갖 근심에 싸여 있을 즈음에 아픈 몸을 이끌고 김홍도는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걸작, 추성부도를 그린다.
김홍도 필 筆 (붓 필), 즉 김홍도가 그린 추성부도 秋聲賦圖 (가을추, 소리성, 시부, 그림도), 즉 가을 소리에 관한 시에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부(賦)는 시의 한 종류로, 일종의 산문시를 일컫는다. 추성부는 그림의 왼쪽에 있는 시를 말하는 것으로 김홍도가 살았던 시대보다 약 700년 전인 1000년대의 중국 송나라의 저명한 문인인 구양수 歐陽脩 (1007~1072)가 늦가을 바람 소리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을 적은 글이다. 구양수가 가을밤에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동자를 불러 무슨 소리인지 알아보라고 하니, 동자는 별과 달이 밝은 저녁에 사방에 사람은 없고 그저 저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소리라고 말한다. 그 얘기를 들은 구양수는 ‘아, 이것이 가을의 소리구나’ 라고 말하며 우리 인생과 빗대어 드는 생각을 읊은 시이다.
일단 천 년 전 생각이나 지금의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한편의 시이니 만큼 한 번 분위기에 따라가며 감상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김홍도가 적어놓은 구양수의 추성부 전문을 쉽게 풀어 보았으니, 조금은 길어 보이더라도 재미있는 산문처럼 쓴 이야기 글로 차분히 머릿속에 스토리에 따라 상상해 가며 한 번 보길 권한다.
구양자가 밤에 책을 읽는데 서남쪽으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 歐陽子方夜讀書 聞有聲自西南來者
이에 흠칫하여 듣고 말하기를,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빗소리에 바람소리 같더니 悚然而聽之曰異哉 初淅瀝以蕭颯
홀연히 물결이 솟구쳐 올라 부딪치는 소리 같다가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고 비바람이 몰려오는 듯하고 忽奔騰而砰湃 如波濤夜驚 風雨驟至
그것이 물체에 부딪쳐 땡그렁거리며 금과 철이 함께 울리는 듯 其觸於物也 鏦鏦錚錚 金鐵皆鳴
또는 마치 적을 향해 달리는 병사가 재갈을 물리고 질주하는 듯하고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又如赴敵之兵 銜枚疾走 不聞號令
단지 사람과 말의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듯 但聞人馬之行聲
나는 동자에게 이르기를, 이 무슨 소리이냐? 너 나가 보거라 予謂童子 此何聲也 汝出視之
동자 말하길, 별과 달은 밝고 맑으며 은하수는 하늘에 걸려 있는데 童子曰 星月皎潔 明河在天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나무 사이에 소리만 있습니다 四無人聲 聲在樹間
내가 말하길, 아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 소리구나. 어찌하여 이 소리가 들리는가? 予曰 噫嘻 悲哉 此秋聲也 胡為而來哉
이는 무릇 가을이 만드는 현상이구나! 그 색은 참담하여 안개는 내리고 구름은 거두도다 蓋夫秋之為狀也 其色慘淡 煙霏雲斂
그 모양은 청명하여 하늘은 높고 해는 밝도다 그 기세는 차가워 사람의 살과 뼈를 찌르도다 其容清明 天高日晶 其氣慄冽 砭人肌骨
그 뜻은 쓸쓸하고 산천이 고요하다 그러므로 그 소리는 처량하고 쓸쓸하며 울부짖는 듯 격분하는구나 其意蕭條 山川寂寥 故其為聲也 淒淒切切 呼號憤發
풍성한 풀은 서로 무성함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는 우거져 볼만 하더니 豐草綠縟而爭茂 佳木蔥籠而可悅
풀이 시들고 색이 변하며 나무도 가을을 만나 잎이 떨어지는구나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이렇게 시들고 떨어지는 까닭은 바로 한 가닥 남은 기운 때문이다 其所以摧敗零落者 乃其一氣之餘烈
무릇 가을은 형벌을 관리하는 관청이요 시기로는 음의 때요 또한 병사를 부리는 상이요, 오행에서는 금이로다 夫秋 刑官也 於時為陰 又兵象也 於行為金
이는 천지의 의로운 기운이라 하니 항상 차갑게 하여 초목을 시들어 죽게 만드는 마음이로다 是謂天地之義氣 常以肅殺而為心
하늘이 만물에 대하여 봄에 나고 가을에 열매를 맺게 함이다 天之於物 春生秋實
그러므로 음악에 있어서 상성은 서방의 음을 주관하고 이칙은 칠월의 음률이 된다 故其在樂也 商聲主西方之音 夷則為七月之律
상이라 함은 다침을 말하니 만물이 늙어 슬프고 마음이 상하는 것이고 商 傷也 物既老而悲傷
이라 함은 죽임을 말하니 만물이 왕성함을 지나 마땅히 죽는 것이다 夷 戮也 物過盛而當殺
아 초목은 감정이 없어 때가 되면 날리고 떨어지나 인간은 동물이고 만물 중에 영혼이 있으니 嗟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人為動物 惟物之靈
백가지 근심이 마음에 느껴지고 만 가지 일이 얼굴을 힘들게 하는구나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마음 속에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이 흔들리고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하며 有動于中 必搖其精 而況思其力之所不及
그 걱정이 지혜로는 할 수 없는 곳까지 하게 되니 憂其智之所不能
마땅히 붉고 윤기 나는 얼굴은 마른나무같이 시들고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는구나 宜其渥然丹者為槁木 黟然黑者為星星
어찌하여 금석과 같은 속성도 아닌데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지 奈何以非金石之質 欲與草木而爭榮
누가 죽이고 해치는지 생각해 보니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탄하며 탓하는가 念誰為之戕賊 亦何恨乎秋聲
동자는 대꾸가 없고 머리를 수그리고 졸고 있다 童子莫對 垂頭而睡
다만 사방 벽에서 찌르륵 찌르륵 벌레소리만 드리니 마치 나의 탄식을 돕는 듯하는구나 但聞四壁蟲聲唧唧 如助余之歎息
한시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놀랍다. 이런 맛 때문에 한시를 읽나 보다. 가을 소리 하나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형벌을 관리하는 관청처럼 무자비하게 생명을 베어내는 가을에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순응해야 하기에, 감정이 있는 인간이더라도 그 쇠락과 소멸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자는 메시지를 구양수는 글로, 김홍도는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글 끝에는 ‘을축년동지후삼일 단구사 乙丑年冬至後三日 丹邱寫’ 라고 적혀 있다. 을축년 즉, 1805년 겨울 동지 지나 삼 일째, 양력으로 11월 겨울 즈음에 단구 김홍도가 쓴 글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김홍도 유작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 작품 이후에 알려져 있는 작품이 없고, 바로 다음 해인 1806년 이후로 김홍도의 흔적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김홍도 말년에 인생에서 전성기였던 젊은 날을 지나 지금의 힘들고 처량한 자신의 신세가 이 글에 더 공감이 갔을리라. 집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구양수는 사실 김홍도 자신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초가집과는 다른 중국식 초옥 草屋 안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구양수의 모습이 보인다. 주위의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그 쓸쓸함을 더해 준다. 지금도 여기저기 낙엽이 바람에 나부껴 떨어지고 있다. 김홍도는 이 가을의 쓸쓸함, 차가운 공기와 바람, 거칠고 황량한 나무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붓에 먹을 듬뿍 담지 않고 조금만 묻혀 마른 붓질을 활용한 갈필 渴筆 로 이 그림을 완성한다. 천재 화가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바싹바싹 타는 듯한 황량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책을 읽고 있던 구양수가 가을바람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동자를 불러 무슨 소리인지 묻는다. 그 동자는 왼손을 들어 저 쪽에서 나는 바람소리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동자 바로 옆에는 비바람에도 숭숭 뚫릴망정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는 큰 돌(태호석)과 뒤의 앙상한 가지와 다르게 아직 많은 잎을 달고 있는 젊은 날을 회상하는 듯한 잎이 풍성한 종려나무가 그려져 있다. 위의 학 두 마리도 동자가 가리키는 쪽에서 나는 바람소리를 듣는지 목을 길게 빼고 그쪽을 쳐다보고 있다. 원문에 없는 암석과 종려나무뿐만 아니라 학 또한 그려 넣은 김홍도는 고고한 학처럼, 신선처럼 살고자 했던 것일까? 우리의 시선도 오른쪽 동자가 가리키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저 위에 환한 달이 떠 있고, 달 주위와 산 능선에는 마른 붓으로 좌우 옅은 붓질을 해 매섭게 부는 바람과 저녁의 스산함을 표현해 주고 있다. 달 아래에는 대나무에 둘러 싸여 있는 초옥 두 채가 더 보이는데 대나무의 흔들리는 바람소리가 구양수의 집에서 보다 더 크게 들리리라. 그 아래에 있는 낙엽수의 나무들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잎, 앙상한 가지들이 오른쪽으로 부는 바람에 가지가 치우쳐져 휭- 소리가 들리는 듯 더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살짝살짝 꺾여 올라가는 마른 고목나무와 포인트 컬러로 표현한 나뭇잎들이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인생의 처량한 말년에 듣는 가을 소리와 고목의 모습이 어떠했을까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고 있다. 걸작, 맞구나.
한 해의 끝이 다가오매 온갖 근심을 마음에 느껴
스스로 가련해 한들 어쩔 수가 없다.
-단원유묵첩 檀園遺墨帖, 1805년 11월 29일 자 편지-
붐비는 지하철에서 가까스로 내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처음 맞이했을 때, 그때가 나의 계절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이다. 뜨거웠던 여름이 언제 끝나나, 마냥 끝나지 않고 갈 것만 같은 시간으로 생각했는데 턱 찬바람을 느끼며 바람의 온도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그 순간, 아- 이렇게 뜨겁던 여름도 가는구나, 나의 푸르는 청춘도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이것이 나의 '가을의 소리' 이다. 오늘 저녁에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봐야겠다.
구양수의 ‘추성부’를 그린 또 다른 작품인 안중식의 성재수간 聲在樹間- 나무 사이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성재수간 聲在樹間, 안중식(1861~1919), 종이에 연한 색, 24x36cm, Private Collection
말년이 너무나 힘들었던 김홍도의 작품 바로 옆에, 말년까지 품위 있게 살다 간 겸재 정선의 작품을 함께 놓은 건, 이 무슨 박물관의 짓궂은 장난(?)일까?
인생에서 한 번은 예술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받아 보시길 바라는 작은 바람입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자료의 저작권자에 있음을 알립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게시 중단 등을 원하시면 shaan@daum.net 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