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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Oct 02. 2021

이건희 컬렉션, 호안 미로의 구성 Composition

Joan Miró 호안 미로


Joan Miró 호안 미로

Composition 구성

1953

96x377cm


호안 미로는 위 작품과 비슷한 밤을 묘사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1933년에 ‘Mural 벽화’ 라는 작품명의 ‘Mural I, Mural II, Mural III’ 을 미로의 파리 딜러인 피에르 로브 Pierre Loeb 의 집에 있는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그렸다. 또한 1940년에 ‘달팽이의 형광 자국에 이끌린 밤의 사람들 People at Night, Guided by the Phosphorescent Tracks of Snails’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진 밤을 묘사하였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Mural I, Mural II, Mural III, 1933, Joan Miró, Each 55.2 x 249.8 cm 

Mural II 를 가운데 두고 Mural  III 을 왼쪽에, Mural I 을 오른쪽으로 길게 연결된 하나의 작품으로 보면,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밤으로 갔다가 깊은 밤을 지나 새벽이 오면서 다시 날이 밝는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달팽이의 형광 자국에 이끌린 밤의 사람들 People at Night, Guided by the Phosphorescent Tracks of Snails, 1940, Joan Miró 35.6 x 43.2cm








Joan Miro, Paris, 1953. Alexander Liberman (1912-1999) © The Alexander Liberman Trust




Joan Miró 호안 미로 1893-1983,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인 호안 미로는 피카소, 달리와 함께 스페인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모두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더 나가 그만의 밝은 색채와 추상의 도형적인 형태로 낙서처럼 보이는 다채롭고 위트 넘치는 호안 미로만의 양식을 만들어 내고,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도예, 에칭, 동판화, 석판화, 캘리그래피,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한 진정한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와 영향력은 아직도 커 생각보다 자주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데, 호안 미로의 스페인 고향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1992년 올림픽 로고도 호안 미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우리에게는 2018년 오뚜기 진라면 30주년 기념 스페셜 디자인으로 친근하다.  


Barcelona 1992 – Emblem Designer: Josep Maria Trias    theolympicdesign.com


진라면 X 호안미로 아트컬래버. 오뚜기


1893년 4월, 호안 미로 이 페라 Joan Miró i Ferrà 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Catalonia 지역 안의 바르셀로나 Barcelona 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몬토로이크 Mont-roig del Camp 에서 태어난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Antoni Gaudí 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 가 카탈루냐 출신이고,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도 말라가 Málaga 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살았던 스페인 화가이다. 아,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 Lionel Messi 가 20여 년간 뛰었던 축구 명문 FC 바르셀로나 역시 이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찍이 별, 해, 자연, 동물 등을 관찰하고 표현하는데 특별했던 미로는 처음에 비즈니스 스쿨(School of Commerce)과 예술학교(School of Industrial and Fine Arts)를 같이 다니다가 신경쇠약에 걸려 회복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이후 예술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 시기에 미로는 반 고흐와 세잔, 그리고 야수주의의 대담하고 밝은 색상에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고, 1920년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스페인에서 살던 피카소 어머니와의 인연으로 12살 더 많은 피카소를 스튜디오로 찾아가 만난다. 미로가 파리로 떠나기 전 1919년에 그린 자화상을 이후 딜러를 거쳐 피카소에게 전했다. 얼굴에 들어가 있는 큰 라인이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 같기도 하고, 비너스의 토르소 모양으로 보기도 하는 대단히 인상적인 자화상이며, 그 당시 뭔가 의지는 있지만 불안해하는 그의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듯하기도 하다. 파리에 처음 와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무명의 청년 화가 미로에게 피카소는 말한다.




지하철을 탈 때처럼 하게나.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이네.
자네 차례를 기다리게.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미로가 피카소에게 전해준 자화상. Self-Portrait (in red overall), Joan Miro, 1919, 75x60cm, Musée Picasso, Paris



그 시기에도 유명했던 피카소가 무명의 청년 화가에게 조언도 멋지게 하네! 그 후로도 둘의 우정은 평생 이어졌지만, 미로는 피카소의 큐비즘 Cubism -입체주의- 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독창적인 길로 나간다. 미국 소설가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가 작품을 보자마자 너무나 놀라운 걸작이라며 5천 프랑을 주고 아내 선물로 구매한 미로 나이 29살 때인 1922년에 그린 ‘농장 The Farm’ 이라는 작품을 한 번 보자.  


농장 The Farm, 1921-22, Joan Miro, 123.8x141.3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


우와, 이런 어마어마한 디테일을 직접 다 그렸다고? 1920년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간 미로가 고향 카탈루냐를 잊지 못하고 매년 여름마다 몬토로이크에 있는 가족 농장을 찾아 장장 9개월 동안 그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이 작품은 정말 자세히 봐야 할 것 같다. 하나하나 보다 보면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심플한 곡선의 몇몇 도형만 대충 느낌대로 그리는 미로인 줄 알았는데 디테일 묘사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개미의 집처럼 땅 아래까지 하나하나 모두 살려서 묘사한 부분이 너무나 신선하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느낌을 이렇게 한 작품에서 함께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우리는 이것을 ‘마법 같은 사실주의 Magical Realism’ 라 부른다. 이런 걸작을 처음에 한 딜러(Léonce Rosenberg)가 팔기 쉽게 8조각으로 나누자고 했다니, 미로 뿐만 아니라 나까지 화가 난다. 헤밍웨이가 ‘이 세상 어떤 그림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 말의 의미를 알겠다. 미로, 정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구나.  

  


1921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1924년 미로는 초현실주의 그룹에 들어간다. 초현실주의의 리더 격인 앙드레 브레통 André Breton 과도 친구가 되고, 이때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호안 미로의 조형적인 그림들이 등장한다. 미로는 여기서도 일반적인 초현실주의와 차별성을 가진다. 직관과 감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리기를 장려하는 초현실주의 기법인 ‘심리적 자동주의’, 즉 오토마티즘 Automatism 을 찬양하는 선언문에 사인하기를 거부한다. 미로는 자신의 의도대로 구성된 기반 위에 도식적인 형태, 회화적인 기호들, 시각적인 제스처 등을 단순화하여 초현실적인 작품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로는 스케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무의식과 함께 자신의 삶과 경험, 기억이 함께 결합된 게 호안 미로의 초현실이라고 말한다. 무의식과 의식의 결합인 초현실주의, 우리 미로는 다 계획이 있구나.



내가 작업을 하는 동안, 형태는 점점 현실화되어 가죠.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림을 그리려 한다기 보다는,
작업을 시작하여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이 붓 아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혹은 나에게 무언가 암시를 하며 단단히 자리를 잡아갑니다.
선은 어느새 여인이나 새의 형태가 되어 가죠.

-Joan Miró 호안 미로-  




아, 초현실주의 작품을 이렇게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화가가 또 있을까? 이것이 초현실주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거 몇 개 쓱쓱~ 그려 넣는 게 뭐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미로는 또 말한다.  



예- 맞아요,
붓으로 이 선을 그리는 데는 얼마 안 걸려요.
하지만, 생각을 하는데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Yes, It took me just a moment to draw this line with the brush. But it took me months, perhaps even years, of reflection to form the idea.

-Joan Miró 호안 미로-  



그의 다음 말이 더 재미있다. 대가의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미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나도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많으니 말이다.   



내가 캔버스 앞에 설 때, 나는 결코 무엇을 할지 몰라요.
- 그리고, 결과물에 대해서 제일 놀라는 사람은 바로 저예요.

When I stand in front of a canvas, I never know what I’m going to do – and nobody is more surprised than I at what comes out.

-Joan Miró 호안 미로-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 하나 더 보자. 1925년 가난으로 하루에 무화과 몇 개만 먹으면서 버티던 시기에, 배고픔에 지쳐 방에 누워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환영이 보이는 상태에서 그렸다는 ‘어릿광대의 사육제’ 작품을 보니, 지쳐서 보이는 몽롱한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다. 살짝 왼쪽에 콧수염 난 파이프 아저씨의 미로가 많이 지쳐 보인다. 그리고 보니 그 아저씨의 배가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구나. 배고파서 뻥 뚫려버린 배를 보는 것 같다. 나도 배고파 지쳤을 때,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 너무나 재미있다. 배고플 때 그림을 그려봐야 하나? 배고플 때 나는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어릿광대의 사육제 The Harlequin's Carnival, 1924/1925, Joan Miró, 66 cm × 90.5 cm Albright–Knox Art Gallery


구성 Composition, 1953, Joan Miró 호안 미로, 96×377cm,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명이 구성 Composition 이다. 무엇을 구성한 걸까? 파란 배경인 걸로 보아,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밤하늘을 이미지화한 것으로 보인다. 아, 그렇구나. 왼쪽에 큰 별이 보인다. 미로는 밤을 우리가 꿈꾸는 시간, 꿈꾸는 세계로 생각해 작품에 많이 등장시킨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중앙에 새가 날아간다. 새 또한 미로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로 꼽았다. 2차 세계대전 즈음에 전쟁을 피해 바르셀로나로, 파리로, 뉴욕으로 삶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피해 다녀야 했던 자신의 신세에 회의감을 느끼고, 아무런 구분도 없이 제약도 없이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부러워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오른편에 경계를 나타내는 깃발이 보인다. 그 선을 넘어서 날아온 새, 그 새 바로 아래에 새와 함께 날아가는 사람이 보인다.

두 팔과 두 다리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사람, 새보다 조금 더 앞서서 훨훨~ 집 위를 날아가는 미로의 모습이 보인다. 새와 사람이 점점 긴 선들로 많이 그려지는데, 이는 직접적인 모양보다는 날아가는 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다. 중앙에는 뒷모습으로 날아가는 새와 미로를 부러워하며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이 서 있다.  그 사람의 양 옆 지나가는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다.


미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눈과 발이라고 생각하였다. 눈은 현실을 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꿈도 꾸는 양쪽을 모두 보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땅에 닿아있는 발은 현실의 땅과 꿈의 하늘을 연결하는 그 중간의 매개체로 생각하였다. 하나 더 하자면, 무생물인 사물을 의인화하는 요소로 3개 또는 4개의 머리카락이다. 별, 해, 삼각형, 사각형 등의 조형에 머리카락을 그리는 방법을 취한다. 오른쪽 끝에는 ‘어릿광대의 사육제’에서도 오른쪽 끝에 등장했던 고양이처럼, 동물 한 마리가 빼꼼히 이 환상적인 장면의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나도 날고 싶다.



단어들이 시를 완성해 가는 것처럼,
음표들이 음악을 완성해 가는 것처럼,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색을 그렇게 쓸려고 해요.

I try to apply colours like words that shape poems, like notes that shape music.

-Joan Miró 호안 미로-




초기의 자화상보다 더 심플해진 미로의 자화상. 그가 사람에게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눈, 발, 머리카락만 남았다. 바탕에 초창기 때 그렸던 스케치의 구체적인 자화상 모습이 남아 있어 인상적이다.

Self-Portrait I (Autorretrat I), 1937. Joan Miro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New York's World Trade Center 에 걸려 있었지만, 지금은 911 테러로 볼 수 없는 호안 미로의 타페스트리 Tapestry (색실을 짜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직물 공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입니다.
가령 걸을 때, 가만히 있을 때, 먹을 때 등이죠.
그럴 때 아이디어가 막 떠올라요.
내 머리와 마음에 거품이 일어날 때인 그때가 저에게는 엄청 중요합니다.


-Joan Miró 호안 미로-




오뚜기 진라면 https://youtu.be/rqT1I4YepYk


Joan Miró - Eine Woche Miró.   https://youtu.be/fsQVs39oV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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