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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Jun 21. 2024

게티 센터 The Getty, 마네의 봄 Spring

Édouard Manet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에두아르 마네 (1832 - 1883)

Jeanne (Spring) 쟌느 (봄)

1881

Oil on canvas

74 × 51.5 cm


2014년 11월 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게티 J. Paul Getty Museum 는 4년 전 거래된 마네의 또 다른 작품 ‘팔레트를 들고 있는 자화상’ 의 낙찰가가 3,320만 달러(약 440억원)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3,500만-4,000만 달러만 써도 무난히 낙찰받을 수 있을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거의 2배인 6,510만 달러(약 850억 원)를 써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네 작품 중 최고가 작품으로 곧바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게티가 써낸 이 금액은 이 작품에 대한 게티의 애착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히 짐작케 한다. 이 작품 전까지 게티는 오픈한 1997년 이후로 대표작으로는 빈 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 가 거의 유일해서 뭔가 이슈가 될 만한 큰 작품이 필요했고, 또한 이전까지 보여지지 않았던 새로운 미술관의 형태를 보여준 게티의 혁신과 이전까지 보여지지 않았던 새로운 그림을 선보였던 마네와 결이 같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게티는 실제로 이 작품에 ‘랜드마크 Landmark’라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일까? 그림 앞의 시큐리티 할아버지가 살짝 일러준 이야기가 있는데 흥미롭다. 이 그림의 양산 색깔과 미술관 밖에 관람자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비치되어 있는 양산의 색과 같은 건 우연일까? 이 양산으로 인해 게티를 찾는 우리 모두는 양산을 펴자마자 마법처럼 약 150여 년의 시간 차이를 넘어 마네의 그림 속 모델이 된다. 마네가 그토록 그리고자 했던 모던 뷰티 Modern Beauty 를 게티는 현재 우리에게 이렇게 살려 내고 싶어 했구나.


마네의 ‘봄’ 전 3,320만달러에 낙찰되였던 팔레트를 들고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Palette, 1878/1879, Édouard Manet.



From getty.edu
쟌느(봄) Jeanne(Spring), 1881,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The Getty

작품명 쟌느 Jeanne 는 이 작품의 모델인 쟌느 드마시 Jeanne Demarsy 로 그 당시 파리 극장에서 다양한 연기를 했던 여배우였다고 한다. 배우뿐만 아니라, 르느와르를 통해 마네에 까지 작품의 모델로 서게 된다. 실제 그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찾아보니, 그 당시 사진이 있네? 오똑하게 솟아 있는 코, 짙은 쌍꺼풀 라인, 살짝 들려진 턱 라인 등 그림 속 모델은 실제 그녀와 상당히 닮아 있다. 마네는 그녀를 당대 가장 이쁘고 콧대 높은 현대 파리지앵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어 했다는데 이 정도면 성공이다. 그녀가 입고 있는 의상이며 양산, 모자의 디테일까지 모두 구상해서 직접 구하고 의상실에 맡겨 의도에 맞게 맞췄다고 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가히 인정! 이다. 마네가 그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렇게 현대의 모습과 함께 과거의 클래식한 그림의 특징을 함께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마네의 아버지가 판사이고 어머니는 스웨덴 외교관의 딸로 그는 비교적 여유로운 귀족 집안에서 자랐기에,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루브르 미술관에 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티치아노 등의 거장들의 그림을 보며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영향으로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는데, 이 작품 또한 모델은 그 당시 가장 화려한 파리지앵의 현대적인 모습을 담고, 서 있는 포즈는 정면이 아닌 옆모습으로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과거의 클래식한 르네상스에 유행했던 비스듬한 옆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은 야외 숲에서 양산을 쓰고 있는 모습인데, 사실은 실제로 야외에서 그린 그림은 아니고 모두 실내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먼저 그리고 난 후에 야외 배경을 생각하며 표현하였다고 한다.

    

작품명에 봄(Spring) 이라고 적혀 있다. 마네의 ‘잔느’ 보다는 마네의 ‘봄’ 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봄 향기 물씬 풍기게 그려냈구나 싶다. 이 그림 그냥 우리 집에 걸어 놓으면 1년 내내 봄일 것 같은데? 누가 봐도 그냥 봄이다. 그린 연도를 보니, 1881년이다. 마네의 생애가 1832 - 1883년이라고 하니 52세의 생애 중에 50세에 그린 작품이다. 생을 마치기 2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마네는 1881년에 친구인 정치가 안토니 프로스트의 제안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그릴 구상을 한다. 하지만 말년에 매독이라는 성병에 걸려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은 매독이 페니실린 Penicillin(항생제)의 개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페니실린이 나오기 전이라 정말 심각한 병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매독의 무서운 점은 잠복기가 있어 무통증으로 지내다가 나았겠거니 하고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다시 나타나는 치명적인 증상으로 손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마네는 매독과 류머티즘의 합병증으로 몸이 괴사 되어 마지막에 다리까지 절단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마네는 죽기 2년 전 구상했던 사계절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봄, 가을 두 계절의 작품만 남기게 된다. 그럼 가을 작품은 어떨까? 마네의 가을 작품을 한 번 보자.

마네의 ‘가을 Autumn’, 메리 로랑 Méry Laurent (1882),  Édouard Manet, 낸시 미술관  Musée des Beaux-arts de Nancy

아, 이게 마네의 가을이구나. 가을 또한 봄 못지않게 가을 냄새 물씬 풍기게 담아냈구나. 가을 작품의 배경은 일본 문양의 패턴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당시 인상주의의 많은 화가들처럼 마네 또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문호가 개방되고 일본의 상품들이 유럽에 처음 들어오면서 유행했던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림 속 가을의 모델은 메리 로랑 Méry Laurent 으로 봄의 모델과는 다르지만, 닮은 듯 다른 듯 마네만의 느낌이 살아 있다. 참고로 메리 로랑은 매춘부이자 많은 화가들의 그림 모델을 서기도 하고 마네의 정부였다고도 알려져 있다. 매독 걸릴만하네!

마네의 드로잉 연구 Jeanne (Spring), 1881-1882, Édouard Manet, The Met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네는 계절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직접적인 그 계절의 풍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계절을 표현하였다. 당신에게 누군가 ‘사계절을 그림으로 한 번 그려 보시겠어요?’라고 한다면 우리는 보통 그 계절의 풍경을 그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마네는 그 계절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사람, 즉 여인을 통해 봄, 여름을 나타내고자 했다. 재미있는 요소이다. 그 계절에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사람과 패션으로, 더불어 그 계절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배경으로 각각의 계절을 나타내고자 했다. 계절은 날씨의 변화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마네는 우리들 마음과 옷차림의 변화에서 오는 계절을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두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드는 생각이, ‘그럼, 마네의 여름은? 마네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정말 궁금해진다. 끝내 다 그리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게 못내 너무나 아쉽다.


마네가 그린 그림의 기법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 그림이 평면적이다. 평면적이라는 것은 입체감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근감, 명암 표현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림자 표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도 모델과 배경 사이에 그림자 표현이 거의 없다. 이는 인상주의 친구들에게 유행하였던 일본의 목판화 우끼요에 화풍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파리 박람회 등의 포장지 등에서 처음 접한 일본의 풍속화는 유럽의 그림풍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그림’이었기에 많은 화가들이 빠진다. 우리 한국화 그림이 더 멋진데, 이 당시 소개되지 못해 너무 아쉽다.


둘, 그림이 터프하다. 터프하다는 것은 붓질이 디테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밀하게 그리지 않고 특징만 잡아서 크게 툭, 툭 던지듯이 그린다는 것이다. 디테일하게 표현해야 할 부분들은 또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가 터프하다. 얼핏 보면 대충 그린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봄’ 작품에서도 나뭇잎 표현을 한 번 보라. 그냥 붓칠만 툭, 툭 던져 놓았는데 뿐인데 나뭇잎이란다. 아니, 나뭇잎처럼 보인다. 이것은 그가 어렸을 때 루브르 미술관에서 많이 보았던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주로 쓰던 기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법은 그림의 대가들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알라 프리마 Alla Prima 기법이다. ‘At First, 한번에’ 라는 뜻으로 붓질 한 번에 쓱- 쓱- 하고 그리는데 특징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여 자세히 보면 물감 덩어리인데 멀리서 보면 머리카락이요, 오리요, 닭이요 하는 기법이다. 신기하다.


마네의 봄은 말년인 50세에 그렸다고 하니, 그럼 마네는 젊었을 때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마네가 32세 때 그린 작품이 바로 마네 작품 중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이다. 이 그림은 도대체 왜 유명한 걸까? 한 번씩은 모두 봤음직 한데, 이건 무슨 그림일까? 다들 뭐 하고 있는 걸까?

풀밭 위의 점심 식사 Luncheon on the Grass, 1863,  Édouard Manet,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여인 둘, 남자 둘이다. 한 여인은 완전히 옷을 벗고 있고, 다른 여인은 저 뒤에 속옷 차림이다. 남자 둘은 모두 정장을 잘 차려입고 손까지 올려가며 열정적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앞에 과일, 여인의 옷가지, 빵조각 등 소풍 소품들은 널브러져 있다. 심상치가 않다. 보통의 소풍, 점심식사의 모습이 아니다. 앞에 두 남자는 부르주아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모델은 오른쪽은 마네의 두 형제인 외젠 마네와 구스타프 마네의 조합이라고 하고, 왼쪽의 남자는 처남인 페르디난드 린호프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니 지나가자. 그냥 그 시대에 흔하게 만나는 귀족 또는 부르주아 남성들의 모습이다. 앞에 누드의 여인은 마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로 빅토르 뫼랑 Victorine Meurent 이다. 그림 속 두 여인의 직업은 성을 파는 여인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아, 얘기를 듣자 하니 이거 19금이구나! 그냥 보통의 소풍이 아닌 게 맞구나. 그 당시 돈 많은 부르주아들이 소풍 가자고 하면 그 짓(?)하러 가는 거였다고 한다. 숲 속에서 널브러진 소품을 보아하니 점심도 먹고 일도 치른 후에 쉬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구나. 겉으로는 정장을 잘 차려입은 모습처럼 점잖고 도덕적인 사람인 척하면서 뒤에서는 이렇게 노는구나, 하는 걸 꼬집는 듯 한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1863년 살롱전에서 입선하지 못한 그림들만 따로 전시했던 낙선전 Salon des Refusés 에 전시되었는데, 그 당시 미술관에 주로 오던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이 그림 앞에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그들에게 맥이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그림 속 누드의 여인은 그림 속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니라 그림 밖 관람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 ‘어? 너 여기 왔네? 너 이렇게 놀잖아, 어서 들어와, 우리와 함께 놀자!’ 그림 밖에 있는 관람자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내게 만든다. 감히 몸 파는 여인 주제에 살짝 나를 보고 비웃고 있는 표정이기까지 한데? 대단히 도발적인 눈빛이다. 그 당시 부르주아들에게 엄청난 모멸감을 주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내가 비록 이렇게 놀기는 하지만, 이런 나의 치부를 이 품격 있는 미술관에서 왜 낯 뜨겁게 까발려져야 하지? 마네 그놈도 결코 문란하지 않은 놈이 아닌데, 우리에게 왜 이런 그림을?!’ 그 당시 파리에 3명 이상 모이면 마네 욕만 했다고 할 정도이다. 엄청난 파란을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마네 멘탈도 보통이 아닌 듯싶다. 이 작품으로 충분히 욕을 먹을 만큼 먹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약 6개월 후에 이 보다 더 한 작품을 그린다.


올랭피아 Olympia, 1863,  Édouard Manet,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이 작품은 그리기는 1863년에 그렸는데, 대중에게는 1865년 살롱전에서 전시된다. 작품명이 올랭피아, 누드로 누워 있는 여인의 이름이 올랭피아 Olympia 인데 그 당시 성을 파는 여인들이 많이 쓰는 이름 중에 하나가 올랭피아였다고 한다. 그 당시 딱 작품명을 보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녀의 직업을. 머리의 빨간 꽃, 끈 목걸이, 팔찌, 깔려있는 아시안풍의 숄, 누드지만 신고 있는 신발 등이 그 당시 성을 파는 여인들이 자주 하던 장식품이었다고 한다. 오른쪽의 곧추서 있는 블랙 고양이 또한 성을 상징하는 요소라고 하니 마네의 디테일에 놀란다. 누드의 모델은 그 전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 때와 같은 빅토르 뫼랑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많이 데리고 왔던 흑인 여성들이 파리 시내에 하녀라는 직업으로 많이 있었는데, 한 명의 흑인 하녀가 꽃을 들고 있다. 분명 누군가 선물로 그녀에게 보내 준 것으로 보인다. 누가 보낸 꽃일까? 그때, 그녀의 눈빛이 다시 그림 밖의 관람자와 눈을 맞추고 있다. ‘부르주아, 너 또 왔구나! 어여 그림 안으로 들어와. 니가 자주 오던 샵이지? 너도 왔으니, 나도 이젠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네’ 이런 성을 파는 곳에 올 때는, 그냥 돈만 툭 건네주고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엄청 젠틀한 사람이야, 꽃 하나 들고 오는 게 예의고 감수성도 있고 배려심 많은 남자이지. 꽃 하나 선물하고 ‘나 왔소!’ 하는 거지. 이 그림 또한 엄청난 파란을 일으킨다. ‘마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그놈도 깨끗하지 못한 놈이면서, 왜 우리에게 이런 맥이는 그림을 그리는 거야?’ 사람들이 너무나 비난을 많이 해 대니, 혹시나 그림에 해코지 할 까봐 이 그림 앞에 경비원을 따로 세웠다고 할 정도이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From getyourguide.com

그런데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천박해 보이는 이러한 작품들을 그렸던 마네를 지금 우리는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 예술가, 마네’ 라 부른다. 왜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 보다 그 위의 대가라며 ‘예술가의 예술가’라 부른다. 왜 우리는 마네를 이렇게 높게 평가하는 걸까?

바로 ‘주제의 확장성’ 때문이다. 마네 전까지만 해도 예술이란 아름답고, 고귀하고, 숭고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만 내는 게 예술이라고 보았다. 역사화, 종교화, 신화화 등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 마네는 지금 우리 현실의 아름다운 모습과 추한 모습까지도 예술로 담아낼 수 있어야 예술이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드도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클래식한 그림 등에서 보아왔던 비현실적인 풍만하고 유려한 완벽한 아름다움의 누드만 그려졌었는데 마네는 ‘올랭피아’의 누드처럼 ‘삐툴 빼툴 이러한 누드가 더 현실적이지’ 라는 마음으로 현실의 누드 모습으로 표현한다. 많은 대중과 기존 예술가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아,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못 했지? 왜 여기까지 주제를 넓힐 생각을 못 했을까?’ 라며 이러한 마네의 생각에 공감하며 마네를 추앙하는 예술가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아, 우리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저런 그림이야!’ 라며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기존 클래식한 미술에 대한 도전가로 그를 보며 그를 따랐고, 그래서 인상주의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쳤다 하여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 그중 폴 세잔의 오마주 작품인 ‘모던 올랭피아 A Modern Olympia’ 에서는 무대 위에서 하녀가 커튼을 걷자 움츠려 있는 올랭피아가 나타나고 그 앞에서 그것을 관람하고 즐기고 있는 우리인 듯한 사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피카소는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스케치를 그리기도 하고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 중의 하나가 모네라고 말하며,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아비뇽의 여인들’ 에서 그림 밖 우리를 바라다보며 눈 맞추는 기법을 마네에게서 영감을 받아 표현하기도 하였다.

모던 올랭피아 A Modern Olympia, 1873-1874, 폴 세잔 Paul Cezanne,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왼쪽: 올랭피아 스케치 Olympia, 1902, 파블로 피카소, 개인소장  오른쪽: 아비뇽의 여인들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피카소, 뉴욕 모마



‘타히티의 올랭피아’ 또는 ‘브라운 올랭피아’라고도 불리는 폴 고갱의 ‘Spirit of the Dead Watching (Manao tupapau)’, 1892, Albright Knox Art Gallery 미국


마네는 과거의 클래식한 그림을 자신의 해석을 담아 현대적인 모습으로 그림 그리길 좋아했다고 했는데 이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 또한 기존에 존재했던 클래식한 그림을 자신의 의도대로 새롭게 재해석하여 다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정도면 표절 아냐? 우리는 이것을 ‘영감 Inspirations 을 받았다’ 라고 표현한다.

왼쪽: 파리의 심판 The Judgment of Paris, 1515/16, 라파엘 Raphael  , 독일 슈투트가르트 슈타트 미술관
왼쪽: 우르비노의 비너스 Venus of Urbino, 1538, 티치아노 Tiziano , 우피치 미술관 Uffizi Gallery

다시 50세 말년에 그린 마네의 ‘봄’으로 돌아가 보자.

젊었을 때 이렇게 온갖 비난을 받고 파리 시내를 발칵 뒤집었던 파란을 일으킨 작품들을 그렸던 마네가 나이가 들어 ‘봄’을 발표하자 사람들이 이제야 마네, 정신 차렸네! 라고 얘기한다. 이제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는구나,라고 말하며 극찬을 한다. 1882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 작품으로 마네는 당당히 2등 메달 A second-class medal 을 수여받고, 또한 더 큰 영광으로 국가 명예 그룹 The national Legion of Honor 에 입성하게 된다. 이렇게 마네는 대중적으로도 큰 찬사를 받고 더 이상 문제아가 아닌 프랑스의 대표적인 셀럽으로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점에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 그렇다면 1882년 살롱전에 마네는 2개의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봄’ 작품과 함께 출품했던 또 다른 논란의 작품을 한 번 보고 마무리할까?


폴리 베르제르의 바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2, Édouard Manet, 런던 코톨드 갤러리 Courtauld Gallery

폴리 베르제르 Folies-Bergère 는 그 당시 파리의 가장 핫한 바 중의 하나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바에서 열리는 공연도 보고, 춤도 추고, 술도 먹고 친교를 나누던 곳(카페 콩세르)이었다고 한다. 왼쪽 맨 위에 녹색 신발을 신고 매 달려 있는 두 다리가 보이는데 아마도 공연 중으로 보이고, 그것을 아래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여인이 망원경을 끼고 관람하고 있다. 이런 디테일은 참, 센스 있어 보이기도 하고 재밌네. 그 무리에 있는 여인들이 또 누구인지 찾아냈던데, 이걸 보고 어떻게 알아내지? 참 대단하다. 노란 장갑을 끼고 있는 여인이 마네의 ‘가을’ 모델이자 정부였다는 메리 로랑이라고 하고, 반갑네! 바로 오른쪽 뒤에 모자를 쓰고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마네의 ‘봄’ 모델인 쟌느 드마시, 또 반갑네! 앞에 서 있는 여인의 이름은 쉬종 Suzon, 공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 기법!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기법, 그림 밖 우리를 그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로 마네가 자주 쓰던 그 눈빛 교환 기법이다. 앞에 오렌지는 마네 그림에서는 ‘매춘’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럼 이 여인은 술도 팔고 몸도 파는 그런 여인으로 그려졌나 보다. 그런 곳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쉬종 양손 뒤로 노란 바가 지나가고 있는데 이것은 뒷면의 큰 거울의 가장자리 테두리구나. 그래서 뒷 배경은 거울이구나. 거울을 통해 이 여인의 앞모습과 이 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같이 보여준다. 그림의 정 가운데 큰 골드 바는 관람자석의 난간을 표시하고 있다. 거울이니까, 뒷면의 오른쪽 검은 옷의 뒷모습은 앞 쉬종을 비춘 거울 속의 뒷모습일 테고 중절모를 쓰고 있는 남자와 마주 보고 있다. 그럼, 거울밖에 이 중절모를 쓰고 있는 남자는 어디 있을까? 그림에는 없지만 실제 쉬종 앞에 서 있는 걸까? 그럼 왜 그림 안에서는 안 보이지? 이게 가능한 시점이야?


첫째, 마네는 정면의 시점과 측면의 시점 두 개를 모두 한 그림에 표현하였다. 이것이 세잔이 그렇게 추구하고자 했던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지는 것을 한 그림에 표현한 다시점이다. 세잔보다 마네가 더 빨랐던 것이다! 마네는 천재이다!


둘째, 아니다! 더 먼 곳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보여지는 시점이 있다. 그것을 그냥 마네는 그렸을 뿐이다. 마네가 처음 그렸던 것을 보면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좀 더 다른 각도에서 그렸을 뿐이다. 마네가 다시점의 표현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왜 이 그림만 이렇게 그렸겠는가? 그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이러한 그림이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는 그냥 그대로 보여진대로 그렸을 뿐이다!

 

위쪽: 폴리 베르제르 바에 대한 스터디 Study for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1, Édouard Manet, 개인소장.     아래쪽: Photograph by Greg Callan(2000), Courtesy of Malcolm Park



여러분의 생각은?  

저는 두 번째에 마음이 더 가는데,

일단 이거 뭐, 직접 연출해서 사진 한 번 찍어봐야 하나?





I paint what I see and not what others like to see.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 

-Édouard 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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