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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Dec 10. 2023

텅 빈 청춘이 울고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일본, 일본어

20년 전의 나는 일본을 좋아했고, 일본어를 잘하고 싶었다. 그땐 그게 내 세상의 전부였고 희망이었다. 소원대로 졸업 후에는 도쿄에서 첫 직장을 구했다. 2006년에 연봉이 5천은 됐었으니 참 괜찮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노동 강도를 요구했다. 매일 나를 갈아 넣으면서 이게 원하던 인생이 맞는지 의문이 생겼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던 4년이 지나가고 나에게 남은 건 5천만 원과 우울증이었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내가 불쌍했고,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내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탓이라고 굳게 믿었다. 자기 연민은 피해의식을 불러왔고 자기 파괴로 이어졌다.



아무 대책 없이 충동적으로 직장을 관뒀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7년 동안 은둔했다. 통역 번역 한두 번 해본 게 전부였다. 통장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이력서를 돌렸다. 연락온 건 일본어학원이 유일했다. 다시 일본어 책을 펼쳤다.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하루 두 시간 수업하고 한 달 후 통장에 꽂힌 돈은 30만 원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조금 더 큰 학원으로 옮겼다. 하루 8시간 강의하고 100-150만 원을 벌었다. 어이가 없었다. 동료 강사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이게 일본어의 현실이었다.  사무직을 찾아 다시 이력서를 넣었다. 일본어가 가능한 사원을 모집하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거기서 1년을 일했다. 갑자기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그만뒀다. 다시 백수가 되면서 우울증이 심해졌다. 나는 왜 일본어를 전공한 건지 왜 내세울 게 일본어 밖에 없는지 한탄하는 날들이었다.



나에게 맞는 약을 먹으면서 우울증은 많이 호전되었다.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영어로 메일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 때 공부했던 토익 덕에 합격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본, 일본어를 벗어났다. 개운했다. 질긴 인연의 끝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드디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며 자축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텅 빈 청춘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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