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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Jul 26. 2024

브런치는 좁은 글쓰기 플랫폼이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서 느끼는 건 메인은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브런치는 왜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좋아하는 걸까. '사람 사는 냄새' 풍기면서 '우리 사는 건 다 똑같지 않나요'를 강요하는 느낌마저도 든다. 아닌가. 오히려 독자들이 그런 글만 좋아해서 브런치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런 글들만 전시하는 건가. 


브런치에 오면 나는 '정'이 없는 사람이 된다. (시) 어머니의 요리에 얽힌 에피소드는 너무나 지겹고, 나이가 땡땡 살인데 결혼을 안 해도 행복하다는 혹은 이상하게 바라봐서 불편하다는 류의 글들, 알아주는 기업에 다녔던 내가 퇴사 후 이런 하찮(다고 인식되는)은 일을 하지만 행복하다는 글, 취미 생활에 관한 글들은 귀여울 지경이고, 외국 체험담은 양반이다. 안 봐도 뻔하다.


내 글이 몇 번 다음 메인에 걸린 적이 없는데 그중 하나는 차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글이었다. 내용도 짧았고, 끝 마무리는 '이 차는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른다' 뭐 이렇게 휘갈겼다. 그 글 읽은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뭐? 산 것도 아니고 살 거라는 글이 뭐 어쩌라고?' 황당했을 것이다. 


브런치 메인, 다음 메인이 좋아하는 카테고리는 정해져 있다. 지금 현실에서 이러이러한 힘듦이 있지만 이러이러하게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류. 나이 먹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나이 먹음에 두려워하지 않음도 단골 소재다. 요리 레시피나 미니멀리즘도 브런치가 환장하는 주제이고, 퇴사/이직도 말하면 입 아프다. 나는 이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지 브런치를 통해서 알았다


브런치는 다수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 플랫폼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 수가 많은 쪽이 이기는 법이니까. 깊이 있게 한 분야를 파고드는 글은 절대 메인에 오르지 못한다. 양질의 글을 쓰는 사람은 지쳐서 떠나게 되는 구조이다. 여기서 양질이라 함은 수년(수 십 년)에 걸쳐 학문/커리어를 깊게 파고들며 연구하거나, 사색하여 얻은 결과물을 말한다.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검색하다 보면 너무나도 빈약한 결과에 실망하곤 한다.


참고로 나는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다. 내가 쓴 글은 쓰레기통이 어울리며, 한 분야를 파고들며 업적을 쌓지도 않았다. 내 글이 인정을 못 받아서 울분에 차서 쓰는 글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 글은 브런치를 까는 글이므로 노출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삭제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글이 안 써지는 분에게 이런 글을 제시한다. 오늘 하루 글을 쓰려고 했는데 써지지 않아서 무작정 걸었으며, 갓 구운 빵과 아아를 마셔서 기운을 되찾았고, 맑은 날씨에 힘을 입어 자리에 앉아 뭐라도 쓰려고 한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글. 


내가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면 분명히 생활이 소중하지 않다는 거냐며 반격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밥벌이가 최우선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브런치의 '편향성'이다. 브런치는 종합 글쓰기 플랫폼을 지향하지 않는다. 힘든 일 있으면 토로해 주시고, 살짝 자랑도 섞어 주시고, 가족 에피소드는 꼭 넣어 주시고, 남들과 다른 일상(직업) 경험이면 더 좋아요.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 다들 알고 있는 건데, 나만 이제야 깨달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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