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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5시간전

(시) 더빙 / 조온윤

더빙 / 조온윤



생각을 끄려고 음악을 틀었다


수요일인 줄로 알고 목요일을 보냈다


비가 온다는 걸 안 뒤에야 우산을 샀다


풍경이 나보다 먼저 흐르고

나는 몇걸음 뒤처져 따라갔다


늦은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 안의 미움을 웃음으로 번역하는 매일매일


무슨 말을 하는데 자꾸만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요


세상과는 영 입 모양이 맞지 않았다






끄고 싶은 '생각'이 있다. 현명하게도 '음악'으로 바꿔버린다. '수요일'과 '목요일'을 혼동할만큼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게 없을 때다. '우산'을 챙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비가 온다는 걸 안 뒤에야' 우산을 산다. '풍경'은 저만치 앞에서 흐르는데, '나'는 '몇걸음 뒤처져 따라'간다. '나'는 나를 둘러싼 배경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의일까, 타의일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일까. '내 안의 미움'을 '웃음'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도 '매일매일'. '무슨 말을 하는데' 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 '모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본심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나약한 위치에 있다. '세상과는 영 입 모양이 맞지 않'아서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어를 바꾸어 다시 녹음하는 걸 더빙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그대로 노출할 수 없다. 이 시를 읽고 공감하는 사람 많을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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