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대중이 만나서 하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지금까지 논의한 다양한 주제들을 보면, '대중의 관심과 참여'나 '사회적 합의', '제도적 뒷받침' 등의 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습니다. 과학기술은 사회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고, 쌍방향적인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 이 모든 이야기의 밑바탕에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를 보다 구체화해서, 대중은 과학기술 분야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까요? 또한, 과학기술에 관한 사회적 제도와 법규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할까요?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01.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정의와 형태
가장 먼저 살펴볼 '과학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대중이 전달받고, 이해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때 과학자, 언론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과학을 대중이 접근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운 대상으로 만듭니다. 과학기술은 다른 분야와 비교할 때 진입장벽이 있으며, 논의에 참여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복잡한 과학기술의 개념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고,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게 돕습니다. 이를 통해 대중이 과학 관련 사회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됩니다. 우선, 과학 저널리즘이 있습니다. 이는 TV, 신문, 잡지,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를 통한 과학 보도를 말합니다. '동아사이언스'나 'YTN사이언스'와 같은 과학 전문 매체의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EBS 등에서 제작하여 송출하는 과학 다큐멘터리도 이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교육활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역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강연이나 강좌, 문화센터 프로그램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의 과학커뮤니케이션 외에도 새로운 형태들이 속속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팟캐스트 등 온라인 과학 플랫폼을 통한 과학 콘텐츠의 제공은 이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 역시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산물입니다. 온라인 과학 플랫폼은 최근 유튜브를 포함한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때, 과학커뮤니케이션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커뮤니케이션은 전달자가 선별하고 강조하는 과학적 사실이 전달되는 과정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과학 박물관과 과학 전시회입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유형의 시설을 통칭해서 '과학관'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의 과학관은 관련된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곳을 넘어, 방문객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하고 과학을 바라 과학기술에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등 관람객과 의사소통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과학관의 전시와 체험활동 프로그램에는 과학관의 운영 주체, 국가가 강조하는 과학이 투영된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과학관의 전시를 포함한 과학커뮤니케이션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국가나 사회가 대중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국립과천과학관'의 개편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2008년 11월 개관한 종합과학관인 과천과학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과학관이며, 2008년 국무회의에서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어 국가 기관으로서의 대표성을 갖습니다. 과천과학관은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대대적 개편을 통해 전시 전반의 구성을 바꾸었습니다. 우선, '첨단기술 2관'이 '첨단기술관'으로 개편되면서 기존 전시물이었던 신소재와 기계 분야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보였습니다. 개편 이후, 소재 분야는 기존의 신소재 중심의 전시가 아닌, 실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합성섬유와 각 합성섬유의 특징에 집중하는 전시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2010년대에 확립된 정부의 과학교육 방향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11년 발표한 교육계획은 과학에 대한 흥미와 융합적 사고 능력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과목 간 연계를 강화하고 일상과 과학을 연관시키는 것이 주요 과제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교육부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통합과학’ 교과목을 신설하고, 기존 과학과의 분과들을 통폐합하거나 융합하여 다시 실생활과 직관적으로 연관된 영역들로 재구성했습니다. 즉, 이러한 국가적 교육 목표에 맞추어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체감하는 과학 중심의 개편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기계 분야의 미래교통 전시물들은 전시관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형 수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례로, 미래교통 코너의 핵심 전시물이었던 자기부상열차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전후에는 학계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이를 주제로 한 연구논문은 학술지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2019년 국립중앙과학관의 자기부상열차 철도의 운행 중단이 논의되고 관람객 만족도 평가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자기부상 열차, 나아가 미래 교통수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호응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고, 이러한 맥락이 전시물 개편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첨단기술 2관의 이와 같은 변화들은 정부 정책 변화와도 연관해 분석이 가능합니다. 2003년 정부가 발표한 차세대 성장동력에는 산업용 신소재와 미래형 자동차, 고부가가치 선박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정부 과학 정책의 중점 분야가 변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개편 이후 해당 주제의 전시물들이 축소 및 삭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기존의 신성장동력들을 대체하며 부상한 키워드가 4차 산업혁명입니다. 2015년도 미래창조과학부 출범과 함께 ICT 사업의 중요도가 크게 제고되었고, 특히 ICBM 등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이 형성됨에 따라 SW는 창조 경제 실현의 핵심 요소로 강조되었습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 역시 4차 산업 혁명의 중요성과 함께, 기존의 과학기술 지식을 ICBM 및 AI 등의 신기술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과천과학관의 '첨단기술 1관'이 개편된 '미래상상SF관'은 이러한 강조점과 맞닿아있습니다. 미래상상SF관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미래 세상의 편리한 생활을 그리는 1부와 이를 보다 확장하여 SF 대중예술과 연결 짓는 2부로 구분됩니다. 1부에서의 변화는 이러한 새로운 가치를 미래세상이라는 컨셉을 통해 조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부의 세부 주제들이 제시하는 밝은 미래세상은 정부가 제시하는 4차 산업 혁명의 비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AI와 ICBM 기술의 결합을 통한 스마트 공장으로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자율자동차와 스마트 교통을 통해 교통사고가 감소하는 등의 모습은 전시물과 정부의 ICT 정책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한편, 2부는 SF 작품들을 모티브로 한 ‘우주시대’를 그린 메인 홀과 여러 캐릭터들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전시한 ‘휴먼과 에일리언’ 전시실, 한국의 SF 역사관 및 넥슨 메이플스토리와 협업해 만든 게임연구소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주시대 전시실에서는 SF적 상상을 전시물로 구현함으로써 대중문화를 과학과 연관 짓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디오라마 관이나 넥슨관 역시 대중적으로 흥행한 소재를 통해 과학과 대중문화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합 시도는 정부의 교육정책과 유관할 것입니다. 한국은 제7차 교육과정부터 과학-기술-사회의 상호 작용을 인식하는 STS요소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의 과학관 관련 정책의 방향성은 ‘창조경제 문화 조성’이었습니다. 이는 과학관의 기능이 문화와 융합하고, 나아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02. 과학커뮤니케이션의 구체적 사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사후 활동을 중심으로
이러한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유형과 특성은 구체적인 사례에서 융복합적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진행된 활동들은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종합적인 예시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관련 기관들은 복잡한 과학적 정보를 일반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불안을 해소하며, 적절한 대응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고 직후 방사선 노출을 줄이기 위한 즉각적인 정보가 제공되었으며 방사선 레벨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결과가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었습니다. 식품 안전, 제염 활동 등 일상과 관련된 실용적 정보 역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제공되었습니다. 이에 더해,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방사선 위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온라인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질문하고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였으며, 최신 연구 결과를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했습니다.
원전 사고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다음에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동안 아동의 갑상선 암 위험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크게 진전되었는데, 이를 주민들에게 효과적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과학커뮤니케이션을 활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갑상선 암 위험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였으며 방사선 노출과 갑상선 암 발병 위험의 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갑상선 검진 프로그램의 중요성과 결과를 설명함으로써 많은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 진행된 방사선 위험 관리 교육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특히 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여성'이자 '어머니'라는 이들의 특수한 입지가 고려되었습니다. 주부들의 특수한 상황과 우려사항을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었고, 일상생활에서 방사선 노출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방사선 위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심리적 지원에도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와 같이 후쿠시마 방사선 위험 이해를 위한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였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과학적 정보와 진입장벽이 있는 지식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정보 전달자들이 목표로 하던 것처럼, 이러한 활동들에서 선별되고 강조된 과학지식들은 대중의 불필요한 불안을 해소하며, 적절한 대응을 유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나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시민과학' 활동의 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식품, 토양, 공기 중의 방사능 오염을 직접 측정하고, 측정 결과를 공유하고 논의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시민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