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며(삶이 보이는 창 138호 발행인 글)
녹색 세상을 향해…
여름은 세상 빛이 녹색입니다. 봄철에 돋아나기 시작하던 풀들이 지천으로 번지고 성장하여 녹음으로 가득한 계절입니다. 밭에는 작물도 잡초도 무럭무럭 자라 희비가 엇갈리는 묘한 시기입니다. 노동 현장에서는 얼음물을 들이켜도 쏟아지는 땀방울을 주체하기 힘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노동자와 농어민의 고된 노동과 굵은 땀방울을 생각하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산물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물론 하루 종일 쾌적한 환경에서 워라밸을 누리는 경우에 가끔씩 냉방병을 앓기도 하는 여름입니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내려놓으면 세상은 녹색 천지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녹색은 흔히 안전, 평화, 휴식, 구급과 구호, 행운, 풍요 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함의를 담고 있는 녹색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깨지거나 무너지면 평온한 삶의 유지가 힘들어진다는 의미네요. 더 나아가서 평온이 깨어진 삶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의 희구와 갈망을 담고 있는 색입니다. 장마와 무더위로 인해 하루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던 계절인데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니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라지네요. 온갖 먹거리의 성장과 결실을 위해 필요한 생산의 전제조건만이 아닌 ‘녹색 갈증’을 충족시켜 주는 계절 여름의 중요성이 새삼스러워지네요.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구는 생의 마지막까지의 소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위협을 받거나 상실하지 않으면 물과 공기처럼 절실함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을 뿐이지요. 풍요와 행운은 개인과 국가의 성장 과정에서 늘 간절한 소망일 수밖에 없으며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유발합니다. 쓰러질 것 같은 노동 이후 휴식의 간절함과 위기 상황에서 건져내는 구급과 구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녹색의 상징이라면 너무나 귀한 색입니다. 아울러 녹색으로 가득한 여름이야말로 계절의 여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다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사계절의 순환에서 여름이야말로 절정의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계절 중 가장 힘든 계절을 굳이 꼽으라면 여름과 겨울을 고르겠지만 어린 시절 저수지와 바다에 뛰어들던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버거웠던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이순에 이르러 녹색을 깊이 고찰하고 의미를 이해하니 만시지탄이기도 하지만 나이를 헛먹지는 않는다는 멋쩍은 생각이 듭니다.
계절의 여왕 여름에 삶이 버거운 분들은 뙤약볕과 장마가 가을의 결실을 위한 통과의례라는 생각으로 잘 버티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햇빛과 물을 공급하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며 내일을 기약하는 여름의 나날을 보내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버거운 오늘을 견뎌내는 사람에게만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고 새로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 삶이니까요. 작열하는 태양 아래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논밭에서 바다에서 오늘의 버거운 삶을 일구는 분들에게 자연의 이치는 더 절절하게 느껴지겠지요.
견뎌내다 보면 어느새 인고의 낱알을 수확하는 계절이 온다는 어느 경전에나 있을 법한 이치로 하루하루를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가을 겨울 봄을 견디다 보면 녹색 세상이 오는 것이니까요. 시내의 한 귀퉁이에서도, 교외의 산야에서도 녹색의 오늘이 그냥 온 것이 아님을 나무와 풀들은 웅변하고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인간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오늘을 견디는 것이 자연의 일부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희망이라는 이름표로 가득한 녹색 세상의 삶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힘겹지만 푸른 빛으로 에워싸인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삶이 보이는 창을 활짝 열고 간곡하게 녹색 위로를 드립니다.
2024년 어느 여름날에 발행인 이호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