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소한과 대한이 지났음에도 한파가 유난히 길다. 추위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따스한 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져 간다. 그렇지만 시간이란 늘 유연하게 흘러가기에 아무리 재촉한다 한들 앞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록 계절이라는 시간성을 물리적으로 어찌하지 못하지만, 옛 문인들이 남긴 그림으로 계절의 아취를 달래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1_1. 심사정의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심사정.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1766년. 비단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첫 번째 그림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 - 1769)이 그린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다. 현재가 그린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는 맹호연이라는 시인의 고사를 그린 그림으로 맹호연은 이백과 두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펼친 성당(盛唐)의 대표적 시인이다. 맹호연은 당시 정치의 혼탁함을 느끼고 은거의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남쪽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겨울 판교(灞橋)를 건너 탐매행(探梅行)을 실행한다. 이때 "매화를 찾아 겨울을 나선다(踏雪尋梅)"라는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심사정은 그림 우측 상단에 '파교심매(灞橋尋梅)'라 화제를 적었지만, 맹호연의 시 제목인 '답설심매(踏雪尋梅)'라고 붙여도 무방하다. 그림을 보면 나귀를 탄 선비의 자세가 부동에 가까울 정도로 의연하다. 한겨울 탐매를 하겠다는 맹호연의 의지를 선비의 뒷모습으로 담아내었다. 그에 비해 거문고와 보따리를 메고 선비의 뒤를 따르는 동자의 표정은 다소 시큰둥해있다. 그래도 동자가 멘 거문고를 보면 선비의 탐매 길이 얼마나 운치가 있는지 보여준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면 설경을 회색의 먹색과 여백으로 나타내었다. 어두운 회색과 차가운 흰 여백이 대비되어 정말 추운 겨울의 한기가 선명히 다가온다. 고목의 나뭇가지와 산세의 능선을 보면 좌측으로 꺾여있는 것이 마치 삭풍이 매서 회 치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진다. 반면, 선비와 동자의 모습에만 옅은 담채로 채색을 올려 그림에 작은 온기를 더해주는 것 같다. 정말 시정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렇듯 심사정은 탐매를 위해 떠나는 맹호연의 심정과 시를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1_2. 겸재 정선의 설평기려도(雪坪騎驢圖).
정선. <설평기려도(雪坪騎驢圖)>. 1740년. 비단에 수묵. 간송미술관
위 그림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 1759)이 양천 현감으로재직 시절 그린 것이다. 정선은 그림 우측 상단에 제를 설중귀려(雪中歸驢)로 적었지만, 심사정이 그린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와 같은 결의 그림이다. 정선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인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그가 그린 <설평기려도(雪坪騎驢圖)>를 보고 감상 시를 달았다.
"길고 높은 두 봉우리, 아득한 십 리 벌판이다. 다만 거기 새벽 눈 깊을 뿐, 매화 핀 곳 알지를 못한다.(長了峻雙峰 漫漫十渚 祗應曉雪深 不識梅花處)"
시는 맹호연처럼 추운 겨울 매화 핀 곳을 살펴나가는 내용이다. 아마 사천은 그림의 선비가 탐매를 떠나는 맹호연의 모습으로 읽은 것 같다. 겸재 역시도 그와 같은 마음이기에 사천이 감상을 마친 시 끝부분에 본인의 낙관을 찍었다.
단편적으로 그림을 보면 두 봉우리로 그려진 산은 작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굵은 선으로 산의 능선을 그리고 나머지 여백은 짙은 먹으로 하늘로 처리하여, 마치 폭설이 그친 뒤 눈이 쌓인 악산(嶽山)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산 아래의 마을과 눈벌판 사이를 옅은 필선을 그어 공간의 거리감의 느껴진다. 또한, 한 겨울에 눈 쌓인 벌판이 선염으로 처리함으로써 계절의 사실감이 돋보인다. 그 벌판 사이에 다리를 이어지게 그려내어 매화를 찾아 떠나는 선비의 여정이 무척이나 고단해질 것이 예측된다. 심사정의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는 세로형으로 매서운 한파가 느껴지는 그림이라면, 정선의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는 가로형으로 길게 배치하여 겨울이라는 계절의 시간성을 나타내었다.
두 그림 모두 한 겨울이라는 고단함 속에서 매화라는 아취를 사유하는 목적성이 엿보인다. 이렇듯 옛 문인들은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계절의 시간성을 담으려 했다. 이들처럼 한 겨울에 매화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이다.
2. 전기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친구가 매화동산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
탐매(探梅)의 주인공은 맹호연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매화의 에피소드가 그의 것은 아니다. 맹호연만큼이나 매화에 진심인 시인이 있으니, 바로 송대의 은사(隱士) 임포(逋)다. 임포는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별칭을 있을 정도로 매화는 아내처럼, 학은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얼마나 매화를 아꼈는지 정원에 매화만 1000그루를 넘게 심었다. 더불어 매화가 만개할 때는 친구들을 불러 피리와 금(琴)을 틀며 향유했을 정도로 풍아(風雅)를 즐긴 인물이었다고 전해진다. 대체적으로 서재에서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감상하거나 사람이 찾아오는 그림은 임포가 주인공이다.
전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19세기 중엽. 종이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고람(古藍) 전기(田琦, 1825 - 1854)가 그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역시 임포를 화재(畵材)한 그림이다. 그림은 앞산과 뒷산 모두 눈으로 덮인 풍경을 담아내었으며, 그 사이사이에 흰 눈망울처럼 피어오른 매화를 그려 넣었다. 눈꽃이 내리는 설경인지 아님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봄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몽환적인 공간이다. 더불어 매화가 서재를 포근히 감싸고 있어 차가운 흰 설경과 대비된다. 이러한 연출로 인하여 그림의 아취가 절정으로 느껴진다. 서재에 앉아 있는 인물은 초록색이며, 찾아오는 손님은 붉은 홍색으로 나타내어 화면의 중심과 밖을 자유로이 이탈하게 해 준다.
붉은 홍색을 입은 손님을 자세히 보면 어깨에 거문고를 걸고 매화 핀 동산을 향하고 있다. 아마 서재의 주인 초대에 대한 답례로 한 곡주를 뽑을 생각인 것 같다. 그래서 전기는 매화가 감싼 서재를 향해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기쁠지 으레 짐작하여 손님은 붉은 홍색으로 칠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서재의 주인이 푸른 녹색인 것은 차분히 손님은 기다리는 마음일 것이다. 재밌는 것은 당연히 서재의 주인공은 그림은 그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 역매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어요.(亦梅仁兄草屋笛中)"
전기는 초옥의 주인공이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 - 1879)라고 그림에 제를 달았다. 그렇다면 붉은 홍색을 입고 거문고를 든 인물은 바로 본인이며 친구 집에놀러 가는 본인의 기쁨을 붉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경석은 피리를 불고 있다고 적혀있지만 나뭇가지에 가려있다. 아마 작은 장난기를 넣은 것이 아닐까 한다. 매화처럼 두 사람의 우정이 은은하고 깊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임포 못지않은 풍아(風雅)다.
3. 매화가 아직 피지 않았다면 매화 그림으로 그것을 대신한다.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은 탐매의 여정을 매화의 아취로 나타내었다. 고람 전기는 우정을 통해서 매화의 풍아를 그렸다. 누구는 매화를 통해 고독한 마음을 즐겼고, 또 다른 이는 매화를 우정으로 꽃 피었다. 탐매(探梅) 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한 겨울에 매화를 그림으로 푼 마음은 같았다. 이것이 바로 은은한 항연의 정신미이다.
참고문헌
1. 이원복, 한국미의 재발견, 회화, 솔. 2005.
2. 고연희, 선비의 생각, 산수를 만나다, 다섯 수레, 2012.
3. 임희숙, 살다 사라지다, 삶과 죽음으로 보는 우리 미술, 아트북스, 2022.
4. 조정육,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오늘, 옛 그림 속의 성현들에게 지혜를 청하다, 아트북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