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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Jun 26. 2023

무더위를 날리는 소상팔경의 강천모설(江天暮雪).

옛 그림 산책. 6



 

1. 더위를 날리는 북풍한설(北風寒雪)의 그림.

 

 입하(立夏)도 지난지 벌써 한 달하고도 반달이 지났으며 지금은 밤보다 낮이 길다는 하지(夏至)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 예로부터 문인들은 무더위에는 청량감과 시각적 시원함이 담긴 그림이나 시문이 적힌 부채로 여름을 보내었다. 지금의 현대인들도 에어컨과 선풍기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부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부채로 여름을 보내는 것으로 정신을 붙잡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옛 문인들은 부채만큼이나 행동한 방식이 있으니, 바로 그림 감상이다. 바로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담긴 겨울 산수를 벽에 걸어 감상하며 혹서(酷暑)를 보내었다. 육체적인 한계를 그나마 시각적으로 보완하자는 의미인데, 이 같은 행위를 아취(雅趣)라 한다.

    

 옛 문인들처럼 겨울을 주제로 그려진 그림을 살펴봄으로 무더위를 조금 식혀볼까 한다.




2. 조선초기, 안견과 절파의 조화.

2_1. 안견의 설경(雪景).


 조선후기 산수화의 화성(畵聖)을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라면, 조선 산수화의 시작은 바로 바로 안견(安堅 ?-?)이다. 오늘날의 안견이 그린 것으로 정의된 그림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뿐이다. 그 외 그림은 안견이 그린 것으로 추정 또는 안견의 화풍을 따른 그림들이다. 그래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제외하곤 나머지 그림들은 전(傳)칭작으로 분류하고 있다. 비록 전칭작이지만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같은 안견의 화풍을 다분히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초기의 산수화를 눈여겨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傳)안견, <강천모설>, 15세기, 35.8x28.5cm, 비단수묵, 국립중앙박물관 / (傳)안견, <초동, 만동>, 15세기, 35.8x28.5, 비단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위 그림들은 전(傳)안견의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작품들로 <소상팔경도_강천모설>와 <사시팔경도_초동, 만동> 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쳐지는 곳은 당시 천하절경으로 중국의 문인들이 시와 서화를 남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문화는 북송 때 꽃을 피웠으며 한반도의 경우 고려 시대 때부터 전해진다.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갈 수 없는 조선의 문인들은 고려 때부터 내려온 소상팔경(瀟湘八景)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특히 시의 사시사철(四時四季)을 표현한 내용을 8폭 형식의 화첩으로 많이 남겼다. 그리고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식을 사시팔경(四時八景)이라는 사계절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안견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소상팔경도_강천모설(江天暮雪)>는 소상팔경의 겨울을 그린 것이며, <사시팔경도_초동(初冬), 만동(滿冬)>는 사계절 중에서 초겨울과 늦겨울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소상팔경도_강천모설(江天暮雪)>는 저물녁 눈내리는 산사의 풍경을 의미한다. 나무는 해조묘(蟹爪描)로 그렸으며, 산의 구도는 삼단구도 등을 보아 이곽파의 화풍이다. 단선점준(短線點皴)으로 산의 능선을 처리한 것을 봐서 조선 초기 안견 화풍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을 보면 하늘은 흑백으로 처리하고 산봉우리는 여백을 주고 그 아래는 옅은 담묵(淡墨)으로 선염(渲染) 하였다. 이러한 여백 처리는 눈이 깊이 쌓인 설산처럼 시각의 시원함과 차가움을 주고 있다.  오른쪽 그림 하단은 좁은 다리에 두 사람이 설경을 뚫고 산사를 향하고 있다. 마치 광활한 설산을 탐험하는 산객처럼 현장의 긴장감이 엿보인다.

 

 <사시팔경도_초동(初冬), 만동(滿冬)>도 <소상팔경도_강천모설(江天暮雪)>처럼 안견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들이다. 좁은 화면이지만 삼단구도로 산수를 구상하여 감상은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더불어 편파구도(偏頗構圖)로 그려져 있어 시선의 핵심이 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소상팔경도_강천모설(江天暮雪)>처럼 공간에 적절한 여백처리를 하여 산수의 계절이 설경의 겨울이다. 더불어 여백의 효과는 그림의 고요함과 아득함을 주고 있어 겨울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2_2. 안견 못지않은 이징의 한산(寒山).


 조선 초기 안견(安堅 ?-?)과 안견 화풍이 산수화의 초입을 열었다면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인물은 허주 이징(李澄, 1581~1653)이다. 허주 이징은 왕족이자 화가이다. 그의 부친은 부친 학림정(鶴林正) 이경윤으로 성종의 8남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의 종증손이다. 그리고 이경윤의 동생으로 죽림수(竹林守) 이영윤(李英胤)은 허주 이징의 숙부가 된다. 이렇듯 허주 이징의 아버지와 숙부는 당대 이름을 날린 문인화가 들이다. 허주 이징 역시 이들의 솜씨를 빼닮아 어릴 때부터 그림에 기질을 보여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허주 이징은 가문의 화풍과 더불어 안견파 화풍과 절파(浙派) 화풍을 혼용하며 산수를 그렸다. 조선중기 안견파와 절파의 혼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징, <소상팔경도_강천모설>, 16세기, 37.6x40cm, 비단수묵, 국립중앙박물관

 허주 이징이 그린 <소상팔경도_강천모설(江天暮雪)>은 조선 초~중기 작자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소상팔경도이다. 이징의 <소상팔경도_강천모설(江天暮雪)>을 보면 안견파 화풍처럼 해조묘(蟹爪描)와 단선점준(短線點皴), 그리고 삼단구도이다. 구도에서 다소의 차이점으로 전경의 경물을 중심선 위치에 가깝게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는 그림의 수평감을 주어 산수의 긴장감보단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안견 화풍처럼 한랭한 겨울의 긴장감보단, 설산에 포근히 쌓인 눈처럼 시각적으로 포근하다. 그리고 근경 하단의 바위를 표현한 기법을 보면 허주 이징은 절파(浙派) 화풍까지 섭렵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허주 이징은 기존 조선 초기부터 내려온 안견파의 화풍과 당시 중국에서 유입된 절파(浙派) 화풍을 능력껏 발휘한 화가이다.


 안견파의 산수는 숭산(崇山)의 긴장감을 작은 화면에 나타내었다면, 허주 이징의 경우 설경의 평온함을 작은 화면에 담았다.




2. 조선후기, 형식보단 내용이 담긴 강천모설(江天暮雪).

2_1. 정선의 호방한 설경.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금강산과 인왕산, 한강 등 조선의 실경을 산수로 그린 문인화가로 알려졌지만, 사실 실경산수만큼이나 관념산수도 즐겨 그렸다. 물론 정선이 그린 조선의 산수를 그의 작품 중 가장 큰 으뜸으로 삼았지만, 사실 무엇을 그리던 정선의 그림은 없어서 못 구하는 그림이었다.

 

정선, <소상팔경첩_강천모설도>, 18세기, 23.4x22cm, 견본수묵, 간송미술관

 정선이 그린 <소상팔경첩_강천모설>을 보면 안견과 이징이 그린 <강천모설>보다 구성이 자유롭다. 소상팔경이라는 의미는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애용되어왔지만,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달라진 것이다. 안견파와 이징의 경우 화풍의 변화가 있을 뿐 배치하는 구도와 형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정선이 그린 <강천모설>은 수묵의 선염(渲染)으로 처리한 겨울 이외는 기법과 형식이 다르다. 오히려 산수의 배경은 단순하고 인물이 중심묘사로 삼았다. 안견파와 이징의 경우 산수로 내용의 세부묘사를 나타내었다. 더불어 전(傳) 안견 <강천모설>에서 추운 겨울 설산을 뚫고 산사를 향하는 인물을 부수적인 요소로 작게 표현했다면, 정선은 인물이 주인공이다. 한랭이 가득한 그림 속에 나귀를 탄 문인이 산사를 향하는 그 과정이 그림의 내용인 것이다.


 이 모든 과정도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주제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정선은 인물을 중심으로 삼은 것 같다. 이 전시기 산수의 화려함과 고요함을 강조하였다면, 정선은 산수의 평담천진(平淡天眞)을 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2_2. 심사정의 한강(寒江).


 심사정(沈師正, 1707 – 1769)도 정선과 같이 동시대 인물로 당대 산수로 일가를 이룬 인물이지만, 역전의 집안이라는 꼬리표로 가난하여 그림으로 생계를 꾸린 화가이다. 다른 직업 화가들과는 달리 문인의 성격을 띠고 있어 당대 문객들이 선호하였다.


심사정, <소상팔경도_강천모설>, 18세기, 27x20.4cm, 지본담채, 간송미술관

 <소상팔경첩_강천모설>도 심사정만의 격이 담긴 그림이다. 거친 붓질로 사물을 초탈하고 성글게 묘사하였으면서도 부분 부분에 낮은 농도의 담채를 활용하여 그림에 아취(雅趣)를 넣었다.


 더불어 정선이 그린 <소상팔경첩_강천모설>처럼 주제는 소상팔경이지만 그림의 형식은 개성적이다. 어부가 도롱(茅草)을 입고 배를 끌고 있어 한강독조(寒江獨釣)나 어옹귀조(漁翁歸釣)라 할 수 있지만, 작은 먹점(墨點)들이 강천모설(江天暮雪)이라는 그림의 화제처럼 강천(江天)에 매섭게 내리는 눈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섬세함은 심사정도 정선 못지않은 필법의 기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선염(渲染)의 담묵(淡墨)대비도 산의 능선과 어부와 배 주변에 짙게 처리하여 앞서 본 그림들처럼 깊고 한랭(寒冷)한 겨울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나타내었다. 다른 그림들과 달리 강이 차지하는 부분이 화면에 반절이라 추운 겨울의 현실감이 더 높아 보인다. 아마 본인이 처한 가난한 상황이 세한고절(歲寒孤節)의 겨울과 큰 차이점이 없어 더 현실적인 강천모설(江天暮雪)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3. 변함없는 설경한림(雪景寒林).


 안견(安堅 ?-?)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과 허주 이징(李澄, 1581~1653), 겸재 정선(鄭敾, 1676∼1759),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 – 1769) 이렇게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소상팔경의 강천모설(江天暮雪)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의 강천모설은 형식미와 장식미의 격을 갖춘 그림들이었다. 즉, 눈발이 날리는 추운 강천의 모습을 작은 화면에 깊고 웅장하게 담았다. 자연이라는 계절성을 화면에 담는 것을 우선시한 것이다.     

 

 반면 조선 후기는 기존의 소상팔경이라는 주제의식은 가지고 왔지만 그림의 기법과 화면구성은 개성적이고 호방한 성격을 갖추었다. 더불어 화면에 점경인물(點景人物)을 중점으로 배치하여 자연과 인간의 교우를 의미하는 형식을 추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소개한 모든 강천모설도(江天暮雪圖)가 설경한림(雪景寒林)의 겨울이라는 주제의식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혹독한 무더위를 시각적으로나마 안복과 시원함을 주는 좋은 그림들이다.




참고문헌.

1. 고연희, 조선의 산수화, 돌베개, 2007.

2. 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강의 3, 눌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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