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구토』 – 실존의 무게와 구원의 가능성
장 폴 사르트르의 첫 장편소설 **『구토』**는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출발점이자, 한 개인의 내면을 통해 인간 실존의 조건을 철저하게 파헤친 걸작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왜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실험적 작품이다.
■ 실존의 무상함, 그리고 ‘구토’
소설의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역사를 연구하며 부빌이라는 도시에서 홀로 살아간다. 그는 특별한 사건 없이 일상을 보내지만, 점점 자신과 세계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문손잡이, 돌멩이, 벤치, 나무뿌리 등 사소한 사물과 접촉할 때마다 그는 구토를 유발하는 불쾌한 감각을 경험한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p.34)
이러한 구토감은 단순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무상(無常)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로캉탱은 그것을 낯설게 경험하며, 존재의 본질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한 것임을 깨닫는다.
"핵심은 우연성이다. (…) 모든 것이 무상적이다. 이 공원도, 이 도시도, 그리고 나 자신도." (p.306~307)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개인적 감각이 아니라, 20세기의 전쟁과 경제 공황 이후 ‘신의 부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형상화한 것이다.
■ 실존주의 철학과 『구토』
『구토』는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의 문학적 출발점이다. 그는 철학적 사유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면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필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신의 섭리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정해진 의미나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p.306)
하지만 이런 인식이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르트르는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존재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토』는 실존의 허무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허무를 극복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 문학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
소설 후반부에서 로캉탱은 ‘구토’의 경험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다. 바로 **‘문학’**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려는 것이다.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 (…) 그러면 나는 그 책을 통해 나의 삶을 혐오감 없이 떠올릴 수 있으리라." (p.410~411)
로캉탱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무상한 존재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실존의 불안을 문학이라는 형식 속에 담아냄으로써,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 『구토』의 문학적 실험과 서술 기법
『구토』는 단순한 이야기 형식이 아니라 내적 독백, 의식의 흐름 기법, 철학적 사유의 서술적 실험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로캉탱의 일기 형식을 통해 독자는 그의 사유에 몰입하며 실존의 문제를 체험한다. 또한 사르트르는 콜라주 기법, 신문 기사, 노래 가사 등을 활용하며 현실과 사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러한 실험적 서술 방식은 이후 프랑스 문학의 ‘누보로망’(새로운 소설)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카프카, 포크너, 헤밍웨이 등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도 연결되며 20세기 문학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 현대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
『구토』는 20세기의 고전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통찰을 준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불확실한 미래, 개인의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SNS와 소비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존재를 깊이 성찰할 시간을 갖기 어렵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투사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그 사람이 한 행동의 총합으로 본다. 즉,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자신을 투사하고, 많은 것을 남겨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나만의 의미를 찾고, 삶을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 결론
『구토』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불안과 고독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실험이다.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정해진 의미나 필연적 목적이 없다고 선언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선택하고 창조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구토’를 경험하는 것은 불안하고 낯설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 이 작품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우리 역시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질문을 깊이 고민하고 있는 독자라면, 『구토』를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