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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의 능력주의

by 기담 Feb 24. 2025

박권일의 저서는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능력주의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것이 불평등과 사회적 불공정을 어떻게 정당화해왔는지를 조명한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공정'과 '능력'의 개념이 사실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도구로 작동해왔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책은 여러 사회적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한국의 능력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왜 그것이 문제인지 설명한다.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서열화하는 문화, 고시와 공채시험을 통한 '시험주의(testocracy)'의 정착, 그리고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2017년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과 '인국공 사태' 등에서 나타난 대중의 반응을 분석하며, 많은 한국인이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을 어떻게 내면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 중 하나는 세계가치관조사를 통해 드러난 한국인의 불평등 선호도다. 2014년 조사에서 한국인의 58.7%가 불평등을 지지했고, 2020년에는 그 비율이 64.8%로 증가했다. 이는 독일(14.6%), 스웨덴(30.6%) 등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저자는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능력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깊이 물들어 있는지를 지적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한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특권과 불평등을 은폐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논리는 약자들에게 대항 논리를 허용하지 않으며,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고방식은 공정성을 가장한 차별을 조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며, '개천에서 용 나기'라는 희망이 아닌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능력주의는 화석연료'라는 비유처럼, 한때 성장의 원동력이었을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걸림돌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은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를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초래하는 불평등과 격차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단순히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정의까지 고려해야 진정한 공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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