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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by 기담

서평: 기다림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따뜻한 풍경

기다림의 시간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순간이 된다. 이 책은 기다림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둘러싼 따뜻한 풍경을 담아낸다. 이 책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정겹고 아련한 감성을 전한다.

느린 걸음과 빠른 걸음, 다른 속도의 두 아이

책의 주인공 안지구와 동생 지호는 성격이 정반대다. 지구는 풀, 꽃, 나무, 벌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아이고, 지호는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는 아이이다. 하지만 이 둘이 공유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햇님처럼 빨갛고, 보석처럼 빛나는 사과를 기다린다는 점이다.

두 아이의 다른 속도는 책의 초반부터 대비된다. 지구는 주변의 작은 것들을 바라보며 세상을 찬찬히 감상하는 반면, 지호는 목표를 향해 곧장 내달린다. 하지만 책이 전개되면서 이들의 차이는 대립이 아니라 조화로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결국 같은 기쁨을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따뜻한 한국적 정서

사과가 열리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순한 기다림을 넘어 성장의 과정처럼 다가온다. 기다림의 순간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시골 풍경 속에서 나무 위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겨울 강가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사과를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기다림은 설렘으로 물든다.

이야기 속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 담겨 있다. 집 마당의 고양이, 오래된 장판과 자개장,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따뜻한 존재감이 곳곳에 스며 있다. 이러한 배경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공간 자체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시골의 정겨운 모습이 아이들의 느린 걸음과 어우러지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과 그림이 빚어낸 특별한 감성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사진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진 속 한국적 풍경과 아이들의 미소는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래된 것들이 지닌 따뜻함과 느림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가의 시선은, 변화가 빠른 현대 사회 속에서 '기다림'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함께 기다리는 순간, 함께 나누는 기쁨

책의 마지막에서 드디어 빨간 사과가 열린다. 아이들은 설렘을 안고 사과를 향해 달려가지만, 지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멈춘다. 기다림의 끝에서 얻은 결실은 나누었을 때 더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느려도 괜찮고, 빨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순간들이다.

이 책은 단순히 빨간 사과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의 성장, 가족의 따뜻함,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기다림 속에 스며 있는 설렘과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잠시 멈춰 서서 기다림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이 그림책은, 어린 독자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햇님처럼 빨갛게, 보석처럼 빛나게.

이 책을 덮는 순간, 독자의 마음도 그렇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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