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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운전 못해도 해고는 부당

by 기담

법원 “운전 못해도 해고는 부당”…무역사무원 해고 분쟁, 근로자 손 들어줘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박형순 부장판사)는 2024년 9월 5일 강구조물 제조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2023구합81770)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중앙노동위가 내린 ‘부당해고 인정’ 판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사건 개요
원고 A사는 2023년 2월, 무역사무원을 모집하는 채용공고를 냈고, B씨가 이에 지원하여 면접을 거쳐 곧바로 근무를 시작했다. 정규직 채용이었고, 서면 근로계약서는 작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4월 3일, A사는 B씨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며 근로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B씨는 이를 해고로 인식하고 이틀 뒤 법무법인을 통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했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해 구제명령을 내렸다. 이에 A사가 중앙노동위의 재심판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사용자 측 주장 “운전 못하고 보증 못 서서 계약 무효”
A사는 재판에서 두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B씨는 지방 거래처를 방문할 운전 능력과 신원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계약은 무효라는 것이다.
둘째, B씨가 계약 해지에 동의했으므로 해고가 아니라 ‘합의해지’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법원 “운전은 우대사항일 뿐, 조건 아니고 해고는 일방적”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채용공고에 운전능력은 ‘우대사항’일 뿐 필수 요건으로 명시돼 있지 않고, 신원보증보험 제출도 계약 조건으로 보기 어렵다”며 “근로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근로계약이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해고가 아닌 ‘합의해지’라는 회사 측 주장에 대해서도 “근로자가 즉각 반발하지 않았다고 해도, 곧바로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한 점 등을 볼 때 해고로 인식했으며,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한 것”이라고 보았다. 특히 “100만 원 수령은 단순한 급여 정산일 뿐 계약해지 동의와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법원은 “사용자가 해고를 하려면 서면으로 사유를 통지해야 함에도 이를 구두로만 전달한 점은 근로기준법 제27조 위반”이라며 해고 절차상 위법성도 인정했다.

판결 의미
이번 판결은 기업이 채용 시 구체적인 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후적으로 불이행을 이유로 해고를 단행할 경우, 법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사례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불투명한 채용절차 및 계약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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