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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서평 05화

[서평]카프카적인 삶과 문학, 그리고 법정 드라마

베냐민 발린트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by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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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아 출간된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그야말로 "카프카적인" 현실을 담아낸 책이다. 카프카의 문학이 인간의 불안과 소외, 무력함을 포착해냈듯이, 그의 유고를 둘러싼 법정 다툼 역시 극적이고 아이러니한 과정으로 전개된다. 저자인 베냐민 발린트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이 소송의 전모를 다루며, 카프카의 작품과 삶, 그리고 그의 유산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카프카의 유산, 소송의 시작

카프카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문학적 후원자였던 막스 브로트는 이를 무시하고 그의 원고들을 보존했다. 이 덕분에 『성』, 『소송』, 『아메리카』와 같은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브로트의 결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2007년, 이스라엘 정부는 브로트의 비서였던 에스테르 호페의 딸 에바 호페에게 카프카의 원고 반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카프카의 원고가 개인의 소유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공공의 자산으로 보존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법적, 윤리적, 역사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소유권을 둘러싼 국제적 분쟁

이 소송은 단순히 개인과 정부의 분쟁이 아니라, 독일과 이스라엘이라는 두 국가의 자존심과 역사적 맥락이 뒤얽힌 사건이었다. 카프카의 원고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법적 다툼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홀로코스트, 시온주의, 문학적 유산의 소유권과 같은 중요한 이슈들이 떠올랐다. 독일 측은 브로트가 생전에 독일 문학 아카이브에 자신의 유산을 맡기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주장했고, 이스라엘 측은 카프카의 유대인 정체성을 강조하며 그의 원고가 유대인의 문화적 자산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학과 법의 경계에서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띠면서도, 카프카의 삶과 작품 세계를 문학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소송 과정을 따라가며, 카프카와 브로트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고, 카프카의 글이 어떻게 현대인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반영했는지를 성찰한다. 특히, 법적 절차가 얼마나 모호하고 끝이 없는 과정일 수 있는지를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 비유하며, 현실과 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카프카적 아이러니의 연속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브로트와 호페 가족, 그리고 국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통해, 누구도 카프카를 진정으로 소유할 수 없다는 점을 조명하는 것이다. 카프카가 생전에 자신을 "열쇠로 잠긴 사람"이라고 표현했듯이, 그의 원고 역시 여전히 분쟁의 열쇠 속에 갇혀 있으며, 그 소유권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책은 카프카의 문학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을 법정 소송이라는 현실 속에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를 제공한다.


마치며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단순한 법적 분쟁의 기록을 넘어, 문학과 법, 국가와 개인, 기억과 소유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탁월한 저작이다. 카프카의 유산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우리는 문학이 단순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이자 정체성의 일부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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