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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서평 07화

[서평]예술을 위한 법인가, 법을 위한 예술인가

김현진 교수의 <미술관에 간 법학자>

by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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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법학자>는 법학이라는 엄격한 학문과 예술이라는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어떻게 조우하고, 교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독창적인 책이다.



저자는 법학자로서 법률과 규범이 지배하는 세계를 벗어나 미술관이라는 감성적 공간에서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동시에, 법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 속에 담긴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며 법과 예술이 서로를 어떻게 조명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법학자가 미술관에서 찾은 법의 새로운 시각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장 콕토의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라는 선언적인 문장을 인용하며, 예술이 사회적 규범과 법적 한계를 어떻게 넘나드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풀어내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미술관을 법정으로 변모시키고, 거장들의 작품을 법률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선보인다.



책의 첫 번째 챕터인 '그림에 담긴 기본권의 역사'에서는 노동, 죽음, 전쟁, 명예, 장애 등 헌법적 권리와 법적 개념을 다양한 명화를 통해 설명한다. 밀레의 〈만종〉을 통해 추급권의 개념을 끄집어내고, 푸생의 〈솔로몬의 재판〉을 통해 대리모와 익명 출산의 논란을 조명하는 방식은 법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저자의 독특한 접근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티치아노의 〈마르시아스의 박피형〉을 통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설명하는 부분은 법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예술 작품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미술계의 법적 문제를 파헤치다



책의 두 번째 챕터 '인간의 위선을 제소한 그림들'에서는 위작 사건, 미술품 경매, 세금 문제 등 미술계에서 발생하는 법적 논란을 소개한다.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의 위작 사건을 통해 사기와 착오의 법리를 풀어내는 방식은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되어 있다.



'그림값의 잔혹사'에서는 미술품이 돈세탁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다루며, 미술이 어떻게 법적 허점을 이용하여 금융 범죄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미술 시장의 법적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예술의 자유와 규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담아낸다.



세 번째 챕터인 '예술을 살리는 법, 혹은 죽이는 법'에서는 저작권, 추급권, 문화재 반환, 음란성 논란 등을 중심으로 예술과 법의 관계를 탐색한다. 특히 색채의 독점 문제와 관련하여 '클래식 블루'라는 특정 색이 산업재산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부분은 법과 예술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비교하며, 과거와 현재의 예술 검열 기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법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다비드상〉이 미국 초등학교에서 포르노로 간주된 사건을 예로 들어, 법과 예술의 경계가 어떻게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법학으로 바라본 미술의 사회적 의미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법학이라는 틀을 통해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재조명하는 데 있다. 예술이 단순한 미적 만족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는 방식은 법적 분석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화가 사전트의 〈마담X〉가 사회적 스캔들을 일으키고, 법적 문제로까지 번진 사례를 통해 예술이 사회적 관습과 규범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본다. 이러한 접근은 독자들에게 법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작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도구임을 깨닫게 한다.



<미술관에 간 법학자>는 법과 예술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엮어내어, 법률과 미술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법률적 개념을 미술과 연계하여 설명함으로써, 법학이 지닌 딱딱함을 유쾌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법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통해 두 분야가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법은 예술을 보호하고, 예술은 법을 통해 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예술 애호가, 인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법의 관점에서 바라본 예술의 세계는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법과 예술의 조화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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