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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기담 서평 08화

[서평]김재규를 변호한 인권변호사... 그의 삶과 철학

홍윤오 <영원히 정의의 편에>

by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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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사의 치열한 격동기 속에서 정의와 인권을 위해 싸운 고 강신옥 변호사(1936~2021)의 삶과 철학을 조명한 <영원히 정의의 편에>는 법조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회고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그 안에서의 희생과 헌신을 생생히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강신옥의 삶과 민주주의의 궤적



강신옥 변호사의 일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맞닿아 있다. 민청학련 사건 변호를 비롯하여 10.26 사건에서 김재규를 변호하기까지, 그의 삶은 언제나 불의한 권력에 맞선 치열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책의 첫 장에서는 그가 인권변호사로 가는 길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소개되며, 법조인으로서의 소명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는 "기개 있는 법조인이라면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게 지키며, 법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개인적인 안위를 뒤로한 채 최전선에서 싸웠다.



강 변호사는 특히 긴급조치와 같은 유신 독재의 법적 기만에 대해 강하게 저항했다. 책에서는 당시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음을 고발하며, 법의 본질과 존재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낸다. 법의 본질은 정의 실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도구로 변질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변호사로서의 양심을 끝까지 지킨 그의 모습은 법조인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책의 2장에서는 유신 독재 당시 민청학련 사건(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정권의 폭압적 통치와 인권탄압이 상세히 서술된다.



민청학련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사법탄압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강 변호사는 이 사건을 변호하다가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긴급조치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는 그의 발언은 당시의 사법적 억압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법과 양심을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강 변호사는 법정에서 당당히 "이 법정은 정의로운가? 이 체제는 정의로운가?"라고 외치며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이는 단순한 법률적 변론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양심의 소리를 대변하는 일이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가 어떻게 법률을 뛰어넘어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했는지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10.26 사건과 김재규의 변호... 강신옥의 법조 철학과 인권 의식



책의 핵심은 10.26 사건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강신옥은 김재규를 단순한 암살범이 아닌, 시대의 전환을 위한 행동가로 조명하며, 그의 행위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김재규는 안중근 의사의 심정으로 권총을 들었다"는 그의 주장은 김재규의 행위를 단순한 개인적 범죄가 아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강 변호사는 김재규가 박정희의 집권욕을 견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며, 그 과정에서 국가와 민주주의를 위한 대의를 선택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책에서는 김재규가 군사 재판에서 정당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락한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10.26 사건의 법적·역사적 의미를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다.



책은 단순히 사건의 기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신옥 변호사의 법조 철학과 인권 의식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그는 법이 정의의 편에 서야 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좋으며, 정당하지 않은 법에는 저항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에서는 법조계 후배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기 위한 덕목과 자세를 강조한다. 특히 강 변호사는 "법관이 양심을 갖고 판결에 임하면 어느 편이 정의인지 알 수 있다"며, 법조인의 양심과 용기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법조인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정치와 사회적 역할



책의 후반부에서는 강신옥의 정치적 여정이 조명된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법제도를 정비하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으며, 김영삼과 김대중 등과의 인연을 통해 정치와 법의 교차로에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 주력했으며, 법과 정치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펼쳤다.



강 변호사는 과거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법적 단죄를 통해 군사 독재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논의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법의 정의 구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영원히 정의의 편에>는 강신옥 변호사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인권 신장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법과 정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특히 젊은 법조인들에게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용기와 양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귀중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강신옥 변호사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서, 그의 삶과 철학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법과 정의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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