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식물의 언어로 삶을 읽다 – 『숲을 읽는 사람』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며 걷는 사람. 『숲을 읽는 사람』은 그런 이의 기록이다. 이 책은 단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보고서도, 생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인간이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삶의 에세이다.
저자는 고요한 숲속에서 식물을 만나고, 그 만남 속에서 자신과 세상을 되비춘다. 바람꽃을 보기 위해 1300미터 산을 오르고, 노랑팽나무를 찾아 59번 국도를 따라 걷고, 울릉도의 태하령까지 기꺼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일터는 언제 곰이 나타날지, 진드기에 물릴지, 해가 지면 길을 잃을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지만, 그는 두려움 대신 애정을 품고 길을 만들어간다.
식물을 향한 이 무한한 애정은 책 곳곳에서 반짝인다. 군락을 이루며 세대를 잇는 씨앗에서, 잎을 떨군 뒤에야 수형을 드러내는 나목에서, 자비로운 마음처럼 넓게 퍼져 사는 호야에게서, 저자는 사랑의 끈을 발견한다. 그 끈은 자연과 인간, 나와 너를 잇는 연결의 상징이 된다.
식물분류학이라는 과학적 작업 또한 책 속에서는 다정한 사색으로 변모한다. 종의 경계를 정의하는 일이란, 절대적인 진리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끊임없는 시도임을 저자는 담담히 고백한다. 오류를 바로잡겠다는 분류학자의 포부는 어느새 팽나무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고, 과학은 타자를 향한 이해와 공명의 도구가 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식물 이야기와 인간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듯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할머니와의 기억, 엄마의 꽃 향기, 주교님이 건넨 화분, 동료 연구자와의 우정은 식물에 대한 저자의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식물에게서 받은 다정함은 주변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로 확장되고, 이는 다시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숲을 읽는 사람』은 식물을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타자를 품고, 서로를 연결하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기후 위기, 전쟁, 개발로 점점 사라져가는 숲을 마주하면서도, 저자는 봄을 놓지 않는다. 잎을 다 떨군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을 기억하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식물의 언어로 쓰인 시를 읽는 듯했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숲을 읽는 사람』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 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조금은 ‘숲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