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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Aug 23. 2024

그의 길ㆍ어린 왕자

백중날 통도사에서 길을 묻다

 젊은 스님들의 발걸음이 자박자박 경쾌하게 경내를 울린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가다듬고 사뿐사뿐 경내를 밟으며 그들은 삶을 기도한다. 나풀거리는 붉은 깃 사이로 풋풋하게 웃자란 젊음이 경외스럽다. 두 스님은 말이 없다. 다만 눈빛으로 한여름 뙤약볕 더위를 꿋꿋이 안으면서 진리를 전한다.  나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부처님의 숨결을 받아 가지런히 두 손 모으며 합장한다. 가지런히 합장한 두 손에 무엇이 깃들었을까. 분들과 다른 나의 손에 잠시 내 아이들의 안녕을 빌었다. 천 년의 세월을 함께 한 고찰 통도사에서.


 앳된 그분들은 어이한 일로 거처를 옮겼을까. 삶이 어디인들 슬프지 않고 어디인들 아프지 않은 삶이 있을까마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보통 사람인 나의 눈에 들어오는 그들의 삶이 나와 분명 다를 것이다. 무더운 햇살만큼이나 등에 진 삶의 무게도 힘겨운데 부처님의 제자로 사는 그들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속내를 알기엔 조심스럽다. 미천한 중생의 마음과 같기야 할까마는 아픔이 있을 거란 섣부른 판단은 아니다. 그것도 그의 길이다. 탄탄대로를 갈 수 있는 길일 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평생을 살아내는 그들의 몫일 수도 있는 길이다.  보지 않은 이는 분명 모를 것이다,  진 자의 무게를.


 통도사는 언제나 맑고 고요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왁자해도 영축산 산자락의 영험함이 렌즈 한가운데로 기를 모으듯 경내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감히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따스함이 전각 온 사방에 흩날리고 있다. 처마 끝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더 여유로운 오후다. 세월의 더께를 안고 있는 범종루 아래 나무 그늘이 반갑다. 야트막한 기와 담장 아래로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한낮의 노랫소리가 개울가에서 울려 퍼진다. 한철 매미의 성대한 파티가 시작된 지 오래, 귀뚜라미도 한거들며 마지막 생의 하루를 평안히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삶이 오히려 경건하다.


 야트막한 문턱을 넘으면 부처님 품 안이다. 부처님 품 안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스러져 간다.  눈물을 머금어 머리를 깎고 엄마 품을 떠나 부처님의 품에 안긴 스님은 이제 붉디붉은 열매를 맺고 있다.  어린 손아귀에서 놓아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많은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몇 밤의 무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견뎌냈을까. 문턱에 걸려 넘어져도 애처롭게 일으켜 세워주는 이 없었을 텐데. 혼자 일어서야 했을 텐데. 엄마는 가슴이 말라도 그를 밖으로 빼낼 수 없었다. 혼자 일어나라며 버티고 선 사천왕상의 발밑 아래 무릎이 깨져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가 선택한 그 길이었다.



 얼마 전 통도사를 들렀을 때 게까지 법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반 법회는 일찍 끝나지만 그날은 무슨 특별한 예식이었는지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법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에 스님 두 분이 서 계셨다. 그런 일은 아직은 초보 스님이 맡았으리라. 한낮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는 건 기본, 지레짐작으로 기다리면 될 일을 사람들은 기어코 법당 안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짐짓 30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연신 설명하시느라 바쁜 아들 뻘의 스님 머리에 양산이라도 씌어드리고 싶었다. 그는 모르는 나의 마음이었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도 손끝으로 훔쳐내고 만다.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가사 적삼으로도 닦아낼 수 없는 어쩌면 그들에겐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데 옆에선 자꾸 애꿎은 발만 눈치 없이 들이대고 있다. 제발 거기 서요! 스님이 그곳에 왜 서 있겠어요.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서 있는 거 안 보이시나요? 양산 쓰고 팔토시 하고 계단 위로 오르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그저 묵묵부답인 채로 스님들은 자신들의 설법만 나지막이 전했다. 그날 본 그분들의 모습은 부처의 모습이었다.




 울퉁불퉁 모양도 제각각인 모과가 뜨거운 태양 아래 모닥불 쪼듯 다소곳한 자세로 앉았다. 분명 지나가는 누군가가 아니면 이곳 스님들이 한데 모아 두었을 텐데 섞여 있는 모습이 정답다. 썩어가고 있는 거라 여길지 모르나 저건 분명 익어가는 모습일 테지. 땅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미물의 생명이 될 수도 있는 몸.


 모과의 삶도 아름다운 삶이다. 그것도 그의 길이다.

 부처의 삶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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