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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ul 28. 2024

지켜져야 하는 내 이름자

일상에 대한 생각

 조은 작가님의 노트가 있는 칼럼을 쓴 책 <일상은 얼마나 가볍고 또 무거운가>를 읽다가 30년 전의 한 가지 일이 문득 정말 문득 번개처럼 떠올랐다.


ㅡ작가의 어머니는 당신의 부모가 묻힌 영광 선산을 50년 만에 찾아 다섯 시간 동안 고향을 다녀온 일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열아홉에 결혼해 7년 만에 혼자가 되어 사셨던 분이라 조씨네 선산에 친밀감이 없었는데 KTX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된 후로 생각이 많이 달라지셨다는 내용이다.ㅡ50년 만의 고향 방문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댁 할아버지 묘소를 찾은 적이 있다. 종갓집이라 선산에 미리 부모의 묫자리를 봐 두었고 내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묫자리도 그 옆에 미리  봐 두었다는 걸 지금 돌아가신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일러주셨다.  그때 빈 묘지에 이름자를 새긴  비석을 본 건지, 아니면 남편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새겨진 비석의 글자를 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데 문제는 내 이름 자의 한자가 틀리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兪자인데 柳자로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니 그때는 모두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특히 남편은 왜 쓸데없이 말을 거냐는 불만의 표식을 드러냈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잘못 알고 새긴 것인지 남편이 몰라서 잘못 가르쳐 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일을 했을 때 내겐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나. 잘못 새겼다면 그렇다면 고쳐야 하지 않은가. 고쳐야 했다. 아니면 새기지 말았어야 했거나. 나는 내 이름자를 넣어달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는 며느리가 감히 어디서 고쳐 달라 할 수 있느냐의 분위기였다. 누군가가 다음에 고쳐 줄게 그 말을 했던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 아빠도 그것에 대해선 말 한마디 없었으니 모두가 바보같이 무책임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한 번도 묘소를 찾은 일이 없으니 아마 그대로 쓰여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내가 여기서 그 일이 떠올랐던 건 혹여라도 평생을 아니 인생을 살면서 내 아이들이 그곳을 방문할 일이 아마 한 번쯤은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다 문득 운 좋게 제 어미 이름 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의문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잘못 표기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준 일 없고 아무도 그들에게 알려준 적 없으니 말이다.  혹 모르지. 비석에 쓰인 한자의 이름을 읽으려 하지도 않을 것임을. 그냥 선대의 조상들 묘소구나 할 수도 있을 것임을. 아니면 아예 찾지 않을 곳이 될 수도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마는.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나의 근본인 나의 이름 자가 누군가의 잘못에 훼손되었거나 잘못 쓰인 것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분명 아픔이고 또한 분명 슬픈 일이다. 바로잡을 수 있는 것임에도 바로잡아야 할 그들이 손 놓고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에 감히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있는 동안 내 이름자는 지키고 싶다.


 사실 나도 시댁의 그곳을 좋아하진 않는다. 이름자가  잘못 쓰인 일이 어쩌면 가벼운 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무거운 일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30여 년을 무심하게 잊고 지낸 일인데 어찌 보면 뭐 대단한 일이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어찌 보면 잘못 쓰인 그것을 내 자식의 자식까지 바라볼 수 있는 일인데 대단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까운 옛날이야기지만 '과거는 죽은 적이 없다. 과거가 된 적이 없다'라고 한  월리엄 포크너의 말을 빌린 작가의 말대로 우리 일상은 아주 먼 듯한 가까운 옛날과 겹쳐져 있다. 일상과 거에 대한 예의는 살아가면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마음에 깊은 끄덕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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