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늦은 수업이 끝나고 아들 녀석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었어요. 공원에 주차하기가 힘들어 집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기로 했죠. 도착 시간에 맞춰 내려오라 하고는 주차를 했답니다. 그래, 오늘 쉬면서 뭐 했어? 시장 보고 쟁여 놓고 그러구러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죠.
아파트를 돌아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아들은 오랜만에 엄마랑 걸으니 좋다, 초등 때 이 길 건너던 거 생각난다며 조물조물 이야기하기 바빴죠. 맞다, 이 길을 걸어 너의 십 대를 보냈구나 생각하니 벌써 아련한가 봅니다.
얼마를 갔을까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오빠라고 찍힌 이름자가 뜨더니 어디냐고 묻길래 밥 먹으러 간다고 하니 자기가 지금 집에서 출발하는데 기다리라 합디다. 얼마 걷지 않은 걸음이라 집까지 되돌아가려면 사실 금방이거든요. 아이가 다녔던 학교 건물은 예보다 더 작아 보이고 운동장은 급식 건물이 들어서 뛰어놀 공간이 부족해 보이더군요.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려 돌아본 곳에 축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너도나도 방에 앉아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으니 운동장엔 예전만큼 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더군요. 고무 타이어를 반쯤 박아놓은 곳에 아이의 시선이 멈추었죠. 그도 그 시절 그 시간으로 잠시 들어갔나 나오더라고요.
낮에 수업이 한창일 때 전화가 와서 받았어요. 오빠, 지금 수업 중이니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요, 한 걸 수업 마치고 오던 길에 전활 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텃밭에 가려고 전화했나 싶었죠. 이날은 제가 텃밭 가는 대신 아들과의 데이트 약속을 했거든요. 제가 쉬는 날과 아이가 쉬는 날이 다르니 밥 한 그릇 같이 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더라고요. 급기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그 정도로 미리 선약을 잡아야 해요.
배 한 박스 줄 테니 가져다 먹으라며 지금 출발한다고 기다리래요. 아파트 뒷문까지 되돌아가는데 아들 녀석이 횡단보도 초록불이라고 뛰자고 해요. 천천히 가도 된다, 아직 올 시간 멀었다며 여유 있게 다음 신호를 기다렸죠. 막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엉거주춤 똥을 싸고 있는 거예요. 다 쌌는데 치우치도 않고 어라, 아줌마가 그냥 가네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죠.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쌩 가요. 덩그러니 자기 자식 똥을 남겨둔 채. 더러운 똥을 말이죠.
걸음을 바쁘게 옮기며 아줌마, 똥을 안 치우고 가면 어떡해요 했죠. 그런데도 뒤돌아보지 않고 남의 일인 양 정말 모른 체하고 지나가더라고요. 무시 그 자체였어요. 더 크게 말했죠. 아줌마~~~, 강아지 똥은 치우고 가셔야죠 했거든요. 아줌마가 반응이 없자 아들이 쿡 찌르면서 나보고 그만하래요. 오기가 오릅디다. 아줌마, 똥 치우고 가세요, 했더니 그제야 뒤돌아보면서 휴지가 없다네요. 그럼 휴지를 갖고 나오셔야죠 했더니 또 그냥 가요. 와, 저렇게 뻔뻔스러운 아줌마 첨 봤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면 그렇다 쳐요. 누가 쌌는지도 모르는 똥에 기분이 나빠 욕지거리를 했을 텐데 이건 아니잖아요. 아줌마도 분명 주위에 우리가 있다는 걸 봤을 텐데 그렇다면 치우는 흉내라도 내면서 허리라도 꼬부려야 맞는 거 아닌가요. 끝까지 안 치우고 가대요. 뒤통수가 얼마나 간지러웠으면, 한 블록을 지나서야 낙엽 몇 개 주워 되돌아가더라고요. 배 박스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하나 눈여겨봤죠. 그러더니 주운 낙엽으로 쉬이쉬이 밀어서 아파트 주차장으로 긁어 던지는 거예요. 와~ 진짜 개념 없는 아줌마였어요. 그러고는 우리가 있는 쪽을 오기 부끄러웠는지 되돌아가더라고요.
이 얼마나 낯짝 부끄러운 행동인가요. 가방은 큰 거 메고 나오면서 똥 싸 갈 비닐 하나 없다니요. 아파트 주변을 걷다 보면 개똥 천지랍니다. 밟을까 더러워서 길을 못 걸어요. 개똥 치우지 않고 다니려면 집안에다 싸게 해야죠. 당신은 개똥 안 더러울지 몰라도 나는 더럽단 말이에요. 가장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