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라 팔뚝에 앉아 내 어쭙잖은 손이 다가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허우적거리는 모기 한 마리
붉은 피를 토해내며 한 철 젊음을 바친 모기는 그렇게 내 손 안에서 사그라져 갔다
모기에게 하얀 살갗을 내주며 피를 빨리고도
부끄럽지 않았던 늦여름 나의 양식은
풍성한 저녁을 함께 하는 식탁으로 옮겨진다
그래 나도 먹고살려는 몸짓이고
너도 그러한 걸 우리
나눠먹는다 그렇게 퉁치자
토요일이면 꽉 찬 도서관 강의로 바쁘지만 마음은 늘 텃밭에 가 있다. 아니 아침부터 맘은 설렌다. 오늘은 어떤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땀 뻘뻘 흘리며 눈썹을 마구잡이로 그리다가도 씩 웃음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주엔 오이를 많이 땄지, 그러고도 제법 자라는 녀석이 있었지. 풋고추를 그렇게 따고도 또 딸 게 많았는데 ㆍㆍㆍ.
날이 너무 더워 그 녀석들이 무사히 잘 있는지 궁금하다. 8월 15일이 지나면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올해는 아직까지도 폭염에 주의하라는 안내 문자가 연거푸 폰에 찍힌다. 스스로 물을 찾아 먹는 사람도 내리쬐는 태양이 버거운데 누가 뿌려주지 않으면 받아먹기 힘든 물을 한 모금도 받아먹지 못했으니 아마 픽 쓰러졌겠지 생각하면 매일 돌보지 않아 안쓰럽기도 했다. 아직 친구가 온다는 말은 없다. 오늘쯤은 올 텐데. 나도 맘은 벌써 텃밭에 가 있다.
오후 서너 시가 되어 폰을 들여다보니 친구가 내 수업을 마칠 때쯤 텃밭에 도착한단다. 그녀가 온다니 반갑다. 사실 그녀가 오지 않으면 혼자 텃밭을 가기가 쉽지 않다.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혼자 우거진 호박 줄기를 걷어내려면 벌레가 뛰어오를까 봐 무서운 맘이 젤 크기 때문이다. 쪼그마한 벌레도 확 밟지 못하고 혼자서 쫄기는 잘한다. 아무튼 큰 벌레든 작은 벌레든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는 건 다 무섭다.
아직도 해는 중천에 떠 있고 햇살은 따갑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도 후끈후끈한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루종일 지친 얼굴에 팩트를 가볍게 두드리고 혓바닥으로 물기를 적셔 허옇게 핀 입술에도 붉은 생기를 불어넣는다. 태양을 가려 줄 선글라스를 끼고 친구가 와 있을 텃밭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아 배는 많이 고프고 허기지다. 붉은 토마토가 아른거려 입술로 한 번 쓰윽 핥아본다.
친구가 아직 오지 않았다. 농사꾼의 뒷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고춧대가 흔들거리지 않는다. 어디쯤이냐고 물어보니 이제 오고 있단다. 너무 더워 늦게 출발했단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배가 고파 일단 집으로 왔다. 큰아들 녀석을 만나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아들 녀석을 보내고 차를 돌렸다. 친구가 있으면 다행이고 가고 없으면 그대로 차를 돌려 올 생각이었다.
아직 햇살이 사그라들지 않은 텃밭에 친구가 일용할 양식을 따고 물조리개로 물을 퍼다 나르고 있다. 다시 온 나를 보고 놀란다. 나도 놀랐다. 아니 가지가 이렇게 많이 열렸어? 방울토마토가 너무 붉게 알알이 잘 열렸다. 장화를 갈아 신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치맛단 사이로 시커먼 산모기 녀석들이 얼씨구나 춤추며 파고든다. 여러 군데 피를 빨리고도 상추 솎아내기에 여념 없다. 이 상추로 고기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도저히 몸을 숙이고 일을 할 수가 없다. 모기를 쫓아내려 콩콩거리며 폴짝폴짝 뛰어도 보고 다리를 흔들어보기도 한다. 팔을 흔들어 제쳐도 모기 녀석은 꼼짝도 않고 주둥이를 쑥 찔러 넣는다. 복수의 일념으로 손바닥으로 눌렀더니 하얀 블라우스 위에 붉은 피가 선연하다. 이내 퉁퉁 부어오른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일을 하러 온 복장은 아니기에 감수해야 하지만 모기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났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더니 모기는 비뚤어진 입으로도 힘차게 내 살의 피를 뽑아낸다. 위력이 대단하다. 모기 녀석이 떼거지로 몰려와 덤비면 육중한 이 몸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케이오 패 당하고 만다. 말초신경이 더딘 걸 그 녀석들에게 들켜버렸다. 그래, 너도 먹고살자고 마지막 몸부림치는 건데 오늘도 너그러이 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