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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Oct 23. 2024

말표 고무신

그 많던 고무신은 다 어디로 갔을까


꽃잎이 그려진 검정 고무신을 들여다본다.  검정 고무신이 화려한 사치를 부렸다.  엄마가 그토록 신고 싶어 하셨던 꽃신이다.  어릴 때는 하얀색 고무신을 살 돈도 모자랐다. 엄마는 하얀색 고무신 한 켤레 값으로 검정 고무신을 사고 나머지는 아버지 막걸리를 받아다 드렸다.  고무신이 빨리 닳았으면 했다. 막걸리는 금세 동이 나는데 질기고 지난한 삶만큼 시커먼 고무신은 질기고도 질겼다. 찢어지지 않아 고래힘줄이라 했다. 고래힘줄이든 낚싯줄이든 철없던 시절 나는 검정 고무신이 부끄러웠다.  


 꽃신이 댓돌 위에 나란하다.


 정갈한 검정 고무신의 색깔이 싫었다. 가난한 삶을 보여주기 싫었다.  다른 사람이 아는 게 부끄러웠다.  검정 고무신은 좀 더 가난함의 표현이었다.  검정 신발도 엄마는 오징어  껍질 벗기듯 수세미로 하얗게 박박 문지르고 닦았다.  하얀 고무신보다 더 정갈했다.  엄마는 그랬다.  검정 고무신에 때가 끼면 더럽고 주접스러워 못 본다고.


 당신의 성격만큼이나 깔끔하고 빛나는 검정 고무신이었다. 엄마는 가난함이 부끄럽지 않았고  부러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싫었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싶었다. 검정 고무신을 내던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신발 멀리 던지기를 하다 수채고랑으로 빠뜨리면 건지기 힘드니까 새로 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정말로 그렇게 던졌다.   


 오빠가 미꾸라지를 잡으러 갈 때 나는 고무통을 들고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고무통 양 옆으로 구멍을 내 얇은 철사를 끼워 손잡이를 해 주었다. 나는 수채고랑에서 건진 검정 고무신을 신고 오빠는 목이 긴 검정 장화를 신었다. 닳기를 바라는 어린 딸의 마음을 읽었을까 아버지는 고무신을 질질 끌지 마라 하셨다. 질질 끄는 소리도 듣기 싫었거니와 본데없는 사람들이 신발 끌고 다닌다 하셨다. 고무신 질질 끌지 말라는 그 소리가 왜 그땐 거슬렸을까. 절약 정신 보다도 아버지가 말한 본데없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인 것 같아 보여 그럴지도 몰랐을 터.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아버지 당신은 검정 고무신을 평생 끌지 않으셨을까.


 가을볕이 따뜻하다. 나들이한다고 통도사를 찾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그래도 볕은 따사롭다.  불교 축제를 하고 있다. 엄청난 사람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절터를 꾹꾹 밟으며 지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모습으로 꽃단장하고 젤 예쁜 옷으로 치장하고 격식도 갖추었다. 같이 외출해 주는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바라보는 시선은 더 곱다. 우리 엄마와 아버지는 어땠을까. 꽃고무신 신고 손잡고 나들이 가 보셨을까. 꽃을 입힌 검정 고무신이 젤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청춘 시절인 것 같다.  


 누군가 사 가는 사람 없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은 즐겁다. 누가 사 갈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좋다. 사지 않으면 어떠랴.  장식용으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고 보면 질기고 질긴 그 많던 검정 고무신은 어디로 갔을까.  칼로 잘라 불속에 던져 버렸을까. 보따리 속에 고이 간직해 두셨을까. 언제부터 고무신을 신지 않았을까.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중학교 갈 무렵엔 아식스~운동화나 까발로~ 운동화를 사 신겼을 텐데 도무지 그 검정 고무신이 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엔 없다.



 일전에 경주로 꽃놀이 갔을 때 꽃이 그려진 하얀 고무신을 보고 아련했던 옛날이 떠올라 사진을 찍어 왔었다.  우리 엄마가 신고 싶어셨던 꽃신이었을까. 시컴튀튀한 검은색이 아니라 하얗디 하얀 저 고무신 정도만 되었어도 감지덕지하셨을까.  엄마 가시기 전까지 나는 엄마에게 이쁜 꽃신 하나 사 드렸을까 목이 메었다. 손가락 굽혀봐도 굽힐 손가락이 없다.

참 이쁘게 꽃잎을 그려 넣었다.  세심함이 돋보이는 고무신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눈물이 나려던 순간을 애써 모른 체해보았다. 그날 하늘보다 파란 꽃잎이 더 가슴을 아려왔다.


ㅡ몇 해 전 어느 가을에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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