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은 눈부시지 않아도 때로는 뭔가 특별한 일이 없을까 고민해 본다. 고민해 본다고 딱히 특별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혹여 시간 남은 친구가 내 생각이 나 전화를 해 올지도 모르는 일. 열흘 전부터 아팠던 목은 쉬 낫질 않고 기침은 한결 가라앉았으나 목소리는 쉬어빠진 영감 목소리마냥 쉬~익 쇠소리만 난다. 미칠 지경이다. 그래도 바빠질거리가 있을 거라 여긴다.
오늘 가기로 지난 주에 약속했던 국립김해박물관 튀르키예 특별전 히타이트 전시를 가 볼까 한다. 단체로 가려 하였으나 비 소식이 있었고 전국 체전으로 인해 주차공간이 여유롭지 못하다 해서 단체전을 취소했던 것이다. 비도 온다는데 전시회나 보러 가야겠다.
빗속의 전시회는 낭만이다.
아직도 감기 기운이 있는데 외출할 때 마스크를 챙기지 못했다. 관공서라 박물관에 가면 분명 있을 거라 단정하며 불편하다 싶은 발길을 되돌리지 않았다. 다행히 길을 걸을 땐 기침이나 콧물도 나오지 않아 이젠 다 나았네, 혼자 애써 위로한다.
우산을 챙기고 차가운 물을 챙겨 가방에 쑤셔 넣고 걷는다. 축 처진 가죽 가방이 오늘따라 꽤 무겁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그래서였을까 겉옷을 벗고 싶었다.
여유 있는 걸음에 달려간 전시회장은 여느 시골풍경을 연상케 했다. 황화 코스모스가 박물관 입구에서 나를 반기고 뭇어르신들의 산보 아닌 산보가 박물관 보다 흔한 노인정 당산나무 아래 모이신 것 같아 친근한 분위기였다. 안내 데스크에 앉은 사무원의 모습이 한가롭다 못해 적적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전에 지인은 저런 곳에 앉아 근무했으면 좋겠다 했다. 공부에 살림에 밥벌이에 지쳐 좀 더 편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안내 데스크가 꿀직업으로 보였으리라. 지나친 정신 노동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고 타인의 의식을 감안하더라도 꽤 괜찮은 자리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웃어 넘기자고 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따분하고 지루하고 적적해서 하라 해도 안 할 것 같다.배부른 소리라는 것 안다. 또 한 번 웃고 넘긴다.
ㅡ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2세기까지 아나톨리아 북부와 시리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히타이트. 19세기, 점토판 문자가 해독되면서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대 근동지역의 최강국임이 밝혀진 나라 아나톨리아의 숨은 제국 히타이트. 우리에게 다소 낯설고 머나먼 땅 히타이트의 문화를 알아보는 진귀한 시간이다. ㅡ전시를 열며 중
특별한 날을 만들어
혼자서 특별히 즐기는 전시회도 좋다.
특별했던 튀르키예 히타이트 전시회를 마치고 로비에 앉았다. 한산한 틈바구니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가야문화축제 준비로 박물관 앞 거리는 차량이 통제되었고 똑같은 흰색 천막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이상한 공간에 자리잡은 이상한 풍경이다. 탁 트인 공간을 보고 싶어 블라인드를 올렸는데 오히려 그로 인해 답답함을 느꼈다. 가라앉은 바깥 분위기만큼 내 기분도 답답하게 가라앉았다. 대여섯 살 유치원 꼬맹이들이 삼삼오오 계단을 오르며 지르는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창문 틈 너머로 끼어든다.
혼자 있는 공간은 따사롭지도 않다.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혼자 머물러도 눈치주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핸드폰을 집어들며 잡다한 사색에 빠지다 일어선다.
굴러떨어진 모과는 아프다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는 분명 낙하하는 방법을 몰랐을 텐데, 어디로 굴러떨어져야할 지 자리도 잡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휘릭 날아든 모과의 몸부림에 저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떨어져 몸부림치는 것은 분명 아픔이다. 바람도 없는데 저 모과는 어디서 굴러왔을까. 길거리는 이미 짙은 가을이다. 빗방울은 툭 툭 인기척을 내지만 바람소리도 없다. 인적 드문 곳에 앉았던 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척을 내며 내 앞을 서성인다. 반갑게 맞아줄 줄도 모른다. 나는 고양이가 달가운 게 아니다. 그저 가을빛이 좋아서 가을 낙엽이 좋아서 밟고 싶을 뿐이다. 우중충한 가을 거리를 우중충하게 누비고 있다.
가죽 가방을 들쳐맨 어깨가 뻐끈하다. 이리저리 가방끈을 옮기고 있을 때 앞에서 낯익은 아주머니가 걸어온다. 낯빛을 교환하기 어색하게 사잇길로 접어들며 익숙한 듯 누군가를 불러댄다. 투박한 목소리에 투박한 걸음걸이는 벤치에 앉았던 작은 소음을 요동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괜스레 묵직한 팔을 이리저리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