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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Oct 24. 2024

너도 밤, 살아내려 버티고 있는 애송이다

단단해지는 가을을 위해

 

아직 여물지도 않은, 물기 묻어나는  가녀린  몸매로  가을 앞에서 너는 뒹굴고 있다.  아직 애송이인 채로. 무릇 성숙하고 익은 건 부모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어린 밤톨  너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는데 제 갈길이 무에 그리  바빴을까. 채  익기도 전  어설픈 발길에 툭툭 채인다. 나는 가지런하게 앉혀 놓았다.  너도 힘든 인생을 이 아스팔트 길 위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채이고 채여도 슬퍼하지 마라,  저녁 어스름이 나리면 빈자리 채워 주는 달님  들어오겠다.  


 애송인 건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 컸다고 우기고 있다.  두려운 건 있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지상에 발 딛고 살면서 애처로이 울다 웃다 살아가는 인생임을 알까.  천천히 두 팔을 뻗어 밤송이를 만지면 터진 가슴이 아파 만지지 마라 울부짖으며 앉았다. 오가는 골목길에 그리는 이 하나 없이 밟혀도 다시 살아낼 수 있는 생이라고 발버둥 친다.  애처롭다.


 여물지 않은 반쪽은 어디로 굴러 떨어졌을까.  어미 찾는 어린 자식이 저토록 살빛으로 눈물 가슴을 벌리고 있다.  행여나 다시 돌아와 앉을까 애만 탄다. 
 엄마는 몰밤을 삶으셨다.  몰밤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건져 올린 바다는 허술해진 우리 밥상에 보물처럼 놓인다. 미처 닦이고 씻기기 전에  제 한 몸 불살라 안녕을 고했다.


  몰밤을 따러 나는 둑길을 걸어  십 리 하고도 십 리 길을 더 걸었다.  쌀포대 하나를 달랑 메고 조만강이 넘실대는 강가까지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걸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다만 먼 길 혼자여서 힘든 길이었다.  얼마나 자주 걸어 다녔으면 그랬을까. 왕복 몇십 리 길이 까마득하진 않았다.  

 그래, 떨어진 밤톨 너도  엄마를 찾아 개울 아래로 굴러 떨어지진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다.  개울 아래로 구르다 어느 집 모퉁이에 처박혀 자라고 있는지는 모르나 저 밤톨은 엄마를 잃었다.  엄마는 저를 찾고 있을까. 예민해진 살갗은 가녀린 바람에도 생채기가 날 텐데 가시 달린 제 집 하나는 등에 붙여 달고 다니지 그랬니.  못 찾겠다 밤톨 꾀꼬리.  


 
 조만강 둑에 풀이 많이 자라 어디가 뭍인지 어디가 강물인지 경계가 불분명했다. 호미로 거적 걷듯 몰밤 줄기를 훑으면 아직 살이 덜 찬 몰밤들이 옹기종기 뭉쳐 건져진다. 손바닥으로  훑어낸다. 너도 애송이였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버텨내기 버거웠을지라도 내 손에 네가 잡히면 안 되었다. 차라리 털썩 주저앉고 말지.

 마름모꼴 몰밤은 밤맛이 났다.  둥근 밤의 사촌지간은 되나 보다.  아니면 어떠리.  어디에 살든 어디에 있든 불꽃 튀는 생을 살다 일용할 양식으로  한 순간 사라지는 것임을. 그날은 내가 너를 얻는 운이 좋았다.  하찮다는 건 절대 아니다. 미물인 이들도 한소끔 녹록한 삶을  살아봐야 하기에 내게 들어와서 그저 먹먹할 뿐이었다.

 
 통도사 절 입구에 키 큰 소나무 사이로 공사가 한창이다.  신성하고 조용한 공간에 트럭이 분주히 움직이고 포클레인이 물 위에 떠 있다. 함부로 헤집는 것 같아 맘이 아프다.  공양간을 세우려는 것일까.  아니면 쉼터를 지으려는 것일까.  다람쥐 집들을 부수고 짓는 길손을 위한 배려는 아니었음 좋겠다.
 
엄마 잃은 알밤 하나가 데구르르 굴러 떨어져도 몸 누일 푹신한 터전이 저기여야 한다. 층층이 돌담이 포개지고 널찍한 보금자리가 그들에게 필요한 건 아니리.  고요히 흐르는 물길은 말이 없다.  

 하늘 한가운데 우뚝하니 밤나무 서 있다.  매일같이 그 자리에  서 있어도 어쩜 인기척 없이 가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살았을까.  문득 발길에 차이는 너를 보고 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자리에 있었구나.  높고 높은 곳에 앉아 사시사철 지나며 오가는 나그네 반겼건만 하늘 아래 서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구나. 본시 작대기로 건드리진 않았다.  그래, 그냥 툭 떨어진 것이다.  낙하하는 너는 이미 단단했으리라.


 
 떨어진 밤송이는 갈 데가 없다. 떡하니 길을 막고 선 침입자들을 비집고 헤쳐나갈 힘도 그들에겐 사라졌다.  옮겨놓는 이 또한 없다. 어찌하여 내 앞에 서 있는 모습도 측은하다 못해 못내 애처롭다. 사람에게 밟히든 다람쥐  먹이가 되든 너는 너의 인생을 살 가치가 있다. 다만 저 아래로 굴러 떨어져 갈 길을 잃으면 안 된다. 오히려  포클레인에 파묻혀 아프게 생을 마감하면 절대 안 된다.   너도 어쩌지 못해 세상에 일찍 나왔으리라. 예기치 않게 방황하는 삶을 마주했으리라 못내 울컥거린다.

 몸의 뿌리가 약한 것도 아닌데 송두리째 흔들리거나 솟구칠 때가 분명 있다. 땅에 떨어진 삶에서도 목숨은 자라고 이어질 수 있다.  비록 그 어딘가에 닿지 않더라도 네가 원하는 바랑에는 닿지 않을까.  그곳에 엄마가 기다리고 있겠지. 너를 찾아 헤매다 문득 올려본 땅끝  어딘가에서 너의 뿌리를 느끼지 않을까. 애태우지 말자.  

 
 지난해 품었던  너의 따뜻한 온기가 다가온다. 너무 가냘파서 머뭇거린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듯 작은 몸매에 단단히 담겨 있는 늦여름의 추억과 새로 맞이할 가을 앞에서  너는 살포시 고개 떨군다. 발에 밟혀도 아파하지도 않을, 배고픈 다람쥐가 갉아먹어도 고마운,  쉬엄쉬엄 지팡이 짚고 가는 주름 잡힌 할머니의 손길에도 다정한,  그렇게 너는 떨어진 채로 너의 꿈을 잣는다.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우리에게 영원은 없다. 너에게도 그렇다.  어떤 때는 군화에 밟혀 으스러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조그만 꼬마 녀석의 손에 잡혀 애지중지 사랑받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아무도 모르게 물길에 휩쓸려 추락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삶은 아니니 너무 슬퍼마라.  약간의 지친 유머와 일상의 피로가 어쩌면 더 힘들 수도 있으니. 너에게 익살스러운 웃음을 보내며 좀 더 단단해지는 가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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