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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06. 2024

자장암에 가을이 스몄다

 

자장암 절간 야트막한 오르막길

 계단 폭이 어설프다

 두 계단을 걸으면 다리가 짧고

 한 계단을 오르면 다리가 길다

 딱 그 중간만큼의 폭으로

 계단을 만들었으면

 걷기가 한결 수월했을 텐데

 고행길이다

 계단 폭에 내가 맞춰

 오르내리는 길이.

 세상사 그리 쉬운 일은 아니듯

 내게 딱 맞는 건 없다


 오르내리는 계단도

 나보다 남을 위한 것

 그리 마음 써 보니

 계단 오르기가 한결 여유롭다

 이 오르막 끝에 다다르면

 백팔번뇌가 가실까

 오르다오르다 보면

 만 가지 슬픔이 묻히고

 아름답다 여기는 일이 생길까

 웃으며 돌계단을 밟는다


 가을 앞에서 난 웃고 있다


 돌계단 아래 밟힌

 수많은 가을들

 돌탑 사이로

 누군가의 기도가 붉은 열매 되어

 알알이 맺혀 있고

 아뿔싸

 떨어져 밟힐 듯 아린 철 늦은 수국은

 모서리 닳은 돌탑 옆을

 다소곳이 보듬고 섰다


 가을은 너에게도 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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