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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밀이 이태리 타올과 요구르트

목욕탕의 전설

by 어린왕자


목욕탕에서 이태리 타올로 얼굴까지 박박 문질러 보신 적 있나요? 얼굴이 벌겋게 후끈후끈 달아올라 차가운 요구르트 대가며 열을 식혀 본 적은요?

길을 가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곳에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근래 새로 생긴 것도 아니고 개축을 한 것도 아닌 그 자리에 몇십 년째 터를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목욕탕이란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겁니다. 해지거나 낡아 눈에 띈 건 더더욱 아니구요.



목욕탕을 안 간 지 저는 오랩니다. 언젠가부터는 거의 안 갔죠. 중학교 다닐 때까지 엄마를 따라갔던 기억은 뚜렷합니다. 그때는 목욕탕이란 곳도 연례행사처럼 추석이나 구정을 맞이하려고 묵은 때를 벗기려 갔을 거예요. 집에서는 등목 정도로 우물가에서 커튼을 쳐놓고 할 정도였으며 편하게 의자에 앉아 때를 벗길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육 개월에 한 번 가면 혹시나 다음 명절 때 못 올 수도 있으니 일 년 치 묵은 때를 밀고 밀고 또 밀어댔나 봅니다. 벗겨내면 또 벗겨내고 다 벗겨냈다 싶은데도 엄마는 또 엎드리라 등짝 두드리며 벌겋게 피가 날 정도로 밀어댔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들 당연하다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목욕탕은 불이 납니다. 시내 한복판에 목욕탕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대목 아래는 언제나 만원입니다. 한 집에 두세 명씩 오는 집도 있고 온 가족이 출동하는 집도 있고 옆집 아주머니가 앞집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먼 길이라 버스를 타고 목욕탕을 오는 사람들, 경운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 오토바이도 타고 오고 자전거도 타고 오는데 우리는 십 리나 되는 시장길을 늘 걸어서 갔다가 볼일을 본 후에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시장을 가면 일단 목욕탕을 젤 먼저 들릅니다. 아이들 때를 벗기면서 진을 다 빼놓고는 엄마가 젤 나중에 등을 밉니다. 옆사람을 밀어주면 그 사람이 또 등을 밀어주는, 그때는 그랬거든요. 내가 너 밀어줄 테니 당신도 나 밀어줘.

때를 다 밀고 나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으며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거나 앉을자리가 없으면 목욕탕 입구에 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요구르트 하나를 빨아가며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정수기도 없었을뿐더러 마실 물도 들고 다니지 않았나 봅니다. 요구르트 하나는 일 초도 안 돼 사라집니다. 옆에 분명 사람은 없는데 누가 먹었는지 눈 깜짝할 새 없어집니다. 돈이 좀 있는 집 아이들은 한 줄에 다섯 개짜리 요구르트를 빨대 하나로 콕콕 찍어가며 빨아재끼는데 나는 하나 밖에 못 먹었습니다. 엄마가 옷을 입고 나오면 그때 하나 더 먹을 수 있었어요. 엄마 먹으려고 옷장 안에 둔 걸 엄마는 그것도 자식 앞에 던져 주고 당신은 마른침만 삼켰나 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요.

왜 그때는 때를 그렇게 밀어댔을까요? 자주 가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요? 하긴 육 개월치로 따진다면 제법 더께가 앉았기도 했겠네요. 지금은 자주 씻으니 박박 밀지 않아도 때는 안 밀리는데 말이죠.



그때 엄마한테 등짝을 맞아가며 때를 벗겨내던 기억이 있어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했나 봅니다. 옆에서 보고 배운 걸 자연히 행동으로 학습했겠죠. 얼마간은 그렇게 목욕탕을 갔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자연적으로 내 영역이 아니게 되면서 목욕탕을 가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한창 동네 아주머니들이 목욕 바구니에 용품을 챙겨 들고 목욕탕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아예 만남 자체를 목욕탕에서 하기도 했고요. 고구마 삶은 것도 가져와 먹고 미숫가루도 타 가져와 먹고 심지어는 찜질방이 한때 유행하면서 새알미역국도 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땐 목욕탕이 아니라 뭐라 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질 않네요. 찜질방 맞나요? 지금은 그 많던 찜질방이 다 사라지고 한두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족이 모두 가서 잠도 자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끼리 그곳에 가려고 용돈을 모으던 기억도 납니다. 찜질방에서 먹던 새알미역국은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가 내게 끓여주었던 미역국 맛이었는데 한동안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답니다. 지금도 엄마가 가끔 기억납니다.

얼마 전 오빠네가 볼일을 보고 오면서 내게 건네줄 게 있다고 우리 집 앞 목욕탕 앞에서 기다리라 하더라고요. 아~~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목욕탕이란 글자가 왜 그날따라 추억 돋는 그리움으로 다가왔을까요? 목욕탕 앞에서 오빠를 기다리면서, 올케와 조카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갔던, 얼굴이 발갛게 타올랐던 중학생 때의 내 모습이 겹쳐 추억으로 돋았습니다. 그때 먹던 요구르트는 세상에서 젤 맛있었죠.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가 빡빡 등 밀어주던 그 시절의 엄마 손길이 무한정 그립습니다.

#때밀던목욕탕#요구르트#이태리타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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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