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아름다운 도시, 경주는 이름 그대로 천 년의 수도답게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이곳 산림환경연구원도 오랜 세월을 지나오다 '천 년의 숲'으로 이름을 바꿨다.
경주 톨게이트를 지나 십 분 남짓 달리다보면 양 옆으로 가을걷이 한 흔적들이 보이고 우거진 나무 숲들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반긴다. 중앙선에 바리게이트를 쳐놓아 좁은 도로가 더 답답함을 주긴 했지만 통행이 원활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으리라. 차도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정도로 혼잡하면 경주를 들어서는 즐거움이 떨어질 수도 있음을 진즉에 눈치챈 것 같다.
곧게 뻗은 경주는 반가웠다. 마스크를 쓴 후로 천 년의 숲은 다녀가지 않았으니 그동안 정비를 한다 했다. 유명 작가들의 사진이나 글을 틈틈이 보아오다 문득 발길을 돌려 찾았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마르기 전에 신라의 마지막 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저 멀리 보이는 외나무 다리를 무슨 생각으로 건넜을까. 천 년 고도의 목숨이 아득하기만 했을 것이다.
나도 잠시 마의태자가 되어 본다.
물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잎은 피고 지고 뭇 나그네들을 반겨주건만 녹슬고 허물어져 가는 나라도 지켜야 할 나라이기에 미처 닦고 돌보기도 전에 내던져져버린 아버지의 나라를 그저, 그저 바라만봐야 했을까. 황망하다.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는 이곳을 평일 조금 이른 시간에 찾았다. 코로나로 인해 둘러보지 못했다가 몇 년 만에 찾으니 주차장이 건너편에 새로 생긴 걸 몰랐다. 차를 몰고 예전의 주차장으로 들어갈 뻔 했다. 주춤거리는 모양새를 본 이는 의아했을 것이다.
경순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거룩한 마음 또한 얼마만큼이었을까.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을까.우수수떨어지는 낙엽처럼 낮달이 애처롭게 밝다.
통일전 앞 은행나무는 아직 멋스럽지 않다. 오래도록 그러할 것 같다. 가지치기를 왜 했을까. 전신주가 걸리는 것도 아니고 경운기가 지나다니지 못할 만큼 불편을 주지도 않는데 말이다. 누구의 결단이란 말인가. 알 수 없다. 허심탄회하게 둘러앉아 의논이라도 한 번 해봤을까. 실제로 거리로 나가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라도 넣어봤을까. 가지치기 하나도 저러한데 한 나라를 갖다바치는 왕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스러져가는 운명을 눈물로 지켜보았을 민초들의 고통이 아직 스며있다.
그래서 예전의 아름다웠던모습을 더 그리워한다.
11월이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 이곳 경주다. 경주는 어딜 가나 어느 곳을 스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올 때마다 새롭다. 봄이면 파릇파릇한 연두를 즐기고, 여름이면 무성한 녹음을 벗삼아 걸어도 좋은, 가을이면 단풍 든 고찰을 거닐며 흥망성쇠를 논하는 선비도 되어 보고, 아직 가 볼 곳은 더 많다. 계획 없이 왔다가 들러도 결코 아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