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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09. 2023

어느 날은 너로 인해 울었다

홍시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ㅡㅡ'나훈아, 홍시'



아이의 어머니가 홍시를 건넨다. 홍시의 다소곳한 모양새가 엄마를 닮았다. 붉은 치맛폭을 감싸고 수줍은 듯 아니 수줍은 듯 얌전하다.  옆에 놓인 투박한 밥숟가락이 폼을 잡고 나를 쳐다본다. 그건 어쩌면 아버지의 모습이다.



엄마의 부재가 나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가까운 곳에 살아도 가깝지 않은 혈육이었고 내 편할 때 찾아가 뵙는 합리의 원칙이었다. 따뜻한 밥 한 끼 정성스레 챙겨드릴 수 없었던 세월이 오래였다.  엄마의 터전이 바뀌었고 엄마의 삶이 흔들렸고 엄마의 친구가 사라졌다.  엄마에게 남은 건 옷 한 벌과 막연한 기다림 뿐이었다.



가을이면 엄마는 대봉감 한 박스를  들고 오셨다.  당신이 좋아하니 나도 좋아할 거라 여기셨다. 언제 홍시가 되나? 그것 또한 가을에만 할 수 있는 나만의 기다림이었다. 처음엔 물렁물렁한 느낌이 싫었다. 후루룩 핥어먹는 엄마만의 방법은 왠지 먼 거리만큼 반갑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퍼 먹어야지, 손 더럽게 핥아먹으면 우야요."

핀잔 아니 핀잔이다.  


"뭐 어떠니, 내 입에 들어갈 건데."


홍시 옆에 놓인 투박한 숟가락을 든다. 엄마는 큰 숟가락으로  밥 퍼듯이 홍시를 푹 펐다.  한 입에 호로록 넘기시며 야무지게 숟가락에 붙은 것까지 훑으셨다. 엄마를 떠올리다  잠시 머뭇거리며 홍시의 중간을 가른다. 숟가락으로  퍼 보지만 그리 깔끔하게 숟가락에 담기지 않는다.  옆구리가 터져 손으로 집어든다.  


어쩔 수 없이 손에 들고 입으로 핥아먹게 된다.  부끄럽다, 합리화시켰던 내 행동이 한없이 초라하게 들켜버렸다. 내 입에 들어가는 홍시지만 내 모습이 얄밉다. 애써 위로가 안 된다.


현관문을 나서는 내게 봉지에 담긴 대봉감을 또 건네신다. 가서 드시라고 두둑이 넣으셨단다. 두 손 부끄럽지 않게 따뜻한 마음 담아 얼른 받아 든다.


 대봉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또 그리운 엄마가 낯설지 않게 떠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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