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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12. 2023

석파정의 여름ㆍ역사의 쓸모 2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서에 딸린 정자 이름이다. 정자 앞 산이 모두 바위여서  흥선대원군이 붙인 이름 석파정. 이로 인해 대원군의 호도 석파라 했다.  별서는 비교적 오랫동안 머무르는 곳으로 별장과는 약간 개념이 다르다.  


지난여름 방문한 석파정의 모습은 싱그러움 그 자체로 환상적이었다.  고종 때의 세도가 김흥근이 지은 별서를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별장으로 사용했다. 사시사철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대원군이 별서로 썼을까 싶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팔기를 청했으나 김흥근은  고종이 묵어간 곳이므로 임금과 신하가 께 살 수 없다 하여 헌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쩌면 흥선대원군이 세도를 누리던 안동 김씨의 정원을 얻은 것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을까 싶다. 별서도 그러하거니와 정원도 규모로 보면 고즈넉하거나 소박하지 않아 외려 사치스러운 것이 탐탁지 않았음이라.


석파정을 가려면 서울 미술관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전시회를 충분히 즐긴 후 석파정을 둘러봐도 여유롭게 아름다운 광경을 만끽할 수 있다. 석파정 입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꽤 정돈이 잘 된 정원이 방문객을 먼저 반긴다. 벤치 하나를 두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눠도 좋겠다.


별서를 아래서 올려다보면 여느 대감집 담벼락과 다르지 않다. 층층이 막아선 세월의  흔적을 우리네는 알지 못하게 높은 담장이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여염집인들 달랐을까마는 세도가가 누린 영화는 얼마쯤이었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꽃담에 묵었던 왕의 정취가 다소곳한 향기로 뿜어난다. 별채 아래 사랑채 옆으로 천세송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쉬어가는 나그네의 발길을 잠시 붙잡고 세월을 낚는다. 천 수 동안 누리기를 바라는 소망이셨으리라. 한 겹 한 겹  왕의 고뇌가 켜켜이 쌓여 하늘로 뻗지 못하고 굽이굽이 살피려 온몸으로  품으셨으리라.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온갖 비바람을 견뎌낸 노송, 왕의 모습을 대신해 아픈 조선의 백성을 품고 있다.


'물과 구름이 감싸 안은 집',  멋스럽고 운치 있다. 별서와 사랑채를 둘러싼 아름다운 산과 자연, 계곡은  땀으로 얼룩진 더께를 벗겨내고 온몸을 겸허하게 만든다.

별서로 오르는 길에 민낯을 드러낸 백일홍이 붉다. 쭉 뻗은 소나무 아래 다소곳이 서 있는 자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조선의 강인함을 상징하듯 눈마저 붉게 만든다. 조선시대 세도가의  심성이 저들을  닮았으면 좋으련만.


너럭바위 위에 삼층석탑이 덩그렇다. 멀리서 봐도 절터가 아닌데 어울리지 않는다. 저곳에 앉은 연유가 있을 터.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9세기에 건조된 것으로 경주에서 발견되어 수습되었고 2012년 6월에 이전되어 석파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기록되어 있다.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석파정 별서의 모습은 가히 자연 속에 파묻힌 선비의 그것처럼 고고하고 아름답다.


세월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천세송을 지나 구름길로 오르는 길에 꽃백일홍이 단아하다. 왕의 뒤안길에 함께 했을 돌계단이 묵묵히 흔들리는 옷자락을 붙들어준다. 한숨 쉬어가도 될까요 이 고즈넉한 구름길 앞에서. 친히 무거운 번뇌를 털어놓으소서. 솔바람이 간간이 고난의 더께를 풀어주려 앉으면 뒤돌아보지 마시고 살포시 털어내소서. 굽이굽이 고난의 역사가 용포 속을 휘감을지도 모르는 일, 잠시라도 쉬어가소서.


어디메쯤 올라야 끝이 보일까 왕의 짐 진 어깨가 무거웠으리라.  돌계단 옆으로 탁 트인 아스팔트 사이를 걷다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독특한 정자란 팻말 앞에 멈춰 섰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멋은 없다. 소박한 멋도 나지 않는다.  중국풍의 이 어색한 건물이 석파정이란 말인가.'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화사한 단풍을 구경하는(流水聲中觀楓樓)'곳에 아담하고 멋스러움은  없다. 화강암으로 된 돌다리에 정자의 지붕도 중국풍이다. 정자의 아름다움을 이국적이란 표현으로 포장했다.


석파정이란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게 멋스러운 정자를 기대한 마음이 안타깝다. 오솔길을 걸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식혀 본다.  연두를 닮은 초록빛의 싱그런 잎사귀의 떨림이 청아하다. 소중한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 사진을 찍어둔다. 어떤 것을 잘 보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오솔길마다 좋은 글귀가 적힌 팻말이 붙어 있다. 조선의 세도가들은 이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오솔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별서 정원을 본 흥선대원군의 마음은 어땠을까. 뺏고 싶었을 것이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 잘 지어진 사랑채와 별채. 고종이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이곳은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석파정의 이름만큼 굽이굽이 아름다을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흥선대원군이 죽은 후 별서는 후손에 의해 사용되다가 한국전쟁 때 코롬바고아원으로 사용되었다가 이후 우여곡절 끝에 사설 미술관인 서울 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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