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동 사람들>ㅡ박건웅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무책임한 국가와 이념 전쟁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아픈 기억과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 떠도는 슬픈 영혼들의 이야기. ㅡㅡ뒷표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그냥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는 말로 <황금동 사람들>은 시작한다. 백색 바탕에 검은 그림이 그려진 700페이지짜리 만화로 그려져 있지만 작가가 꼭 다루고 싶었다는 우리 역사의 아픈 현대사의 한 부분 {금정굴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은 지난 1950년울 수복 후 인민굴 부역 혐의자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적법한 절차도 없이 153명의 민간인이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 금정굴에서 경찰, 치안대 등에 의해 집단 희생당한 사건이다. 당시 6.25가 터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급히 한강 다리를 끊고 대전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국군이 이기고 있으니 모든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안내 방송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리도 끊겨서 오도 가도 못하는 가운데 포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피난 가지 말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집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국군들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들이닥친 인민군들에 의해 강제 부역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생하던 중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이 다시 수복되자 정부는 이제 빨갱이 사냥에 나서게 되고. 부역에 참여한 사람들을 잡아 창고에 감금 후 20여 명씩 금정굴로 끌어가 재판도 없이 총살시킨다.
금정굴은 야산 위에 만들어진 수직 갱도 굴인데 일제 강점기 당시 금이 나온다 하여 팠지만 결국 금은 나오지 않고 버려진 채 있다가 6.25 발발 후 끔찍한 학살 장소로 변한 곳이다. 그곳에 묻힌 가족들이 그곳에 다가가려 하면 경찰들의 저지로 묻혀 있다가 수십 년이 지난 후 끈질긴 진실 규명 운동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작가가 군대 있을 때 행군하면서 본 <금정굴 영령들이여 편히 잠드소서>라는 플래카드를 본 이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일이 25년이 흐른 뒤, 만화가가 되어 현대사와 관련된 작업을 하며 다루게 된 사건이라 한다.
금정굴 사건은 다른 민간인 학살 사건과 다른 매우 특별함을 보여 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 안에 존재하며 차별적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는 애국자라는 미명하여 양지바른 묘역에 모셔져 있지만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는 어느 야산에서 외롭고 초라하게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 이 희한한 상황을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라 말하고 있다.
유골들이 서로 뒤엉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고 너무 오래돼 유전자 검사조차 소용없고 오로지 소지품으로만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던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이름 없는 유골들은 어느 대학교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기도 하고 창고에 놓이기도 했는데 지금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전국을 떠돌고 있다고 말한다.
2001년에 금정굴 인권 평화재단의 지원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작가는 금정굴 사람들은 누구일까 궁금했고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굴 안에 비친 바깥 풍경이 보름달로 보이는 것을 모티브로 잡아 보았다고 한다.
죽은 자들이 죽은 줄도 모르고 제사를 올리는 다소 기괴한 모습은 박소림 작가의 아이디어였다고 하며 장독대에 숨어 살아남은 막내, 아버지가 심어 놓은 은행나무 이야긴 실제 사연과 증언 등을 참고했다고 말한다. 95년도 이전 기억이 없는 황금동 아파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구상하였고 장르를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로 기획하였다고 한다.
<황금동 사람들>의 주인공 상필이 다시 찾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지키고 싶어 약을 거부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망각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도 고민했다는 작가는 하지만 진실은 가려져 있고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으며 그 망각의 틈 사이로 야만이라는 괴물이 다시 되살아오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그래서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은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황금동 아파트 동장이 추진하는 재개발로 서명을 받는 것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지으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고 아파트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 못 하게 약을 먹였고 혹여라도 자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다음 날 여지없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이름이 없던 사람들, 이제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스럽다. 자기 이름을 가지며 사는 것.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이름 없었던 그들에게 이제는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진실은 가려져 있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은 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작가의 말을 되새겨 본다.
#황금동사람들 #내이름을불러주세요 #박건웅 #우리나비 #근현대역사 #금정굴사건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금정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