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전해오는 경주 서출지

배롱나무 꽃이 예쁜 날 더 멋있는 곳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1길에 있는 서출지는 신라 21대 소지왕의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소지왕이 행차에 나설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하기를 '까마귀가 가는 곳을 살피라' 한다. 장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니 동남산 양피촌 연못가에 이르러 장수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연못 가운데 풀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나 '이 봉투를 왕께 전해 주시오' 한다.

왕이 봉투를 받아 보자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는 것이오니 열어보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하자 왕이 봉투를 열어본다. 거기엔 '사금갑' ㅡ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있던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자 승려가 죽어 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죽이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사형되었으며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왕은 목숨을 건졌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하여 '서출지'라 불렀다.

소지왕 10년은 불교가 신라에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고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그러다 법흥왕 15년에 이차돈에 의해 불교가 공인 되었다.

서출지를 가려면 통일전에 주차를 하면 된다. 주차장 바로 옆에 서출지가 있다. 서출지는 정자 이요당 하나를 두고 연못 주위를 배롱나무꽃이 타원형을 이루며 예쁜 곡선미를 뽐내고 있어 걷기에도 좋다. 여름을 지나는 길목에 시기를 잘 맞춰 가면 연꽃도 예쁘게 피어나 배롱나무꽃과 연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장관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음~~ 그러나 땀냄새 풍기는 건 감내해야 하고 우아한 걸음걸이는 잠시 접어둬야 한다.

이요당은 조선 현종 5년 1664년 조선후기 학자 임적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연못을 돌로 쌓아 그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중수를 거친 건물이다.

임적(1612~1672)은 평소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기를 많이 하여 덕망이 높았던 인물로 전해진다.

이요당의 정자 이름은 '논어'의 '인仁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知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구절에서 따와 지은 것으로 학문에 매진하고자 하는 학자의 정신이 담겼다고 한다. 아쉽게도 정자 안은 들여다볼 수가 없다.

허나 연꽃이 져도 초록의 연잎이 붉은 배롱나무꽃과 어우러져 화려한 장관을 이루는 걸 지나칠 수 없다. 연못 속에 떨어진 붉은 꽃잎이 환상적인 융단을 깐 듯 화려함의 극치를 만나러 비탈진 길을 내려가는 아슬함도 감수한다. 주르륵 미끄러져 풍덩 빠져버릴 수도 있다. 예쁜 사진 하나 쯤 건지려면 그래도 내려가서 열심히 예술 활동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괜찮은 사진 하나 건진다.

서출지는 아무리 더워도 배롱나무꽃이 피는 한여름이 젤 예쁘긴 하다.

꽃이 떨어지면 어떠리
연꽃이 지면 또 어떠리
꽃 진 자리에
저리 예쁜 꽃물결이 이는 걸
융단을 깐 곱디고운 꽃잎이
저리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걸

가을날엔 서출지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며 은행나무 예쁘게 수놓은 통일전 거리를 담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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