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다 기어올랐다
현관문 앞에 간판을 걸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교사 등록을 하고 조금 더 큰 큰아이 방을 리모델링을 해 공부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쉴 방이 없어졌습니다. 엄마가 수업을 할 땐 다른 방으로 피해 있었고 남편도 아예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퇴근을 했습니다. 수업보다 가족들 챙기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저녁을 챙겨주기 어려웠고 손이 필요한 아이들은 무방비로 내팽개쳐졌습니다.
내 일이 좋아서 그것에 먼저 감사했고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돌보면 된다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자연스레 대화가 줄어들었고 늦은 저녁을 준비하느라 또 몸이 바빴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남의 밥 먹지 않게 했고 정성을 들여 보듬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아 고마웠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고 큰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하교하기 전까지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내친김에 NIE 논술지도사 교육도 받으러 다녔습니다. 중앙일보에서 주관하는 NIE 논술지도사 교육은 부산 동의대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그때는 내 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달려와야 하는 먼 거리임에도 그럼에도 재미있었습니다. 하고픈 일에 대한 갈망은 나를 오히려 지치지 않게 했습니다. 앞으로 내 인생 잘 된다 여겼고 무난하다 여겼고 아이들이 집 앞에 줄을 설 거라 여겼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를 보내고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같이 준비를 하면서 함께 달린 시간이 6개월을 훌쩍 넘겼습니다. 중앙일보 논술지도사 자격증을 거머쥐고 이러다 신문사에 취직이라도 되는 거 아냐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동료들과 힘차고 밝은 미래를 함께 얘기했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막연한 즐거움에 우린 또 독서 동아리도 만들었습니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일주일에 한 번 초읍 도서관에서 모여 시시 껄껄 사는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 방학엔 아이들도 함께 모이기도 했고요. 이제 그 아이들이 번듯한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꿈틀거렸던 꿈이 서서히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기 준비를 했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많아 수업이 힘들어지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싶었기 때문에 신규 교사일 때 투자를 했습니다. 열정도 남달랐습니다.
못할 게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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