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틀거렸다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면 너무 무책임하단 소릴 들을까요? 결국 마지막엔 내가 결정해서 퇴사를 했으니까요. 지금에서야 경례단절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사실 90년대 초반엔 경력단절이라는 말보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의 연은 끊어진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 시기였어요.
결혼을 하면서 당신 아들 밥 차려줘야 하는데 며느리인 여자가 직장을 다니면 당신 아들 굶을 것이라는 지론에 나를 옭아맸습니다. 그래도 그럴 순 없다는 나의 완고한 고집이 더 커 결혼을 하고도 경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몇 달 가지 못했습니다.
허니문 베이비로 들어섰던 아기가 잘못되고 말았지요. 워낙 허약했던 체질이라 평소에도 몸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근성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성에 무지했던 이십 대의 마지막을 향해 가던 나는 자연유산이 되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다음 날 바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때는 쉬어야 하고 몸조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였습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친정 엄마는 가슴만 아파했습니다. 대놓고 말하기엔 당신과 마주해야 하는 그 당신이 너무 막말을 한다 여겼지요. 엄마의 아픔이 내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분노가 일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그냥, 그냥 몰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엄마가 될 준비를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쉬는 것도 엄마가 되는 것도. 몸이 약한 체질이라 남들에게 불쌍하게 보였고 저 몸으로 어찌 아기를 낳을까 고생하겠다 싶었나 봅니다. 몇 년이 지나 알게 된 얘기지만 그런 불편한 소리를 여러 어른들이 했다고 하더군요. 일을 그만두고 있으려니 몸이 붕 뜬 기분을 느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일을 다시 시작할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이가 자라 일곱 살,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을 가게 되면서 일을 찾았습니다. 같은 날 결혼을 해 서울로 간 친구가 내게 적합한 일이 있다며 해보길 권유했습니다. 안성맞춤인 독서논술지도사였습니다. 바로 등록을 하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고 집으로 토론을 하러 오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날개를 펼치게 되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겠다는 자부심이 넘쳤습니다. 접혀 있던 날개가 꿈틀 거리면서 서서히 날아오르기를 시작했습니다.
날자
날자
그렇게 날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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