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은퇴했다고 삶을 은퇴한 건 아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2>를 읽고

by 어린왕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좋겠다. 연봉도 물론 억대는 넘겠지. 자가도 입지 좋은 곳에 아파트 30평보다 훨씬 클 것이고 끌고 다니는 차도 외제차일 것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산층 정도는 될 것이란 생각에 그저 부럽단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럽다, 그런 김 부장에게 뭐가 부족할까.


아들이 골칫거리다.


대기업에 25년째 근무하고 있고 동갑내기 아내와 대학생 아들이 함께 살고 있지만 그런 김 부장에게도 고충은 있다. 대학 공부해서 좋은 곳에 취직하라 했더니 집구석에 앉아 인터넷 쇼핑몰 한다고 하는 아들이 장사를 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기고 있다. 김 부장은 아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학교에서 사고 치고 취업도 못하고 결국 선택지가 없어 하는 일이 장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자고로 사회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자신처럼 넥타이 매고 번듯한 슈트를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명품 시계와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것이 그는 자랑스러운 일임을 생각해 오던 터였다.


대부분 우리 아버지들, 아니 여느 부모들의 꿈이며 바람이다.


물론 그런 삶이 좋긴 하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그런 삶을 원하지 않을까.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나도 자식들에게 그런 삶을 살길 바라고 있다. 남들 보기에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자식 대학 보내려고 고생하고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고작 장사를 하겠다니! 열불이 터지는 건 대부분의 부모 마음 아닐까 싶다. 김 부장 같은 부모에 김 부장 같은 완벽한 자식이 있다면 바라 무엇할까. 그러나 대학을 다니는 아들은 트렌드를 읽을 줄 안다. 온라인 유통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망이 괜찮고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며 기회를 달라 하지만 김 부장은 자신의 체면을 깎는 일이라며 한사코 성화를 부린다. 실패도 성공도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그게 젊음의 특권이니 너무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라는 엄마 말에 자신감을 갖지만 아버지에겐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남는다. 김 부장은 자신의 동창들 자식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그러다 전무의 호출을 받는다.


흠잡을 것 없던 대기업 간부 김 부장에게도 어느 날 지방 공장으로 근무하라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김 부장이 전무의 호출로 승진을 할 줄 알았는데 이런 날벼락이라니! 결국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지방 공장에 출근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거길 내가 왜 가? 시키는 일 다 했고 밤늦게까지 특근에 야근에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일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팀원들과 잘 버무려지지 못했다. 아랫사람이 조금 부족하면 자신이 다 했다. 팀을 위한 배려라고 여겼다. 우월함에 심취해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아내는 다행히 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아내는 모르지 않았고 다만 모른 체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응원한다며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가방을 선물했다. 무뚝뚝한 아들의 진심을 느꼈다.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지만


김 부장은 희망퇴직을 당했다. 갑자기 공장으로 내려보내고 적당히 위로금 주고 퇴직시키는 수순을 밟았을 뿐이다. 세컨드 라이프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집에는 뭐라고 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김 부장이다. 무려 25년을 근무한 대기업을 정리했다. 고작 이틀이 걸렸다. 일전에 받아둔 부동산 매매 명함을 보고는 상가 분양을 받아보기로 했다. 지하철역이 들어서고 확정이 되면 시세는 분명 오르고 이미 1~2층엔 입점 계약이 잡혔단다. 서둘러야겠는 마음이 굴뚝같다. 지금 계약을 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 월 수익이 700이란다. 스타♡스 임차도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서로의 수를 읽으며 상대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고 초조함을 이끌어내 계약을 하게 만드는 게 장사꾼들의 기본 매너다. 덜컥 물리고 만 김 부장이다. 스타♡스가 입점되면 아내에게 서프라이즈 할 요량으로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기어이 일은 터지고 말았다.


아내는 공인중개사에 붙었고 아들은 창업을 시작했다. 아직 집에는 대기업 김 부장의 직함이 살아 있다. 김 부장도 상가 임대를 하고 통쾌한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사기를 당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된다. 이제 어떡하나, 고민 끝에 친구에게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았다. 갖은 욕을 해대지만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는 건 친구다. 이자 갚을 돈도 주고 다시 시작하라며 뼈 때리는 말들로 진지하게 대해준다. 그러나 김 부장은 가족에게 말 못 하고 끙끙대다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으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갈 때 김 부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김 부장도 자식이었다.


부모에게 '잘했어'란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어린 김 부장. 항상 형이 먼저였고 형들에 치여 제대로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 가슴에 맺혀 있었다. '잘했다' 그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인정받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던 김 부장은 그렇게나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갔다. 자신도 무관심한 아버지였다. 그 자식이 본인과 닮지 않아 고마울 뿐이다. 아내는 김 부장의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혼자 끙끙거리며 혼자 일을 저지르고 만 것에 대한 질책으로 허심탄회하게 모든 속내를 털어놓고 더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인정한다.


인생도 똑같다.


젊은 시절엔 도전적이고 열정적이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삶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그 변화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회사에서 은퇴했다고 삶을 은퇴한 건 아니다. 누군가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샀다고 하면 '부럽다'라고 하고 누군가의 자녀가 성공했다고 자랑하면 '배 아프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 인생이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김 부장은 장사하는 자식에게 그동안 자식을 과시용으로 생각했다는 것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아버지라는 권위로 짓눌렸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알아주고 한 번도 입에 담아보지 못했던 그 말들을 용기 내어 전한다. 아들도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바라보며 응원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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