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사람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

<작은 땅의 야수들>ㅡ김주혜

by 어린왕자


아버지는 그랬다.


남자도 그랬다. 홀로 남은 아이들 생각에 눈길을 걸어 헤쳐 호랑이를 잡아와야 했다. 아니면 토끼라도 잡아가면 괜찮았다. 아이들의 얼굴에 불을 켠 등처럼 환해지는 걸 보고 싶었다. 남자가 발견한 건 표범 발자국이다. 표범을 잡으러 눈길을 걸어가면서 남자는 열다섯의 그를 떠올렸고 열세 살의 순영을 떠올렸다.

아무리 뛰어난 명사수라도 호랑이를 죽일 수 없다 했다. 멀리서 쏠 때는 힘이 부족하고 활이 가진 힘으로 호랑이에게 상처라도 낸다면 그 짐승을 더 포악하게 만들어버리는 꼴이 된다 하셨다. 호랑이를 죽이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만이다. 호랑이 쪽에서 먼저 죽이려고 할 때, 그럴 때가 아니면 절대로 호랑이를 잡으려 들지 마라 하셨다.

욕심이 인다. 앞에 보이는 호랑이 새끼 한 마리가 남자를 응시한다. 절대로 먼저 호랑이를 죽이지 마라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저걸 잡으면 삼 년은 넉넉하게 살 수 있는데, 아이들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데. 공복감이 밀려온다. 산신령님, 당신의 영물을 놓아주었으니 저도 무사히 내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그리고는 고운 눈가루 속으로 파묻히듯 쓰러졌다. 남자는 이왕 죽을 거면 하늘을 바라보며 죽고 싶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이렇게 프롤로그를 연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의 특산품이 호랑이와 쌀, 여자였다는 것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제강점기를 지나 미군정 시기까지 고난의 길을 살아낸 호랑이처럼 강인한 우리네 삶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강렬한 몸짓으로 읽혔다.

일본 경찰 야마다 대위는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빚지는 걸 불명예로 여기는 사람이다. 산속에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산속의 지리를 알 것 같아 야영지로 데려오다 호랑이를 발견하고 총을 쏘았다. 남자가 그걸 가로막았다. 그 순간 호랑이가 살았길 바라는 사람이다. 야마다는 자기 목숨을 살린 남자에게 은제 담뱃갑을 주며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찾아오라 당부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전개는 옥희 어머니가 옥희를 기방의 하녀로 보내면서 시작된다.

"결국 이 길을 걷지 않을 운명이라면 비록 기방에서 자란다 해도 다른 길을 갈 것이다."


그러나 옥희는 기생의 길을 살았다. 자신을 좋아했던 남자 정호. 자신이 좋아했지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한철을 수없이 많은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엔 끝까지 자신을 지켜주고 다가와 준 정호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삶은 견딜만하다고,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준다고,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고백한다.

호랑이를 구하러 산으로 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간 정호는 도시 소년을 만나 거지들의 왕초가 되어 경성에 올라온 옥희를 만나면서 사랑을 키운다. 옥희에게 걸맞은 남자가 되기보다 자신이 끝까지 안전하게 지킬 사람들을 생각했고 옥희가 사랑하는 첫 남자가 자신이길 바랐다. 또한 옥희를 바라보며 항상 가슴 아파하던 한철은 이름도 없이 꽃다발을 보내고 기생과는 다른 시선으로 옥희를 바라보는 남자, 옥희의 인력거를 끌어주던 한철은 항상 옥희 옆에 거기 함께 서 있었다.

옥희는 한철이 이미 사랑이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하면서도 한철을 사랑하고 있다. 정호의 충실함이라는 감정도 같은 색상표 안에 있는 것이라몃 그러면 옥희도 정호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옥희는 정호와 같은 밤을 보내면서도 옥희는 그가 한철이었길 희망한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하게 사랑을 지켜간다.

정호는 자신이 죽을 때 너만은 내 죽음을 안타까워해 줄 거라 예전에 그랬는데ㆍㆍㆍ옥희는 한철의 품에 안겨 만약에 내가 죽으면 나를 기억해 줄래?라고 묻는다.


미군정하에 친일이 다시 등장하면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전력이 드러난 정호는 체포되었고, 감옥에 갇힌 정호는 그날 밤 호랑이 꿈을 꿨다.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았던 정호는 다만 살아오면서 어떤 일들을 좀 더 다르게 했다면 어땠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호랑이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어머니의 환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정호는 아버지가 남긴 은가락지를 옥희에게 건넨다.

그래서 삶은 견딜만하다고,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준다고,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정호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깊은 산속으로 호랑이를 잡으러 떠났던 남자, 그 아버지의 삶에 옥희를 사랑하는 남자 정호의 삶을 투영했더라면 소설은 프롤로그에서 전해진 묵직함 만큼 더 깊이 있게 다가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작은땅의야수들 #김주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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