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동백꽃>ㅡ박현경 수필집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엮어낸 수필집은 오랜만이다.
소설은 늘 오랫동안,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데 어쩌면 바알간 부끄러운 부분까지 드러낸 수필집은 내게 귀하다. 한 인간의 치부까지 보는 듯하여 동질감을 꽤 느끼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정답다.
인생의 노을길을 걸어보지 않아서 엄마의 정신적 육체적 노쇠를 모른다. 노인이 된 엄마를 위한다는 딸들의 행동이 나에겐 배려가 아니라 인격적인 무시로 느껴질 때가 있다. ㅡㅡ 본문
특히 가슴에 닿은 말이다.
작품마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밴듯하다.
고상한 기품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읽는 사람도 그러할 듯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서러웠을 작가의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나도 저렇게 느낄 때가 오겠지. 물론.
누구나 경험해 봄직한 일이니까. 그게 인생이니까.
객지 나가 있는 아이가 집에 올 때마다 종종 식사를 함께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듣는 말이 있다.
"좀! 하지 마요. 왜 쓸데없는 얘길 해요. 묻지도 않는 말에ㆍㆍㆍ."
그렇다. 작년 가을쯤일까. 오마카세 점심을 거하게 같이 먹었다. 실은 내가 아들한테 하는 대접이었다. 용돈을 넉넉하게 받았고 오래간만에 찾아온 집이라 저 좋아하는 일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좀 무리를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예약을 하고 셰프 앞자리에서 음식 만드는 것을 직관하는 것도 좋았다. 예쁜 접시에 음식이 담겨 나올 때마다 감탄을 했다. 저도 따라 눈요기를 하더니 좀 아는 체하는지 음미도 해 보고 나름 분위기 괜찮았다.
문제는 막바지 가락국수가 나올 즈음 국물이 내겐 너무 짰던지 한마디가 쑥 튀어나왔다.
"좀 짜네요."
딱 한 마디였다. 넌 어떠냐는 눈짓을 보내니 고개를 박고 조용히 맛있게 먹고 있다. 온화한 표정으로.
그다음 무슨 얘기를 분명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즐겁게 웃으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몇 발짝 걷더니 한마디 진지하게 건넨다.
"엄마, 주방장 기분이 어떻겠어요?"
"왜~~ 짜다고 얘기하면 좀 신경 쓸 것 같아서 그랬어."
"엄마가 그런다고 그 사람들 반영하지 않아요. 좀 묻지도 않은 말에 먼저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요."
"아~~ 알았어."
한마디 더 하면 내가 서러울 것 같아 그만 입을 닫고 말았다. 저는 분명 내게 미소를 띠며 나무랐는데 난 웃음이 잠시 가출했었다. 주제넘은 발언이었을까. 아닌데? 고객으로서 당연히 진짜 당연히 그런 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아들을 쳐다보며 엄마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눈초리를 연거푸 보내고 만다.
그때 아들은 엄마를 어찌 생각했을까.
내가 가끔은 밉다. 아들한테 따지지 못하는 내가 실없고 밉다. 가끔은 내가 생각하는 성급한 데가 있긴 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심기를 건드렸나 싶었다. 특히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그걸 더 느낀다. 같은 어른으로서 느끼는 걸까. 그는 분명 경험해보지 못한 어른이다.
엄마인 나는 끼인 어른으로서 할 말 못 하고 못할 말 다 듣고만 사는 그런 어중간한 세대의 어른이다. 지 밥그릇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하얀 동백꽃ㅡ박현경>을 보면서 누구나 그러한 인생을 사는 것이니 자기 편하게 생각을 바꾸면 되겠구나 했다.
그게 아들의 방식이라면 다음에는 묻는 말에만 답을 하면 되고, 리필한 반찬이 늦게 나와도 갖다 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저들이 생각하는 쓸데 있는 말과 쓸데없는 말의 온도를 느끼기 어렵지만 아무튼 급한 마음을 눌러야겠다.
내게서 뿌리내린 자식들이지만 온도는 다르다. 그래, 니는 안 늙어 봤지. 나는 늙어가고 있다. 주저리주저리 얼마나 말이하고 싶은지 늙어가면 알 거다.
혼자서 쾌재를 부르는 늦여름 밤이다.
어떠한 사람은 특별한 삶을 누리고 또 어떠한 이들은 그냥 평범한 삶을 누린다. 수필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다. 작가의 잔잔한 삶이 돋보인다. 혼자 남겨진 삶에 주저앉지 않고 신나는 일을 찾아 매일매일 감사하며 사는 삶이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