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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30. 2023

고양이 꼬리를 붙잡고 선 소년

얘는 경주 보문호 고양이


나들가게 모퉁이하얀색 철제 선반이 놓여 있다.  3단으로 된 선반 모든 칸이 고양이를 위한 공간이다. 1층은 고양이를 위해 쓰일  담요 한 장, 2층은 고양이를 위한 집과 물 한 사발, 집이라야 조그마한 라면 박스로 칼집을 내 뚜껑을 만든 것이지만 그에겐 포근하고 안성맞춤인 듯하다.  3층은 쓰레긴지 뭔지 잡동사닌지 널브러져 비닐과 함께 섞여 있다. 아이는 제법 긴 시간을 저곳에 앉아있었나 보다.  도서관을 들어가려다 쭈그리고 앉은 아이를 본 건 꽤 시간이 지난 뒤였다.


쌀쌀한 토요일 아침, 아직은 밖에서 놀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고양이는 아이의 정성에 무심하다. 쭈그리고 앉은 모양새가 힘들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양이 얼굴은 내쪽에서 보이지 않는다. 노란 털이 있는지 검은 털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이는 무엇이 좋아 저리 자리를 뜨지 못할까. 엄마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워선 안 된다고 하셨겠지. 알레르기가 있단 말이야. 하시면서.


간밤에  엄청 세찬 바람이 불었다. 11월인데도 한겨울 느낌을 갖게 한다. 지난밤에 고양이도 잘 잤을까. 기온이 내려가 떨었을 고양이 생각에 소년은 걱정했으리라. 무슨 대화를 할까. 아이는 연신 손을 뻗었다 거두었다 반복한다.  고양이는 쉽게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아이도 추위에 떨고 있는 듯한데 고양이의 마음을 얻는 게 더 어려워 보인다.  


짜식~~  웬만하면 얼굴 한 번 내밀어 주지~.




도서관에  불이 꺼져 있다. 아직 선생님이 출근 전이다. 그 덕분에 아이의 행동을 한참이나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아이도 한 번쯤 쭈그리고 앉은 모습에서 자세도 바꿀 법한데,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똑같은 모습으로 고개만 들이민다. 고양이는 아직도 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콧대가 엄청 높은가 보다. 저 녀석. 덩달아 나도 얼굴 한 번 보고 들어가리라.




뙤약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한여름 날, 계곡에 바람 쐬러 갔다가 주변을 서성거리던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산속에 먹을 게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를 잃었고.


나뭇가지에서 까마귀가 까악 까악 시끄럽게 울어댔다. 새끼 고양이는 까마귀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온다. 저러다 잡아 먹힐지도 모르는데. 사람 무서운 줄도 모르는 아직 새끼인데 맘이 쓰였다.


"저리 가, 엄마한테 가. 그러다 잡아 먹혀."


어쩔 줄 몰라하는 건 우리였다. 그런 마음도 모르고 새끼 고양이는 연신 코를 땅에다 박고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참치라도 하나 사서 먹여 보자."


참치를 사 올 동안 우리는 새끼 고양이를 지켜야 했다. 먹잇감을 포착한 까마귀는 더 시끄럽게 고함을 질러대고 해는 기울어 가고 어둠은 더 아래로 내려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가 자리를 움직인다.  우리 곁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안 되는데, 먹이가 올 때까지 여기서 서성거려야 하는데. 까마귀로부터 지켜줘야 하는데 ㆍㆍㆍ 애가 탔다.


새끼 고양이는 조심스레 나뭇잎을 헤쳐 우리 곁으로 왔다.  경계심을 놓았으니 저리 담담하게 움직이지 싶었다. 아니면 살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던지. 우리도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레 바라만 보았다. 어찌 이 먼 길을 왔을까. 헤매다 보니 여기였고 헤매다 보니 길을 잃었 그러다 엄마를 잃었겠지. 엄마도 저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우리가 산을 오를 순 없는 노릇이다.


먹이를 사러 간 친구가 저 밑에서 뛰어오고 있다. 첩보라도 되는 양 전화기로 수신을 해가며 상황을 주고받는다.  급한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숨소리에 모든 게 담겼다.


"더 빨리 뛰어 와."

 

그 사이 새끼 고양이는 엄마를 찾아간다. 불러도 소용없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나뭇잎 밟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붙들어 놓을 수도 없다. 다만 애처로울 뿐이다.


"좀 더 있다가 참치라도 먹고 가."


친구는 아직도 헐레벌떡 산길을 뛰어오고 있었다.




도서관에 불이 켜지자 나도 일어섰다. 소년은 아직도 쭈그려 앉은 모습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진심이 통했을까 서서히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야~~~옹"


 아이는 연거푸 등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뽀뽀를 시도한다. 새침데기 고양이가 옆으로 얼굴을 돌리는가 싶더니 몸을 일으켜 한 발을 박스 앞으로 내닫는다.


드디어 고양이가 자신의 신체를 허락했다. 고양이가 자신의 집 옆으로 살짝 움직이니 소년도 따라 자신의 몸을 일으킨다. 고양이의 행동이 빨라진다. 소년은 고양이를 더 붙잡고 싶다. 엉덩이를 뒤로 빼며 허리를 구부렸을 때 고양이는 미끄러지듯 아이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지나치면서 나는 보았다.  노란 털이 쭈뼛 서 있는, 한 주먹 안에 들어갈 만큼의 작은 그 녀석도 아직 새끼다. 소년은 고양이 꼬리를 쓰다듬으며 이제는 가지 마라 붙들고 섰다. 이제야 만져볼 수 있는데  웬걸, 고양이는 소년을 지나치려 하고 있다. 더 붙잡고 싶은데. 소년에게도 이 가을은 더 붙잡아 두고 싶은 계절이다.


한여름 날 만났던 그 고양이는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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