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이 필 무렵
질펀한 메밀밭 길을
나귀와 함께 걸어 걸어
늘그막으로 가는 인생길에
허생원은 늘
달 밝은 밤 물레방앗간 처녀를 그리워했다
하얀 소금을 뿌린 듯
순수한 사랑을 가슴에 담고
몇 해를 돌고 돌아 달을 품었다
성서방네 처녀는 어디로 갔을까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 길을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또 걸었다
단 한 번의 추억을 간직하며
육칠십 리 길 밤길을 걸어
고단한 생을 갈무리할 즈음
질펀한 가슴팍에 파고든 또 하나의 사랑
일신에 가까운 당나귀와
단 한 번의 인연
메밀꽃이 필 무렵
그 인생길에 함께 걷는 동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에 숨이 막혀도
생각하면 무섭고도 괴이했던 밤이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단 한 번의 인연이라
아름다워서 슬픈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