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의 낮고 부드러운 선율에 매료되다
책도둑 10월의 독서 모임 책은 단테의 <신곡>이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어내지 못했을 책이다. 그리하여 삼십 년 전 읽었던 <신곡>을 꺼내 보니 오래된 누런 책종이 사이로 스멀스멀 책벌레가 기어 다닌다. 쿰쿰한 종이 냄새는 콜록콜록 헛기침을 연발하게 만들고 눈도 따끔따끔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겨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민음사 출판 책으로 읽자고 의견을 모으고 도서 대출을 했다.
사실 번역자의 역할도 무시할 순 없어서 세 출판사를 비교해 보고 골랐다.ㅡ(읽는 도중 카톨릭 출판의 책을 읽었는데 번역이 더 매끄러움을 느꼈다.) 그런데 지옥편의 1곡을 읽는 순간 처음부터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상황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시 오래된 삼성출판사 책을 펼치며 주석부터 읽어나갔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만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야 제대로 길을 잡고 다음 곡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동환 배우의 무대 인생 55년 작품 <신곡>을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관람을 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일요일의 상영시간을 예매해 놓고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지 설렘으로 기다렸다.
중세 시대는 특히 하느님과 천국으로 향하는 것을 인생 최대의 순례로 여긴 시대다. <신곡>은 언어를 통한 표현의 가능성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어어로 쓰인 작품이며 프리드리히 2세의 라이코 정신(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종교가 관여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확실히 구분하는)이 만들어낸 단테의 걸작이다. 신곡은 신성한 노래라는 뜻으로 행의 마지막 음절이 3번씩 반복되는 판소리처럼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세종문화회관 거리는 예전보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영향으로 많이 바뀐 곳이다. 정당한 집회와 시위를 하면서도 일사불란하며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 또한 한쪽에선 젊은이들이 끼와 흥을 자랑하는 공연도 하면서 낭만을 만끽하기도 한다. 공연을 즐기며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누리는 문화가 사뭇 부럽기도 했다.
서울 사는 아들들이 고향인 지방에서 터를 잡지 않으려는 이유가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하는 현상이 반영되어 있어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기도 했다.
<신곡>을 읽으려면 꽤 넓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당시 단테가 살았던 피렌체의 시대적 상황은 교황파(구엘프)와 황제파(기벨린)로 나뉘어 갈등을 겪었고 교황당이 정권을 잡았으나 교황과 협력하고자 했던 흑파와 교황의 간섭을 배제하자는 백파의 다툼으로 흑파가 승리한다.
단테에게 피렌체는 삶의 터전이었고 거역의 장소다. 단테는 백파의 한 사람으로서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망명 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인생의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 사건이 단테가 신곡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1300년의 춘분이 가까이 오는 날 부활절의 성 금요일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 순례자 단테는 잠에서 깨어 어두운 숲길을 헤매고 있다. 그때 단테 앞에 나타난 그의 스승이자 라탄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지옥과 연옥을 거쳐 영원의 세계로 안내하겠다 말한다. 단테가 머뭇거리자 영혼의 겁을 먹은 것이라며 아름답고 복된 여인이 나를 불러 그분의 명령을 간구한 것이라 말한다.
"너를 믿고 따르는 자가 너를 찾으니 이제 너에게 그를 맡긴다."
지옥편은 악인들과 사기와 탐욕이 만행한 사회를 풍자해 처참하며 타락한 성직자도 지옥행을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지옥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기반한 죄의 위계 형성을 보여 주고 있다. 정교하게 죄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폭력보다 사기와 배신이 더 무거운 죄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 의지를 악용하는 죄가 더 무거움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실존 인물들을 비판한 것에 놀라웠고 교황을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그러면서도 단테가 목격한 당대의 현실을 지옥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나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지옥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탐욕은 똥덩어리 같은 배설물에 불과하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아픔을 겪어보지 않으면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들은 나는 얼마나 많은 탐욕을 가지면 저렇게 될까, 지금의 나는 어떤가? 한 번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한낱 작은 미세한 먼지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욕심을 덜 부려야겠다는 생각을 퍼뜩 순간적으로 하고 말았다.
연옥 편은 단테를 사랑으로 이끌어 감히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천국편은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영원으로 이끌어가는 장면이 깊고 장엄하게 다가왔다. 단테는 자신이 한낱 미물이며 미세 먼지에 불과하다고 말하자 베아트리체는 그 약하고 미세한 먼지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결국 결국엔 사랑으로 귀결된다.
낮고 우아하고 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로 단테를 천국으로 이끄는 사랑의 베아트리체. 같이 연극을 관람하던 옆 친구는 베아트리체의 미모에 반했고 나는 그녀의 낮고 묵직한 울림에 반해 그녀의 손짓을 따라 하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온유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몸짓으로 모두를 끌어안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리며 포근하게 단테를 감싸주는 사랑의 아이콘 베아트리체로 인해 오늘 밤 잠 못 들지도 모르겠다.
"천국은 어떤 곳인가요?"
"지성으로는 천국을 알지 못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누구나 천국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선 살아 있을 동안 탐욕을 줄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좀 더 큰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ㅡ나는 베르길리우스역의 정동환 배우도 멋있었지만 단테의 역을 맡은 한윤춘 배우가 인상 깊었다. 예리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 고독하면서 섬세한 눈동자, 길을 잃고 헤매는 그의 아담한 몸짓에 비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깊고 묵직했다. 지옥에서 고뇌하고 아파하고 방황하고 인내하며 악의 구렁텅이에서 몸부림치는 배우들의 열정이 보는 내내 탄성을 지르게 했다.
단테 <신곡>의 지옥 편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실체를 갖고 있으며 그 추악함으로 얼마나 깊은 곳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인간은 타락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얼마나 구원받을 수 있는지 묻게 한다. 지옥에서 당한 고통과 몸부림이 구원을 통해 영원한 사랑으로 이를 수 있음을, 단테는 지옥을 통해 자신을 성찰한다.